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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일상 2016. 8. 29. 22:36

작년 1학기 이대병원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올해는 고대병원이다. 거짓말같이 좋은 풍경의 병실을 받았다. 창문 너머 사랑하는 교정이 보인다. 왠지 멀게 느껴진다. 고개를 돌려 엄마를 본다. 눈물자욱이 얼굴에 남아있다. 그냥 하루 마취하고 수술하고 몇일 입원하면 끝날 일이다. 누구나 겪는 평범한 고통이다. 그런데 전신마취에서 깨어나는 엄마가 너무 괴로워보인다. 해줄 수 있는게 없다. 무기력하다. 한 계절에 아버지가 어머니가 한번 두번 여러번 눈물짓는 모습을 보는 건 진짜 못할 짓이다.


아픈 가운데 엄마가 자꾸 내 눈치를 본다. 나도 사실 초조하다. 친척들이 많이 왔고 엄마는 자꾸 학교를 가랜다. 갔다. 가면서 미친듯이 잤다. 가서 공법 기록형 강평을 들었다. 비오톱은 맨정신으로 들어도 짜증이 날 것 같다. 옆에서 전정욱도 허공을 쳐다보고 있다. 자료가 좋다. 강의를 들을 필요가 없었다. 다들 주섬주섬 짐을 챙겨 광복관 3층으로 향한다. 열람실 풍경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모두가 달리는 가운데 나 혼자 덩그러니 멈춰 있다. 옆에 아픈 엄마가 있다. 누군가의 엄마도 아플 것이다. 등번호 200, 400, 600이 지나가고 1000이 지나가는 것 같다. 1500도 지나갈 거 같다. 불안하다. 등번호를 보지 않기로 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도 사람들이 지나가는 건 느낄 수 있다. 나는 어디에 있을까. 누가 내 뒤에 남아있을까. 그 와중에 사람들이 등수로 보인다. 우악!!


1시간 강의 들으려고 오며가며 2시간을 소비했고, 3시간 만큼의 찝찝함이 쌓였다. 사촌누나가 살갑게 엄마랑 놀아주고 있다. 사촌누나가 나보다 나은 것 같다. 외동아들같은건 없느니만 못하다. 오자마자 밥을 먹으러 가랜다. 찝찝한데 배가 고프다. 내가 배부른걸 봐야 엄마도 마음이 편하지 않겠냐고 생각한다. 자꾸 사안의 당부를 따지고 어떻게든 정당화시키려는 내가 몹시 마음에 안든다. 원을 긋고 달리는 나에게 현명한 케스트너는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것은 헛일임을 일깨워준다. 그럼에도 쳇바퀴 속을 벗어날 수도 없고 벗어나서도 안되는 시기이다. 엄마의 아픔에 온전히 공감하고 하룻밤을 새워줄 최소한의 공감능력 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이 생활에 진절머리가 난다. 


어떻게든 집에 와서 책을 폈으나 눈에 한자도 들어오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하면 엄마는 또 밤을 새워가며 자책할 것이다. 난 또 속으로 삭혀야 한다. 바람이 솔솔 부는 밤에 넓은 거실에 홀로 앉아 감정을 게워낼 여유가 주어지는 삶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지 나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고 무미건조한 법서와 마주할 자신은 없다. 그냥 빨리 잠을 청하고 빨리 병실에 가보는 것이 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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