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봄, 놀라서 뒷걸음질치다
맨발로 푸른 뱀의 머리를 밟다

슬픔
물에 불은 나무토막, 그 위로 또 비가 내린다

자본주의
형형색색의 어둠 혹은
바다 밑으로 뚫린 백만 킬로의 컴컴한 터널
―여길 어떻게 혼자 걸어서 지나가?

문학
길을 잃고 흉가에서 잠들 때
멀리서 백열전구처럼 반짝이는 개구리 울음

시인의 독백
“어둠 속에 이 소리마저 없다면”
부러진 피리로 벽을 탕탕 치면서

혁명
눈 감을 때만 보이는 별들의 회오리
가로등 밑에서는 투명하게 보이는 잎맥의 길

시,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
너는 그곳에 살지 않는다

 

청혼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

-------------------------------------------------------------------------------------------------------------------------------------------------------

"불행이 건드리고 간 사람들 늘 혼자지."
헤르베르트의 시구를 자주 떠올렸다.
한 사람을 조금 덜 외롭게 해보려고
애쓰던 시간들이 흘러갔다.

"입안을 베어낼 정도의 고통을 감당하며 쓴잔을 마시려는 이유는 뭘까.
시집 1장 ‘사랑의 전문가’ 머리에 인용한 영국 비평가 존 버거(1926~2017) 말에 답이 든 듯하다.
“나는 당신에게 내가 함께 있다는 것을 전해줄 말들을 찾고 있어요.”

“‘고통받는 사람을 환대해야 한다’는 철학을 말하면 ‘우리가 참 아름다운 말이야’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론 그 고통받는 사람의 존재를 쉽게 잊어버리잖아요. 그런데 구체적으로 우리 곁에 존재하는 고통받는 사람은 잊히지 않아요. ‘내가 인류를 사랑하고 모든 불행한 사람들을 다 도와야 해’ 이렇게 생각하면, ‘아니 내가 예수님도 아니고 그런 엄청난 일을 어떻게 하겠어’, 이렇게 되지만 적어도 한 사람의 고통에는 진지해질 수 있잖아요. 전능한 존재라서 뭘 하는 게 아니고, 그냥 그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지만 그거라도 하는 거죠. 구체적으로 이 세계에 존재하는 고통 받는 한 사람, 또 한 사람을 위해 보잘 것 없는 어떤 일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느끼던 시간들을 거쳐 이 시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경향신문 인터뷰 중)

 

"적어도 진은영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시는"을 네 번 반복하면서 시의 구조적 긴장을 붙드는 동안,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지적 성찰을 속성열거법의 형식으로 전개한다.  예컨대 그것은 절망을 재료로 삼을 때가 있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 행위이고, 때로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서도 쓰이며, 시를 쓰는 이와 자신을 화해시키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동시대의 현실에 밀착하는 증언자일 때도 있으며, 죽어가는 이의 곁을 무릎 모아 지키는 성실한 입회자이고, 끝나지 않는 애도의 표상이기도 하고.. 등이다.  정말 인생은 아름답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가? 그럴지도 모르지만, 좋은 시에는 둘 다 있다.  어느 하나가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팽팽한 경쟁의 감미로움과 함께."

"사랑과 저항은 하나이고 사랑과 치유도 하나라고 이 시집 전체가 작게 말하고 있을 뿐, 어떤 시도 직접적으로 크게 말하고 있진 않다. (중략) 진은영의 정련된 이미지들 뒤에는 얼마나 많은 사유와 감정이 들끓고 있는가. 더 중요한 것은 사유와 감정이 하나의 언어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진은영은 "좋은 시인은 잘 싸우는 사람이고 그의 시는 분쟁으로 가득한 장소"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의 시는 이토록 아름다워지는데 성공한다.  브레히트는 어디선가 "아름다움이란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행위"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름다움은 분쟁을 진정으로 해결하는 돌파일까, 아니면 해결되었다고 믿게 하는 유혹일까.  브레히트의 말이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인지 냉소인지 오랫동안 헷갈렸는데, 정혜신의 다음 말은 그 답을 비스듬하게 알려준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경험할 때 온전한 존재가 되려는 힘이 강해지기 때문에, 삶이 부서진 어떤 사람에게 예술적 자극은 곡 치유적 자극이 된다는 것.

그렇다면 아름다움(예술)은 인간을 해결하는 사랑의 작업이 되고, 그렇게 치유되면서 우리는 '해결되지 않는 분쟁'과 다시 맞설 맞설 힘을 얻게 된다.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아름다움.  진은영은 그런 것을 가졌다." (신형철, 해설「사랑과 하나인 것들: 저항, 치유, 예술」중)

,

현대사회에서 한 호흡에 책을 읽어 내려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어릴 적 조정래 대하소설은 어떻게 읽었으며, 앞으로 시바 료타로의 대망(大望)은 과연 읽을 수 있을 것인가?  아직 책 욕심은 버리지 못해서, 읽으려고 사둔 책은 산더미인데.... 전혀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최애 동네 이치죠지에서 한줄기 빛을 발견!
사장님 철학이 확고해서 호불호가 갈리는데, 나는 극호이다.
카페점선(喫茶点線)
https://maps.app.goo.gl/tYqw3PcMfYGxKwW99

喫茶点線 · 일본 〒606-8115 Kyoto, Sakyo Ward, Ichijoji Satononishicho, 13-4 SKYビル 3階

★★★★☆ · 학습 센터

www.google.com

똑똑한 구글이 "카페"가 아닌 "학습 센터"로 분류해 놓았는데, 이곳의 컨셉 / 여기서 지켜야 할 규칙은 아래와 같다.
- 기차 소리,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일상을 느끼면서면도 조금 거리를 두고, 자기 이외에 어떠한 존재일 필요가 없는 "공백의 시간"을 느끼는 곳
- 종업원은 고객과 약간의 거리를 둔 최소한의 대응만 함.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거절하려는 의도가 아니고, 종업원의 존재를 신경쓰지 않은 채 마음 속 깊이 천천히 자신의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
- 카페 내 사진 촬영은 "1장"만 가능
- "수다"는 금지, 차분하고 조용한 톤으로 "대화"를 하는 것은 가능(웃음은 자제).  함께 오더라도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풍부한 침묵이 관계를 깊게 해준다"는 생각으로 이용해 주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쁨
- 핸드폰 무음, PC는 Soft Touch
- 오니기리, 샌드위치, 빵 등 가벼운 음식을 가져와서 먹어도 됨
모두가 좋아할 수는 없는 규칙이지만, 누군가에는 필요한 배려이고, 그 누군가가 바로 나였다...!
덕분에 드디어 책 한권을 완독하는데 성공(이라고 써놓고 마지막 몇 챕터 마무리하는데 한참 걸렸네..).

https://www.shojihomu.co.jp/publishing/details?publish_id=4554&cd=241901
국내에서 이 책을 읽고 블로그에 포스팅하는 사람은 아마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싶은데.. 일본 도산법 실무/학계에서 실력자이자 혁명가(!)로 정평이 나 있는 고 타카기 선생님(1935년~2018년)이 살아 계실 당시(2016년) 쓰여진 인터뷰식 위인전(?) 같은 책이다.
지도교수님이 첫 미팅 때 빌려주신 책인데, 이런 책은 왜 존재하며, 하필 왜 빌려주신 걸까 의아했으나.. 읽다 보니 느끼는 점이 많다.
한국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본인의 순수한(?) 감성(의지를 불태우거나, 의기투합하거나, 유지를 받들거나..)이 법학계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실무/학계의 발전으로 이어지는지를 엿볼 수 있는 신박한 책이었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순수한 열정을 불태우신 분을 기념할 수 있는 출판문화가 발전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중요 사건을 처리할 때 마다 논문의 형태로 공표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는데(우리회사 모 선배가 DB 정리하여 후배들에게 많은 참고가 된 것의 확장판 같이), 노하우를 영업비밀 내지 수익 창출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분위기와 확실히 달라서 놀랍다.
본 포스팅 또한 개인적 정리/소장용이므로 번역 과정에서 생략/추가가 들어가 있음.
[본문]
- 타카기 선생님의 혁명가로서의 자질, 능력은 (i) 조직을 구성, 운영하는 탁월한 능력 (ii) 폭넓은 호기심과 이를 뒷받침하는 실행력 (iii) 역경에 굴하지 않고,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행복"을 향해 전환시키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新堂幸司 선생님의 추천사 iv).
- 유학 경험이 없었음에도, 특유의 도전 정신으로 40대 중반부터 영어, 미국 도산법 공부를 시작하여 IBA, Committee J, INSOL International, American College of Bankruptcy의 회원으로, International Insolvency Institute(Triple I)의 이사로 재직하며, 2005년에 받은 상금을 재원으로 공익재단법인 민사분쟁처리연구기금에 도산재생법제기금을 설치하고 젊은 연구자들에게 Triple I 타카기상을 수여하고 있다(서문 xiii).
https://mhk.or.jp/essay/ 

「倒産・再生法制研究」に関する懸賞論文募集について  | 公益財団法人 民事紛争処理研究基金

※各申請書類は、「ダウンロード」にあります。

mhk.or.jp

-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관서 지방에서는 화의 사건이 많이 활용되었는데, 동경지방법원을 비롯하여 관동 지방의 법원이 화의를 적대시하는 태도(보전처분의 전제로서 가결요건에 해당하는 채권자의 동의서를 사전 제출하도록 하는 것)를 멈추고, 오사카의 유연한 대응(폭력단 계열의 정리꾼 개입을 막기 위해 신청 즉시 보전처분을 발령하는 것)을 전국에 넓히고 싶었다.  (중략) "타카기 선생님이 처음 말을 꺼냈을 때, 일본의 도산법을 더욱 사용하기 좋은 것으로 만들자고 해서 놀랐다"고 했는데,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주) 동서도산실무연구회 관련해서 언급되는 谷口安平 교수님(도산법의 대가)은 내 지도교수님의 교수님이고, 谷口 교수님의 교과서 체계(책의 체계를 회생, 파산으로 분리하여 편성하지 않고, 도산실체법 문제는 논점 별로 회생과 파산을 비교 설명하되, 책의 후반부에 청산형과 재건형 절차의 흐름을 훑어보는 방식)는 (뵙진 못하였으나 존경하는) 노영보 변호사님의 도산법강의 책에서 계수되는 오버더현해탄 유니버스..
- 보통 사람들의 5배 일하고 3배 놀자는 것이 내 모토이다.
- 처음부터 도산법에 흥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중략) 회사정리는 정리꾼 등에게 방해받지 않고 중소기업을 재건하기 위한 유일한 길처럼 생각되었다.  하지만 조문도 적고 참고서도 없어서 스스로 알아볼 수 밖에 없었다.  (중략) 상법에 의한 회사정리의 실무라는 논문을 연재했다.  변호사로서 가장 바쁠 때여서 힘들었지만, 퇴근하고 공부를 시작하면 정신이 또렷해져서 잠들지 못하였다.  자지 않고 밤을 샌 후 그대로 아침에 출근한다.  그날은 평소와 같이 일을 하고 밤 10시에 집에 돌아온 후 숙면을 취한다.  그 다음 날도 자되, 2일 연속으로 잔 날 다음 날에는 다시 아침까지 철야 작업을 한다.  이러한 생활을 1년 반 거듭하여 책을 썼다. (중략) 실무가가 집필한 논문 중에는 단순히 경험담을 끄적인 수준의 것도 있지만, 제대로 공부하고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후 몇 년간은 회사정리사건의 신청 건수가 늘었다.
- 43살에 심근경색 발작을 일으켜 3개월 간 입원하였다.  상당한 중병이었고 70% 이상의 확률로 살지 못할 것이라 했다.  의뢰인이나 자문사도 그렇게 생각해서 떠나갔고, 퇴원한 후에는 일이 없었다.  그러던 중 오사카의 대형 건설사 업무를 맡게 되었고, 괌 개발사업 관련 분쟁이 있어서 영어를 공부하게 되었다.  영어 공부를 하던 중 법률시보에서 미국 도산법(1978년 미국 연방 개정 도산법)에 대한 글을 보게 되었고, automatic stay, DIP, DIP Finance 및 기존 담보권에 우선하는 super priority에 대한 내용을 알게 되었다.
공부는 조문을 입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여러 차례 미국에 건너가서 문헌을 입수하였다.  문헌을 보는 것 만으로는 부족해서, 책에 나온 학자, 회생계획안에 이름이 기재되어 있던 변호사, 판사 등을 찾아가서 질문을 하였다.  Hearing을 방청하기도 하였다.  때론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지만 나중에 일본의 지위가 높아지고 나서는 먼저 자료를 보내주기도 하였다.  Wall Street의 변호사는 불친절했지만 LA의 변호사는 친절했고, 댈러스나 콜로라도의 변호사는 매우 친절하였다.
- 미국 도산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와 관습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영미법 전반을 공부해야 했다.  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릴라 취급을 당하는 정도의 절망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그 성과를 미국신도산법개설이라는 하나의 책으로 출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책을 출간한 후 잘못된 부분을 몇 군데나 발견하여 전부 회수하여 불태워버리고 싶어졌고, 출판사 담당자에게 무리하게 요청하여 절판해 달라고 하였다.  (중략) 미국 도산법을 공부한 덕에 전세계에 친구가 생겼고, 내 생각도 많이 바뀌었으며, 미국 도산법이 내 인생을 바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2002년 66세의 나이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평생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호칭이고, 내가 유일하게 자랑하는 것이기도 하다.
- 쿄에이생명보험 갱생(2001년 4월 종결) 당시 인수인 후보를 1개사로 추린 것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실사 등을 거쳐서 인수인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걸리면 보험계약의 해약이 이어져서, 기업가치가 훼손되고 손해가 증가할 우려가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으나, 이후 미국에서 Stalking Horse Bid 방식이 개발되었다.  지금이라면 그러한 방식을 채택하였겠으나, 그때는 이러한 방법은 생각도 하지 못하였다.  물론 재산평가는 엄격하게 하였고, 인수인이 부당한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채무자의 재산 처분액이 평가액과 다른 경우 그 절반 상당액을 보험계약자에게 환원하도록 하는 내용을 갱생계획안에 담기도 했다.
- 극히 한정된 일부 베테랑 변호사에 의해, 반사회적 세력의 관여를 경계하면서도, 부정을 배제하며 이루어지는 사적정리절차를 금융업계나 산업계에서 공정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고, 나에게는 꿈같은 일이기도 했다.
- 주거래은행과 채무자 기업이 일방적으로 일시정지 통지를 하고, 그에 대해 제1회 채권자회의에서 승인이라는 절차를 거치도록 한 것도 획기적이었다.  일시정지가 은행거래약정서에 정해진 기한의 이익 상실사유라면 문제가 되겠으나, 상거래채권의 변제는 계속하여 이루어지므로 일반적인 지급정지 상태라고 보기 어려우며 기한의 이익 상실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되었다.
그 이후 회사갱생법의 입법 과정에서 상거래채권을 제외한 금융채권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회사갱생절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변호사회로부터 제출되었지만, 헌법상 평등원칙에 반한다는 이유로 일몰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적정리 가이드라인에서는 경제적 합리성의 관점에서 이러한 차별이 정당화되었다.
사적정리 가이드라인은 사업재생계획안의 실질적 요건(내용)을 정했다는 점(3년 내 채무초과상태 해소, 경상이익 흑자화, 지배주주 권리 소멸, 기존주주 권리 소멸 내지 감자, 경영자 퇴임)에서, 절차의 형식만을 규정한 London Approach나 INSOL 8 원칙보다 뛰어난 면이 있다.
- 21세기에 들어 내 목표는 조기에 사업을 재생하는 문화를 보급하는 것이었다.  경제적 파탄 상태에 치닫기 전에 먼저 손을 쓸 필요가 있다.  2006년에 "사업재생-회사가 파탄 상태에 이르기 전에"라는 책을 썼는데, 부제는 출판사에서 붙인 것 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게 아니고 내 본심이다.
- 사적정리 가이드라인과 산업재생기구구조(scheme)의 가장 큰 차이는 채권매수 기능의 유무에 있다.  10조엔 상당의 정부 보증 하에 자금조달을 하고, 해당 자금을 활용하여 대상사업자에 대한 은행의 대여금채권을 매입할 수 있었다.
업무 개선을 위한 사업재건계획과 함께, 과도한 이자부채권을 대폭 삭감하기 위한 채권포기나 출자전환을 포함한 재무개선계획을 작성하게 된다.  채권매수가격은 포기 후 잔액으로부터 5% 삭감(바로 상환할 수 있는 경우 3%)한 금액으로 하였다.  당시 NPL 시장은 활성화되지 않았고 외국계 펀드가 단독으로 매입하는 경우가 많아서 시가를 객관적으로 정하기 어려웠다.  금융채권자에게 산업재생기구가 만든 계획을 제시하고, 그에 동의한 채권자는 포기 후 감액된 채권을 그대로 가져도 좋고, 산업재생기구에 매각하는 것도 가능하도록 하였다.
불량채권을 Good Bank에서 Bad Bank로 이전시키고,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주체로 하여금 불량채권을 처리하도록 하는 방법은 미국의 필라델피아에 있던 Mellon Bank(현 New York Mellon Bank)가 1980년대 개발한 방법이다.  당시 주택 버블로 인해 미국의 Saving & Loan Association이 대량의 불량주택대출채권을 가지고 도산하게 되었는데, 위 방법으로 이를 매수하여 정리한 것이 1989년에 설립된 정리신탁공사(Resolution Trust Corporation)이다.  1997년 IMF가 아시아 국가들에게 불량채권을 분리하여 관리하도록 하는 Asset Management Company를 만들도록 한 것도 이러한 방식의 일환이다.  추후 Good Bank/Bad Bank 방식은 Good Company/Bad Company 방식으로 응용되어, 회사분할을 통해 장래성 있는 부문을 재생시키고, 폐쇄하는 부문은 청산하게 되었다.
일본 실무상으로는 (도입 취지와는 다르게) 채권자의 사업재생계획안에 대한 동의 부분이 더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실제 주거래은행의 경우는 조정된 채권을 계속 보유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고, 주거래은행 이외의 은행으로부터 채권을 매수하는 경우가 많았다.
- 산업재생기구의 시작은 순조롭지 않았다.  미츠이스미토모은행을 제외한 대형 은행으로부터 모두 외면당했다.   산업재생기구준비실에 있던 은행 사람들을 내쫓았기 때문이다.  물론 채권을 감면당하는 입장인 금융기관 사람들이 채권을 감면하는 사업재생계획을 작성하는 것은 자기모순이고 Conflict 이슈가 있다.  Good Bank, Bad Bank 방식과 Asset Management Company 방식이 세계적으로 활용된 것은 이러한 Conflict를 회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은행에서 산업재생기구준비실로 온 사람들은 사업재생의 프로이고 사적정리 가이드라인 때와 같이 진지하게 임하기 위해 왔는데, 다소 이른 판단이었던 것도 같다.  2년차 이후에는 금융청이 철저한 불량채권 처리를 추진하면서 은행과의 관계도 개선되었다.
- 필요한 구조조정이 끝나면 최대한 빨리 새로운 인수인을 찾아서 exit하는 방안, 최대한 기업가치를 올린 후 exit하는 방안이 있다.  외과수술은 최대한 빨리 끝내고, 최대한 신속히 평상시의 태세로 복귀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 경영자 개인에게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이나 형사책임을 묻는 풍조는 지양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경영자는 책임 추궁을 두려워하여 마지막까지 사업재생에 착수하는 것을 주저하게 되고, 회수 불가능한 채무가 증가하게 된다.  주주의 경우 주식의 소각, 경영자의 경우 퇴진의 형태로 책임을 지면 되고, 개인적인 민형사책임을 묻을 필요는 없다. 
- 산업재생기구 활동을 통해 민간이 주도하는 조기사업재생의 문화를 일본에 정착, 보급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REVIC을 만듬으로서 사실상 산업재생기구를 부활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기업의 재생은 본래 민간이 자주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며, 정부가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산업재생기구는 버블붕괴의 후유증으로부터 일본이 벗어나지 못하여 불량채권처리(금융재생)와 산업(사업) 재생을 동시에 하여 일본 전체를 빠르게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산업재생기구가 해온 방법을 빠르게 민간에 이식하여 바톤 터치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 IBA의 Committee J, Internatioanl Insolvency Institute, UNCITRAL, World Bank, 아시아개발은행, OECD, American College of Bankruptcy에서 활동을 하고, INSOL International에 Japan Federation of Insolvency Professionals을 창설한 후 단체가입을 하였다.  
- 동아시아도산재건협회의 경우, 일본과 한국이 중국을 자극하여 중국에서 공정하고 형평에 맞는 도산재건실무를 정착시켜 일본, 한국의 기업이 이러한 절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추진한 것이다.  물론 3국의 도산법이나 도산실무의 발전을 공유하고 절차탁마하기 위한 것도 있다.
- '개인판 사적정리 가이드라인'은 동일본대지진 피해자의 구제(은행 등 주택금융채권자에 대한 채권 면제)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자유재산은 500만엔인데, 자택을 무조건 자유재산으로 보유할 수 있는 미국(특히 자유재산의 범위에 관대한 플로리다주)에 이주하여 훌륭한 가옥을 취득한 후 자기파산하는 경우도 발견된다.  이는 훗날 '경영자 보증 가이드라인'의 보증 해제 이전에 남길 수 있는 재산의 범위를 결정하는 데에도 참고가 되었다고 한다.
- 사적정리에 다수결 원리를 도입하기 위해, 2014년 3월 '사업재생에 관한 분쟁해결절차를 더욱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검토회'를 발족시켰다.  2015년 3월에는 관련 보고서를 완성하여 공표하였고, 2015년 7월에는 심포지움을 열어서 많은 찬성을 얻었다.  2014년, 2015년 아베 내각의 일본재건전략 가운데에도 사적정리의 다수결 실현을 정책의 하나로 명기하였으므로, 빠른 시기에 입법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 UNCITRAL의 국제도산 모델법은 제정법상 절차에 대해 적용되고, 사적정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2015년 개정된 EU 도산규직은 Pre-insolvency를 국제적, 통일적으로 처리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 147쪽 다수결에 의한 사적정리 관련 2014~2015년 논의 참고
- 다수결에 의한 사적정리와 관련하여 ABA GL & MA를 사용하거나 이를 참고하여 개별 규정을 만들고, 계획에 동의하지 않는 소수채권자를 구속하기 위해 워크아웃을 돕는 입법이 필요하다.  유럽 국가들, 한국, 싱가폴, 필리핀에서는 이를 이루어냈다.
[해제(解題)에 갈음하여 - 이 책은 왜 간행되어야 하는가(스도우 마사히코)]
- 타카기 선생님께서 곤경에 처한 기업의 사적정리에 관여한 행적을 추적하면, 그 증언이 그대로 법문화 진화에 관한 역사의 유력한 사료가 된다.
- 1970년대에 사업이 어려워진 경우의 사적정리는, 극단적으로 말하면(極論すれば), 아무런 제도가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무가 정착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지력, 담력, 교섭력이 뛰어나고 열의에 가득찬 변호사가 다방면으로 활약하여 다수 채권자와의 화해가 성립된 경우도 있었지만, 특히 어음이 부도난 경우 파국적인 혼란을 맞이하고 심각한 사태가 야기된 경우도 많다.  경영자는 극단적인 상황에 몰려 고리금융에 손을 대어 자멸하거나 도망, 가족과의 이별,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기도 했다.   혼란에 편승하여 정리꾼이 등장하고, 도산사건에 반사회적세력이 득세하여 자금의 원천을 제공하는 일도 있었다.  도산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던 풍경은 보통 이런 것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일반적으로 보이는 사고 형식, 행동 패턴은 "문화"이고, 그 법적인 측면을 "법문화"라 부를 수 있다.  이것이 조기에 이루어지는 사업재생에 관련된 것이라면, 조기사업재생에 관한 법문화라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의 상식이 바뀌고, 지금과 같은 제도, 규칙이 생기고, 이에 따른 실무가 일반적인 상식이 되어, 그 결과 사람들의 사고 방식, 행동 패턴도 이에 대응하여 새로운 것으로 바뀐다.  그렇다면, 그것을 조기사업재생에 관한 법문화의 변천이라 할 수 있다.
지난 반세기에 걸친 법조생활을 통해, 사람들에게 일자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삶의 보람과 행복을 좌우하는지에 대해 여실히 깨달았다.  일자리를 잃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비극을 초래하는 지도 잘 알고 있다.  조기에 사업을 재생하는 새로운 실무가 정착된 결과, 기업이 도산을 면하게 되고, 관련 종사자가 일자리를 잃거나, 사업이 해체되어 사회적 손실이 발생하는 등의 심각한 비극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게 되었다(その結果、より多数の人々がより幸福になり得ることになった。).
나는 역사나 문화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혹은 비극을 피할 수 있는) 상태로 바뀌어 가는 것이 역사의 진보로서 가치있는 것이며, 그 변천이 인간의 지혜나 이성의 승리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진화"라는 호칭에 걸맞는 것이라 믿는다.  조기사업재생에 관한 제도, 규정, 실무의 정비는 관련된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창의적인 발상을 통해 이루어진 것임은 자명하고, 그야말로 인간의 뛰어난 지혜(英知)의 성과이므로, 조기사업재생에 관한 법문화의 변천은 그 역사의 진화라 할 수 있겠다.
문화의 변천이나 진화에 이르기까지 왜 이리도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인가?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도, 그렇게 되기까지는 상당한 노려과 시간이 소요되는 기간(前史)을 피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부실기업의 금융채무는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불량채권"일 것이나, 금융기관이 불량채권 처리를 위해 대손충당, 상각을 하면 자기자본비율이 저하되고 경영난이 심화되어, 경제 전체의 혼란(Systemic Risk)을 야기하고 공황에 이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피하기 위해 국가가 금융기관에 거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수단의 유용성이 어느 정도 "상식"으로 인정되게 되었고, 이에 따른 사고방식, 행동 패턴이 정착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버블경제가 붕괴되던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미시적인, 민간금융기관의 경영난은 자기책임의 문제이다, 국민의 세금을 써서 민간금융기관에 거액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그 자체로 보면 부정하기 어려운 말들이 극복될 때까지,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되는 사태를 막을 수 없었다.  속칭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역사가 초래된 것이다.
새로운 제도에 따라, 금융채권과 상거래채권을 구분하고, 금융채권의 원금 또는 이자를 감면(채권포기)하는 발상은, 금융채권의 원천이 예금자의 소중한 (땀의 결정체인) 예금인 이상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는 생각, 채권자평등의 원칙 하에 금융채권과 그 외의 상거래채권을 구별(차별)하여 취급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기존의 생각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심지어 기존의 생각은 그 자체로 맞는 말이고,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생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의논을 계속 쌓아 올리는 등 장기간에 걸친 작업이 선행되고, 이를 극복하여 새로운 제도나 규정을 정비하는 단계에 이르더라도 그 영향이 너무나 클 경우 다시 논의가 뒤집어져 처음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충분히 있으므로,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기간의 존재를 각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기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결국 상황을 통찰하고 적확하게 문제를 해결하기에 충분한 제도나 규정의 정비를 신속히 단기간 내에 실현시킬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갖춘 리더와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사적정리가이드라인은 단 3개월 만에 실현되었고, 이는 타카기 선생님이 밤을 새워 작성한 것이다.  하지만 타카기 선생님은 아직 조기 사업재생에 관한 문화가 발전하는 단계에 있고, 다수결 원리가 제도화되어야 비로소 성취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후략 - 일반적인 마무리) 

,

요새 재미를 붙인 것 중에 하나가, 교토의 오래된 카페(킷사텐)에 가보는 것이다.

소위 3대 커피(이노다, 스마트, 오가와or마에다) 중 이노다, 스마트를 가 보았는데 둘 다 매우 만족스러웠음.  이노다 커피 별관은 너무 예뻤고, 스마트 커피는 입구에서 거대 로스터 자가배전을 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스마트 커피의 거대 로스터기. PROBAT은 독일 명품 로스터기라고..

그렇게 커피에 재미를 붙이니, 교토에 실로 오래된 카페가 정말 많음을 알게 되었다.  유서깊은 교토의 카페 중 하나가 로쿠요샤(六曜社).  2대 아들이 지하, 3대 손자가 1층을 각 영업하고 있음.

사실 책을 읽기 전에 미리 가 보았는데(1층), 분위기는 제법 좋았다.  하지만 (i) 의자와 책상이 너무 낮고 불편했고, (ii) 1층의 경우 사람이 많으면 합석하는 구조였으며, (iii) 커피는 맛있었으나(근데 이노다/스마트가 더 맛있었음) 도넛은 기대를 너무 많이 한 나머지 쏘쏘... 였던지라, 상대적으로 만족도가 낮았다. 

모닝구 세토(700엔). 커피는 훌륭했지만 빵과 야채 주스는 무난한 수준.
12시부터 주문 가능한 도-나쯔(200엔). "그리운 맛"에서 그리움을 빼니 평범한 맛.
레트로한 계수기는 마음에 들었다!

그러던 중 3대를 이어온 로쿠요샤를 취재한 책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빠르게 읽었다.  평범한 내용이고 2대 오사무() 씨의 뮤지션 활동에 관한 이야기가 과하게 길어 몰입감을 해치기도 했다.  하지만 (i) 도입부에 만주사변 이후 일본 관점에서 본 디아스포라에 관한 내용은 신선했고, (ii) 중간에 나오는 수많은 노포 카페/음식점은 나의 구글맵에 수많은 흔적을 남겼으며, (iii) 결론적으로 지하는 한번 더 가볼만 하겠다.. 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대단히 인상적인 문구는 없었으나 기록용으로 몇 개 남겨봄(이번에도 역시 내가 자의적으로 번역한 것임).

- 소바집 문을 열고 들어가는 사람은 향긋한 막 나온 소바를 호로록 먹는 것이 목적이다.  스시집에 가는 사람은 머리 속에 신선한 스시 네타만이 가득하다.  하지만 카페는 그렇지 않다.  카페의 문을 연 사람이 반드시 커피가 먹고 싶은 것은 아니다(가와구치 요코).

- 이상을 너무 높게 잡아서 매일의 작업이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 아닌지.  로쿠요샤를 100년 동안 이어 가겠다고 처음에 선언해 버렸잖아.  100년을 이어 나간 후에, 대단하다는 말을 들으면 그때 가서 "매일 열심히 해왔기 때문이에요"라고 말하면 좋잖아.

- 내가 생각하는 멋있는 것은, 정말 잘 살고 있는지에 관한 것.  사장이어도 매일 그릇을 닦고, 커피를 끓이고, 청소하는 것을 공들여 하지 않으면, 시선이 변해 버려.

사족으로 오사무 씨(포크송 싱어송라이터)가 교토대 요시다료(..)에서 최근에 한 공연 영상을 첨부.  김일두 아저씨를 연상시키는 기교 없고 텁텁하면서 묵직한 노래.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것"..

 

とまらない汽車~電車が出てゆく

 

,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소설 뿐만 아니라 루틴으로도 유명하다.

(출처: https://medium.com/%EC%95%8C%ED%8A%B8-alt/haruki-murakamis-routine-celebrity-routine-3-74d80c5a07c)

나도 짧지는 않은 기간 동안 직업인으로 살며 새벽 패턴을 (정립까지는 하지 못했고) 선호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효율적이라고 생각한 루틴과 비슷하여 + 자유롭고 방탕한(?) 삶을 살다가, 드디어 놀라운 자연치유력의 효과로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여, 그 준비 단계로 고른 책.  

"이 책은 무라카미 씨가 어떻게 소설을 써 왔는지를 이야기한 책이며, 이는 거의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이야기한 것과 같다.  그래서, (중략)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에게(즉, 거의 모든 사람에게) 종합적인 힌트와 격려를 주는 것이다(시바타 모토유키)"라는 소개 글과 같이, 참고할 부분이 많았다.

특히 (i) 직업인으로서 "계속성" "지속가능성"에 대한 서술에 큰 공감이 갔고, (ii) 논문 작성이라는 지상 과제에 직면한 나로서는, (호흡의 측면에서 에세이 등 잡문 = 메일 커버 기타 단순 업무, 단편 소설 = 의견서, 장편 소설 = 논문이라는 공식을 세운다면) 하루키가 장편 소설을 쓸 때의 자세나 마음가짐, 루틴이 많은 참고가 될 것 같다.  초고를 다양한 관점에서 반복하여 수정하는 습관은 CJ가 저년차 때 알려줬던 스킬과 비슷한데, 자신의 영역에서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사람 간의 유사성을 발견한 듯 하여 혼자 흥미로왔음.  (iii) 마감(기한)에 관한 부분 너무 뜨끔했고, 내가 어떠한 선택을 하든 반드시 보완해야 할 영역이라 생각함.

물론 이 에세이에도 하루키 특유의 자기반복 + 다소 장황한 비유와 서사는 여전하고, (본인이 자인하듯, 소설이 본업이고 에세이는 부업 같은 것이라 그런지) 정제되지 않아 거슬리는 부분도 있으나, 건질 문구들만 선별하여 정리.  일문본을 읽고 본인용으로 정리한 것이므로, 번역이 국문 출판본과 다를 수 있음.  상당 부분 의역도 있고 일부는 앞뒤를 바꾸기도 함.

- 하나의 소설을 쓰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뛰어난 소설 하나를 쓰는 것도 사람에 따라서는 어렵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소설을 계속하여 쓰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 "창조성이란 매우 개인적인 것이다.  확고한 정체성, 개인적인 스타일이 있고, 그것이 재능에 반영, 융화되어 하나의 형태가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독창성이란 창조하는 것, 기존의 견해를 부수고 상상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날개를 뻗어, 마음 속에서 완전한 세계를 몇 번이고 만들어 내고, 그러면서도 항상 그것을 비판적인 내적 시선으로 감시하는 것을 의미한다."(올리버 색스)

- 한 때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불쾌하게 여겨졌던 고흐나 피카소의 그림이, 어느새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감명이나 자극, 치유의 대상이 되었다.  이것은 그들의 그림이 독창성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감각이 그 독창성에 동화되고, 그것을 하나의 참조(reference)로 자연스럽게 흡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츠메 소세키나 헤밍웨이의 문체도 마찬가지이다.  이렇듯 과거에 독창적이었던 것을 현 시점에서 분석하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같은 시대에 존재하는 독창적인 표현 형태에 감응하고, 이를 현재진행형으로 정당하게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  왜냐면 이는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불쾌한, 부자연스러운, 비상식적인 - 경우에 따라 반사회적인 - 형상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중략) 독창성이란 그것이 실제 살아 움직일 때에는 그 형상을 가늠하기 어렵다.  사견으로는, 어떤 표현하는 자를 "독창적"이라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아래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i) 다른 자들과는 명백히 다른 독자적인 스타일(사운드, 문체, 색채 등)을 가지고 있고, 보거나 들으면 아마 그 사람의 표현일 것이라 (대략) 바로 알 수 있을 것.
(ii) 그 스타일을 자신의 힘으로 계속 발전시켜야 하며, 자발적, 내재적인 자기혁신력을 가질 것.
(iii) 독자적인 스타일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표준화되고, 사람들의 의식 속에 흡수되어, 가치판단 기준의 하나로 자리잡을 것.  또는 후세의 사람들에게 풍부한 인용의 근거가 될 것.

정리해 보면 알 수 있듯, 독창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시간의 경과"가 중요한 요소에 해당한다.  독자적인 스타일을 가진 자가 갑자기 나타나서 세간의 이목을 끌더라도, 순식간에 사라지거나 질려 버린다면, 이를 "독창적이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많은 경우 "원 히트 원더"로 끝나 버리고 만다.

- "원천(源泉)에 닿기 위해서는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흐름을 타고 내려가는 것은 쓰레기뿐이다."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

- 당신이 무언가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다면, "자신이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보다는 오히려 "무언가를 추구하지 않는 자신은 어떠한 모습인지?"를, 그러한 모습을 머리 속에서 시각화해보는 것이 좋다.  

- 만약 내가 쓰는 소설에 독창성이라 불릴 만 한게 있다면, 그것은 "자유로움"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매우 단순히, 특별한 이유도 없이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당시의 나의 마음을 비춘 소설이 쓰고 싶었다 - 단지 그것 뿐이다.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즐거웠고, 자신이 자유롭다는 자연스러운 감각을 가질 수 있었다. (중략) 여러 표현 작업의 근간에는, 늘 풍부하고 자발적인 기쁨이 있어야 한다.  독창성이란, 그러한 자유로운 마음가짐을, 제약 없는 기쁨을, 많은 사람들에게 최대한 날 것 그대로 전하고 싶다는 자연스러운 욕구, 충동이 가져오는 결과인 것이다.

- 나는 Writer's Block이라 불리는 현상을 경험한 적이 없다.  나는 소설을 쓰기 싫을 때, 또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을 때에는 전혀 쓰지 않기 때문이다.  쓰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에만, "자, 이제 쓰자"라고 마음먹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중략) 한동안 소설을 쓰지 않다 보면, "슬슬 소설을 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눈 녹은 물이 댐에 고여 가듯, 표현하고 싶은 소재가 내면에 축적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참을 수 없어져서(가장 좋은 상황) 책상 앞에 앉아 새로운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 장편소설을 쓴다는 작업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기본적인 순서나 규칙은 큰 틀에서 변하지 않고, 나에게는 통상적인 영업행위 = Business as ususal이라 부를 만한 것이다.  어떤 정해진 패턴에 자신을 몰아 넣고, 생활과 업무의 사이클을 확정함으로서, 비로소 장편소설을 쓰는 것이 가능해 진다는 측면이 있다.

장편소설을 쓸 때에는, 우선 책상 위의 모든 것을 깔끔하게 정돈한다.  소설을 쓰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작성하지 않는다는 태세를 취한다.  하루에 400자 원고지 10장  정도의 원고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더 쓰고 싶더라도 10장 정도에서 멈추고, 잘 풀리지 않는 날에도 10장은 어떻게든 채운다.  장기간 일을 할 때에는 규칙성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잘 써지는 날에는 엄청난 기세로 잔뜩 써버리고, 써지지 않는 날에는 쉬어 버린다면, 규칙성은 생기지 않는다.  출근 카드를 찍듯, 하루에 10장을 채운다.

아이작 디네센(Isak Dinesen)은 "나는 희망도 없고, 절망도 없이, 매일 조금씩 쓴다(Write a little every day, without hope, without despair)"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나는 하루 10장의 원고를 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를 데우고, 4~5시간 책상에 향한다.  하루 10장 원고를 쓰면 한 달에 300장을 쓸 수 있다.

장편소설은 초고를 마친 후에도 다른 승부가 시작된다.  여기서부터가 시간을 들일 만한 보람이 있는,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초고를 마치면, 조금 시간을 두고(1주일 정도) 첫번째 수정본을 쓰기 시작한다.  나의 경우 첫 부분부터 전부 고치기 시작한다.  이 때에는 큰 틀에서, 전체적으로 손을 본다.  모순되는 곳, 논리적이지 않은 부분이 발견되면 하나 하나 조정하고,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정합적인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수정 작업에 1~2개월이 소요된다.

이러한 작업이 끝나면, 다시 1주 정도 두고 두번째 수정 작업에 들어간다.  이번에는 조금 더 세부적인 부분에 시선을 두고, 정성스레 고쳐 나간다.  풍경의 묘사를 다듬거나, 대화의 흐름을 조정한다.  논리의 전개에 어색한 부분은 없는지 점검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쉽게 풀고, 말의 흐름도 보다 원활하고 자연스럽도록 한다.  대수술은 아니지만, 작은 수술을 반복한다.

다시 조금 쉬었다가 다음 수정 작업에 들어간다.  이번엔 수술이라기 보다는 미세 조정에 가까운 작업이다.  어느 부분의 나사를 조금 더 조여야 할지, 아니면 풀어야 할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해 진다.  전체와 부분의 밸런스를 조정한다.

이때 쯤에 한번 긴 휴식을 취한다.  건설현장에서 "양생"이라는 단계가 있는데, 제품이나 부품을 재우는 것을 의미한다.  방치하는 행위를 통해 공기를 통하게 하고, 내부를 단단히 굳게 하는 것이다.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그 다음 다시 세부적인 부분을 철저하게 수정하기 시작한다.  충분히 재워둔 작품은, 전과는 제법 다른 인상을 풍긴다.  전에 보이지 않던 결점도 보이기 시작한다.  충분히 깊이 있는 이야기인지(奥行きのあるなし) 여부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작품을 양생했듯 내 머리도 양생하였기 때문이다.

이 단계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제3자의 의견이다.  나는 어느 정도 작품으로서 형태가 잡히면 우선 아내에게 원고를 맡긴다.  그녀의 비평에는 "과연 그렇군""그럴지도 모르겠어"라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아니, 그렇지 않아.  내 생각이 역시 맞아"라고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제3자" 도입 단계에서 내가 지키는 하나의 룰이 있다.  그것은 "지적을 받은 부분이라면, 어느 경우이든 다시 쓴다"는 것이다.  비판에 납득이 가지 않더라도, 어쨌든 지적받은 부분이라면 처음부터 다시 쓴다.  지적에 동의할 수 없는 경우에는 상대방의 조언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수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방향성은 어찌 되었든, 자세를 바꾸어 그 부분을 다시 쓰고, 다시 읽어보면, 대부분의 경우 그 부분이 전보다 나아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읽은 사람이 어느 부분에 무언가를 지적하였다면, 지적의 방향은 차치하더라도, 그 부분에는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즉 그 부분에서 소설의 흐름이 막혀 있는 경우가 많고, 내 일은 그 막힘을 정돈하는 것이다.  설령 "이건 완벽한데? 고칠 필요 없는데?"라고 생각하더라도, 묵묵히 책상 앞에 앉아, 어찌 되었든 다시 쓴다.  왜냐면 어떤 문장이 "완벽하게 쓰였다"는 것은 실제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 나는 자신의 작품이 출판된 후 냉엄한 - 생각지도 못한 수준으로 엄중한 - 비판을 받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넘길 수 있다.  왜냐면 나는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시간을 충분히 들여 만들어낸 것은, 시간이 증명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는 확실한 느낌이 있다면, 두려워할 것은 없다.  나머지는 시간에게 맡기면 된다.  시간을 소중히, 신중히, 예의 바르게 대하는 것은 중요하고, 시간을 나의 편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레이몬드 커버(Raymond Clevie Carver)는 이렇게 말한다.

""시간이 있었다면 더 잘 쓸수 있었을텐데"라는 지인의 말을 듣고, 나는 정말 아연실색했다.  그의 소설이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면, 그런 소설 따위 왜 쓰는 것인가? 우리가 무덤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감, 열심히 해냈다는 성취감 정도에 불과하다.  나는 그 지인에게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세상에는 훨씬 간단한 일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너의 능력과 재능을 최대한 쥐어짜낸 것, 있는 힘껏 힘을 다해 "가장 좋은 것"을 쓸 것.  변명을 하거나, 자기정당화를 하지 말 것.  불만도 핑계도 대지 말 것."

작가들 중에는 "마감 기한이 닥치지 않으면 글을 못쓰겠다"고 하는 사람이 적지 않게 있다.  전투적이라고 해야 할까, 결기 있는 스타일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시간에 쫓겨 우당탕 글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젊을 때에는 어찌어찌 잘 될수도 있겠지만, 한 때 그러한 방식으로 잘 해내더라도, 긴 호흡에서 보면 시간이 흘러가며 점점 형편없어지는 인상이 있다(집의 욕조에서 데운 물과, 뜨거운 온천에서 솟아나는 깊은 물의 차이 같은 것이다).

시간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은, 어느 정도 자신의 의지로 시간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일정을 조정해 가야 한다.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더 잘 썼을텐데, 라는 것은, 그 작품을 쓴 시점에 나는 아직 작가로서의 역량이 부족했다는 것 - 단지 그 뿐이다.  잃어버린 기회는 돌이킬 수 없다.

나는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든 후 글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고유의 체계를 오랜 세월을 거쳐 만들어 냈고, 정성을 들여 주의깊게 정비하여, 소중히 유지해 왔다.  이에 대해서는 한 사람의 작가로서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고, 어떤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보다는 오히려 그런 일반적인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 보람차다.

독자가 나의 작품을 통해 "온천물의 깊은 따뜻함"과 같은 것을 피부의 감각으로 조금이라도 느껴 준다면, 이는 정말 기쁜 일이다.  나 스스로도 그러한 실감을 추구하며 여러 책과 음악을 섭렵해 왔기에.  자신의 "실감"을 믿자.

- 책상에서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이 최대 3일이라면 소설가가 될 수 없다.  3일이면 단편소설 한편 정도는 쓸 수 있겠지만, 다음 소설을 쓰는 사이클을 반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동안 창작활동을 하려면 계속적인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지속력이 필요한데, 지속력을 체득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초체력을 키우고, 물리적인 힘을 얻고, 자신의 몸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전업 작가가 된 후 매일 1시간 정도 달리기나 수영을 하고, 1년에 한번은 풀코스 마라톤을 뛴다.  이러한 생활을 거듭함으로서 작가로서의 능력은 조금씩 높아지고, 창조력은 보다 단단해져 안정화되었다고 느낀다.  매일 달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나 스스로도 잘 알수 없지만, 근육 증가와 체중 조절을 넘는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고 느낀다.  달린다는 행위가 "내가 이번 생에서 해야 하는 것"의 내용을 구체적이면서도 간결하게 표상한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쓰는 작업과 관련하여, 나는 매일 5시간 씩 책상 앞에서 "강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  그 마음의 강함은 원래 있던 것이 아닌, 후천적으로 얻은 것이다.  나는 자신을 의식적으로 훈련시킴으로서 이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가 갖춰야 하는 소양으로 "정신적인 강인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에 마주하더라도, 소설을 계속 쓰겠다는 강한 의지를 장기간 유지하려면, 내가 영위하고 있는 삶의 질적인 측면이 문제된다.  우선 "온전히(十全) 살아갈 것".  온전히 산다는 것은, 영혼을 담는 틀인 육체를 확립시키고, 이를 한걸음 씩 착실하게 나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도망칠 곳이 부족한 사회에서, 개인과 시스템이 조화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개인이 자유롭게 손발을 뻗고, 천천히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제도, 위계질서, 효율과 같은 것과 동떨어진 장소이다.  나는 이를 "개인의 회복실"이라 부르고 싶다. 

,

- 강한 놈은 살아남고, 약한 놈은 죽는 법이다.

- 죄수에게 가장 큰 적은 누구인가? 그것은 옆의 죄수다.

- <늑대들의 햇님>이란 그의 고향에서 달님을 가리킬 때 하는 말이다.

- 흙손으로 모르타르를 고루 펴 바르고, 그 위에 벽돌을 빨리 올려놓는다. 방향이 잘못되었으면, 재빨리 흙손 자루로 두르려서 바로잡아야 한다. 바깥쪽 벽이 수직선에 맞게 오고, 옆으로나 수직으로나 기울어진 데가 없도록 해야하기 때문이다. ...이젠 됐다. 두층만 더 쌓으면, 예전에 잘못 쌓아놓은 곳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런 다음에는 훨씬 수월하게 작업이 진행될 것이다. 지금은 정확하게 잘 살펴야 한다. 슈호프와 다른 벽돌공들은 아예 추위도 잊어버렸다. 빨리 일을 하느라고 서두르다 보니 몸에 땀이 다 날 정도로 더워진다. 

- 죄수들에게는 이때가 하루 중에서 가장 춥고 배고플 때이다. 지금 같은 때는 맹물 양배춧국이라 해도 뜨뜻한 국 한 그릇이 가뭄에 단비같이 간절한 것이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단숨에 들이켜게 된다. 이 한 그릇의 양배춧국이 지금의 그들에겐 자유보다, 지금까지의 전 생애보다 아니, 앞으로의 모든 삶보다도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 뭣 때문에 당신은 자유를 원하는 거죠? 만일 자유의 몸이 된다면, 당신의 마지막 남은 믿음마저도 잃어버리게 될 거예요. 감옥에 있다는 것을 즐거워하셔야 해요! 그래도 이곳에선 자신의 영혼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요.

- 슈호프는 말없이 천장을 바라본다. 그는 이젠, 자기가 과연 자유를 바라고 있는지 아닌지도 확실히 모를 지경이었다처음에 수용소에 들어왔을 때는 아주 애타게 자유를 갈망했다. 밤마다 앞으로 남은 날짜를 세어보곤 했다.  그러나 얼마가 지난 후에는, 이제 그것마저도 싫증이 났다. 그다음에는 형기가 끝나더라도 어차피 집에는 돌아갈 수 없고, 다시 유형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형지에서의 생활이 과연, 이곳에서의 생활보다 더 나을지 어떨지 그것도 그는 잘 모르는 일이다.

 

 “수모를 견디는 가장 현명한 방법을 담고 있는 책”이자 “고통스럽고 남루한 현실 속에서 인간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지켜가는가. 인간의 품격과 인간다움, 이런 것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지켜가는가를 잘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하는데(유시민), 그렇게 와닿는 설명은 아닌 듯 하다.

나는 오히려 (나의 경우야 자발적이지만) 강제노동에 동원되는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노동 과업을 성취하면서 역설적으로 느끼는 순수한 기쁨에 주목하였다.  뭔가 평생 편안한 자신의 감옥 속에서 벽돌을 쌓으며 즐거움을 느낄 것 같은 이 기분... 여기까지 오니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상황을 오히려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전신마취가 수반되는 수술을 하고 예능을 하루 보니까 바로 지루해졌고, (복잡하지 않은 것만 취사선택하여) 메일 회신을 하며 편안함을 느끼는 나의 모습이란..

,

[본문 중]

- 나는, 언제나 다름없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이제 엄마의 장례가 끝났고, 나는 다시 일을 하러 나갈 것이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 나는, 삶이란 결코 달라지는게 아니며, 어쨌던 모든 삶이 다 그게 그거고, 또 나로서는 이곳에서의 삶에 전혀 불만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내가 늘 엉뚱한 대답이나 하고 야심이 없으니 그건 사업하는 데는 대단히 좋지 못한 점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자리로 돌아와 일을 했다.  나는 사장의 비위를 거스르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의 삶을 바꿔야 할 이유는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볼 때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

- 저녁에 마리가 찾아와서, 자기와 결혼할 마음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마리가 원한다면 우리가 결혼할 수도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나는 이미 한번 말했던 것처럼,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아마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나하고 결혼을 해?" 마리가 말했다.  나는,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우리는 결혼할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게다가 결혼을 원하는 쪽은 그녀고, 나는 그저 그러자고 했을 뿐이었다.  그러자 마리는, 결혼이란 중대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나는 "아냐."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한동안 잠자코 있다가 말없이 나를 쳐다 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그녀는 다만, 자기와 같은 식으로 사귀게 된 어떤 다른 여자가 똑같은 제안을 했어도 내가 받아들였을지 알고 싶어 했다.  나는 "물론."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마리는 자기가 나를 사랑하는지 어떤지를 자문해 보는 것이었다.  나는 그 점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었다.  다시 또 잠자코 있다가 그녀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아마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겠지만 언젠가는 바로 그 이유들 때문에 내가 싫어질지도 모르겠다고 중얼거렸다.  내가 더 보탤 말이 없어 잠자코 있자, 마리는 미소를 띄면서 내 팔짱을 꼈다.  그리고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 그것은 내가 엄마의 장례를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그날처럼 특히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줄들이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펄떡거렸다.  불로 지지는 것 같은 그 뜨거움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게 어리석은 짓이며, 한 걸음 몸을 옮겨 본댔자 태양을 떨쳐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걸음, 단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 그가 말했다.  "내가 볼 때, 그건 하나의 불행입니다. 하나의 불행. 그게 뭔지는 누구나 다 압니다. 불행이라는 건, 어쩔 도리가 없는 겁니다. 에, 또! 내가 볼 때, 그건 하나의 불행입니다."

그는 더 계속하려고 했으나, 재판장이 됐다고 하며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자 셀레스트는 약간 당황한 표정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좀 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재판장은 간단히 말해 달라고 요청했다. 셀레스트는 또다시 그것은 하나의 불행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자 재판장은 "네, 알았어요.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은 그러한 불행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하고 말했다.

자신의 지혜와 성의를 다했으나 더 이상은 어쩔 수가 없었다는 듯이 셀레스트는 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이 번쩍이고 입술이 떨리는 것 같았다. 그는 나를 위해 자기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나에게 묻는 듯 했다. 나는 아무런 말도, 몸짓도 하지 않았으나, 한 인간을 껴안아 주고 싶은 마음이 우러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 신문에서는 흔히 사회에 대한 부채를 말하곤 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그 부채를 갚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말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탈출의 가능성, 무자비나 의식 밖으로의 도약, 희망의 모든 기회를 제공하는 광란의 질주였다. 물론 희망이란, 힘껏 달리던 도중 길모퉁이에서,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에 맞아 쓰러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러한 호사를 나에게 허락해 주는 것은 아무 도 없고 모든 것이 나에게 그런 호사를 금지하고 있었으니, 기계 장치가 나를 다시 붙잡는 것이었다.

- 아무리 해 보려 해도 나는 그러한 오만방자한 확실성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어쨌든 그 확실성에 근거를 제공한 판결과, 판결이 선고된 순간부터의 가차 없는 전개 과정 사이에는 어처구니없는 불균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판결문이 17시가 아니라 20시에 낭독되었다는 사실, 그 판결이 전혀 다를 수도 있었으리라는 사실, 속옷을 갈아입는 존재인 인간들에 의해 판결이 내려졌다는 사실, 프랑스(혹은 독일, 중국) 국민 같은 지극히 모호한 개념에 의거하여 판결이 내려졌다는 사실, 그러한 모든 것이 그 결정의 진지성을 많이 깎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선고가 내려진 순간부터 그 선고의 결과는 내가 몸뚱이를 짓뭉개고 있던 그 벽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확실하고 심각한 것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나는 죄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남들이 나에게 가르쳐 주었을 뿐이었다. 나는 죄인이었고, 죄의 대가를 치르고 있었고, 나에게 그 이상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 눈을 뜨자 얼굴 위로 별들이 쏟아지고 잇었다.  들판의 소리들이 나에게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밤 냄새, 흙 냄새, 소금 냄새가 내 관자놀이를 시원하게 식혀 주었다.  잠든 그 여름의 그 신기로운 평화가 밀물처럼 내 속으로 흘러들었다.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게 된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왜 한 생애가 다 끝나 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왜 다시 시작해 보는 놀음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뭇 생명들이 꺼져 가는 그 양로원 근처 거기에서도, 저녁은 우수가 깃든 휴식 시간 같았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에 그곳에서 엄마는 마침내 해방되어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아무도,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 주고 희망을 비워 버리기라도 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이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토록 나와 닮아서 마침내 그토록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전에도 행복해고,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이방인에 대한 편지(파리, 1954년 9월 8일, 알베르 까뮈)]

- 뫼르소로 말하자면 그에게는 긍정적인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거부의 자세입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있다고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자기가 아는 것보다 더 말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도 의미합니다.

뫼르소는 판사들이나 사회의 법칙이나 판에 박힌 감정들의 편이 아닙니다.  그는 햇볕이 내리쬐는 곳의 돌이나 바람이나 바다처럼(이런 것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존재합니다.

만약 당신이 이 책을 이러한 측면에서 해석해 본다면 거기서 어떤 정직성의 모럴을, 그리고 이 세상을 사는 기쁨에 대한 해학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찬양을 발견할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어둠이라던가 표현주의적인 희화라든가 절망의 빛 같은 것은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미국판 서문(알베르 까뮈)]

- 즉 그는 거짓말하는 것을 거부한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특히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일 때에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이건 삶을 좀 간단하게 하기 위해 우리들 누구나 매일같이 하는 일이다.

그런데 뫼르소는 겉보기와는 달리 삶을 간단하게 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사회는 즉시 위협당한다고 느끼게 마련이다. 예컨대 사람들은 그에게 관례대로의 공식에 따라 스스로 저지른 죄를 뉘우친다고 말하기를 요구한다. 그는, 그 점에 대해서 진정하게 뉘우치기봐는 오히려 귀찮은 일이라 여긴다고 대답한다.  이러한 뉘앙스 때문에 그는 유죄 선고를 받는다.

[이방인을 다시 읽는다(로제 끼요)]

- 이방인은 우선 한 인간입니다. 이방인은, 가장 초보적인 의미에서의 무관심[혹은 무차별(indifference)]이 윤리의 한 형식이라고 믿는 인간입니다.  뫼르소에게는 모든 것들이 무관(indifferent)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이것과 저것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결혼하는 것과 결혼하지 않는 것, 범속한 장례식과 종교적 장례식, 직장에서 승진을 하는 것과 승진을 하지 않는 것이 다르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시신을 옆에 두고 밤을 새운 다음 양로원의 늙은이들이 악수를 청하자 그는 그들과 친근해진 증거라고 느낍니다. 잠시 전에는 그들에게서 적의를 느꼈던 그가 말입니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점은, 그가 자신의 반응에 대하여까지 무관심하다는 사실입니다. 날이 새자 그는 자기 사무실 동료들이 그때쯤 출근을 하겠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자기는 잠에서 깨는 그 시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마치 어떤 다른 사람의 관심사이기나 하듯이, "나는 여전히 그런 생각에 좀 정신을 팔고 있었지만, 건물들 안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주의가 산만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가 자기 어머니의 모습을 다시 보기를 거절할 때도 왜 거절하는지 그 까닭을 설명하지 않은 채 그저 "아뇨."라고만 합니다.  요컨대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무관심합니다.  자기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서도 이방인인 것입니다.  마치 그의 감정들과 그가 그 감정을 체험하는 방식 사이에 어떤 괴리가 존재하기라도 하듯이. 그 감정들이 그를 스쳐 가기만 할 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입니다.

- 뫼르소는 마리에게도 재판관에게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들을 과장해 불리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간결한 표현과 완서법(litote)*이 특징인 인간입니다. 폴 발레리의 표현을 빌리건대, 그는 가장 적게 말함으로써 가장 많이 말합니다. 그가 파멸하게 되는 것은 웅변적인 수사를, 어떤 유의 언어상의 낭만주의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완서법: 완서법은 수사법의 하나이다. 직접적인 주장을 하지 않고, 그 반대의 의미를 부정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를테면, 「좋다」 대신에 「나쁘지 않다」라고 말하거나, 「어리석다」 대신에 「현명하지 못하다」라고 말하는 방법이다.

[작품 해설]

- 그는 작가수첩 I(72쪽)에 다음과 같은, 인생관의 중요한 변화를 암시하는 듯한 기록을 남긴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결혼, 출세 등등)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는데, 패션 잡지를 읽다가 문득 자신이 얼마나 자신의 삶(패션 잡지에서 말하는 바로 그러한 삶)과 무관한 존재였는가를 알아차리게 되는 사람. 1부 - 그때까지의 삶. 2부 - 유희(le jeu). 3부 - 타협의 거부와 자연 속에서의 진실."

- 작가수첩 I(146쪽)에서는 까뮈의 소설 미학의 한 핵심을 이루는, 다음과 같은 성찰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예술가와 예술 작품. 진정한 예술 작품은 가장 말이 적은 작품이다. 한 예술가의 총체적 경험. 그의 생각+삶(어느 의미에서 그의 체계 - 이 낱말이 내포하는 조직적인 면은 빼고)과 그의 경험을 반영하는 작품 사이에는 일정한 관계가 있다. 예술 작품이 그 경험을 문학적 장식으로 포장하여 모조리 다 보여 준다면 그 관계는 좋지 못한 것이다. 예술 작품이 경험 속에서 다듬어 낸 어떤 부분, 내적인 광채가 제한되지 않은 채 요약되는 다이아몬드의 면과 같은 것일 때 그 관계는 좋은 것이다.

- "우리들 각자는 최대한의 삶과 경험을 쌓아 가지만 결국 그 경험의 무용함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느끼고 만다.  무용함의 감정이야말로 그 경험의 가장 심오한 표현인 것이다."  (중략) 그러나 그는 또한 "그렇다고 해서 비관론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라고 못박는다. (중략) 피에르 앙리 시몽이 지적했듯 사르트르와 달리 "카뮈에게 타자는 지옥이 아니라 구원이었다."

이러한 적극적 활동 속에서도 삶의 무용함에 대한 의식은 그 활동들에 대한 일정한 거리를 느끼게 만들었다. "행동의 한복판에서 행동에 가담하는 가운데서도 그는 행동에서 저만큼 떨어져 있었다."라고 그의 스승 장 그르니에는 말했다. 부조리에 대한 의식이 그의 마음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삶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 삶의 절망적이고 부조리한 면을 의식할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인간은 모두 다 “사형수”로, 삶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죽음의 확신이 인간을 사형수로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사형수는 죽음과 정대면함으로 비로소 삶의 가치를 깨닫습니다. 죽음은 삶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어두운 배경이며 거울이고, 삶과 죽음은 표리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필연적인 죽음의 운명 때문에 삶은 의미가 없으므로 자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죽음에 의하여 유한하게 한계가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삶은 더욱 귀중하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삶을 더욱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소설의 참다운 주제는 그러므로 죽음 앞에서의 절망이 아니라 삶의 찬가, 행복의 찬가입니다.

이것이 이 비극적인 소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어두운 밤 시간이 등장하지 않는, 영원한 여름, 영원한 태양의 소설 이방인의 진정한 결론입니다.

 

나에겐 구원같은 책.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을 때 나를 몇 번이고 일으켜준 책. 1부는 "정다운 무관심" - 무관심에 대한 위로 내지 허무에서 오는 동질감을, 2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권총의 방아쇠를 당겨도 되지 않음을 알려준다. 역자의 결론에 동의하기 어려우나, 이를 존중하는 삶을 살아야 겠다고 생각한다.

 

,

 

@만해마을

연차를 쓰고 조우한 공간과 시.
(연차를 쓴 날 저녁에 출근해서 이러고 있는 것은 마지막 남은 책임감인가, 극단적인 회피의 양태인가?)

리스본 27 체 담배 사용법

(전략)
눈을 뜨고 커튼을 열자 산허리에 안개가 자욱했다
분명 아침인 것 같은데 점점 어두워지는 풍경들, 하얀 눈밭 위로 소리 없이 바람들이 몰려다니고 나는 침묵의 중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움이 속된 것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청춘이다 지난 내 감정의 우듬지에서 말없이 흔들리며 서서히 피어오르던 그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나는 단 한 대의 기타도 지니고 있지 아니하였고 부를 만한 노래도 기억나지 않았으므로 그저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사물들에게 담배 연기의 연주를 들려주었을 뿐이다
어디서부터인지 알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고통스러운 감정의 근원이 알고 싶었지만 나는 침묵의 중심에 가만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연거푸 두 대의 담배를 피우고 나자 다소간의 현실감이 밀려왔다
지난밤의 숙취, 지난 세월의 숙취들, 나는 문득 아득한 현기증에 사로잡혔다
지난 숙취의 날들 속에서 내가 무수히 내뱉었던 말들이 뽀족한 화살이 되어 내 심장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녀의 사랑 앞에서 나는 무엇을 했던 것일까, 내가 그녀를 사랑했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최선을 다해 그녀에게 헌신했지만 사실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다
사랑을 모르면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사랑에 있어서 남자는, 여자는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는 것일까
내가 바라보는 유리창 밖은 어느새 캄캄하게 어둠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다시 커피를 마시고 오래간만에 장을 보러 나갈 준비를 했다, 나에겐 지금 몇 병의 술과 조금의 양식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마트에 들려 쌀 한 포대와 내가 즐겨 마시는 몇 병의 술을 사들고 돌아올 것이다
리스본 외곽에 위차한 나의 숙소를 서서히 어둠이 서서히 점령해오고 있었다, 멀리서 누군가 부르는 파두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현실감이 없었다
창밖은 온통 어둠뿐인데 왜 나는 백야의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일까, 사흘 밤낮을 퍼부었던 눈발이 녹지 않았기 때문인가
나는 음악을 몇 개 구해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음악을 틀어놓고 그냥 그렇게 하염없이 이 겨울을 날 것이다, 커튼의 안과 밖에서 미풍과 광풍이 교차하며 불어갈 것이다
그러나 끝내 나는 침묵의 중심에 서 있을 것이다
다만 넉 장의 흑백사진을 말없이 바라보면서 근원을 알 수 없는 나의 고독은 그렇게 무르익어갈 것이다
그것이 다인 것이다, 무엇이 더 있겠는가, 무엇이 더 있을 수 있겠는가
(중략)
저녁에 일어나서 담배를 한 대 피워 말고 어두워지는 눈 덮인 들판을 바라보다
시차에 적응할 수 없는 나날들의 현기증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오며 바라본 밤하늘엔 초저녁 별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반짝이며 떠 있다
고독을 생산하는 공장이 이다면 바로 이곳일 것이다
나는 이 공장에서 열심히 고독을 생산하는 노동자인 것이다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소설을 읽다
그의 소설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면서도 뭔가 가슴 한쪽에 찡한 울림을 준다
경쾌한 발언 뒤에 숨어 있는 무수한 슬픔의 개인사, 날씨들의 세계사
저녁 겸 아침을 든든히 먹고 커피 석 잔 담배 넉 대, 다시 작업 시작
이곳의 기온이 드디어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졌다

그래도 밤하늘의 별들은 얼어붙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간다

나도 언젠가 저 별들과 함께 허공을 따라 나의 길을 가겠지만 지금은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창 밖의 어둠을 보며 날씨의 세계사를 적어나가는 밤

고독은 꾸준히 생산되지만 아무도 고독을 소비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음악은 재활용 중이고 시는 여전히 탄생 이전

(후략)

 

봉쇄 수도원

(전략)  

푸른 전등의 새벽. 이 푸른빛은 어디서 오는가.

고요한 침묵의 사다리를 타고 나의 다락방으로 스며드는 이 새벽의 전원은 어디서 오는가

그러니까 이건 실제적인 것이다.

아무리 봉쇄해도 봉쇄할 수 없는 내면의 푸른빛

나의 글은 그 푸른빛에서 와서 태양이 불을 밝히는 시각에 사라진다

목이 마르고 열어둔 창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작은 화분의 푸른 잎들을 스치며 지나간다

(중략)  

태양이 사라진 지구의 한편에서 달의 전구를 밝혀 놓고 고요히 밤을 적어나간다.

밤은 태양이 남겨둔 기억의 그림자. 그림자를 밟으며 고독하게 유령이 걷고 있다

(중략)

가출 혹은 여행의 삶.

희미한 공기처럼 세계의 골목을 떠돌다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죽으려 했던 나의 꿈이.

이렇게 상처 입은 짐승처럼 내면의 푸른 기억을 적어나가는 새벽이면

가장 먼 곳에서 반짝이며 나를 부르는 골수분자 같은 삶. 질기고도 비린 유전자의 집.

나는 유령이었고 사는 동안 나는 끝내 유령일 테지만

새벽 네 시 나는 드디어 나에게 갇힌다. 봉쇄 수도원. 그러니까 이건 실제적인 것이다

 

체 게바라가 그려진 지포 라이터 관리술

너무 많은 커피!

너무 많은 담배!

 그러나 더 많은 휴식과 사랑을!

 더 많은 몽상을!

 

톰 웨이츠를 듣는 좌파적 저녁

(전략)

네 목소리엔 집시의 피가 흘렀지, 오랜 세월 길 위를 떠돈 자의 바람 같은 목소리

북구의 밤은 깊고 추워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노래를 듣던 사람도 모두 부랑자 같았지만 아무렴 어때 우리는 아무것도 꿈꾸지 않아 모든 걸 꿈꿀 수 있는 자발적 은둔자였지

생의 바깥이라면 그 어디든 떠돌았지

시간의 문 틈 사이로 보이던 또 다른 생의 시간, 루이 아말렉은 심야의 축구 경기를 보며 소리를 질렀고 올리비에 뒤랑스는 술에 취해 하염없이 문밖을 쳐다보았지

삶이란 원래 그런 것 하염없이 쳐다보는 것 오지 않는 것들을 기다리며 노래나 부르는 것

부랑과 유랑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여전히 모르지만 두고 온 시간만은 추억의 선반 위에 고스란히 쌓여 있겠지

죽음이 매순간 삶을 관통하던 그 거리에서 늦게라도 친구들은 술집으로 모여들었지

이탈리아 양아치 탐정 파울로 그로쏘는 검은 코트 차림으로 왔고 콧수염의 제왕 장 드 파는 콧수염을 휘날리며 왔지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시였고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들의 내면도 시였지

기억하는지 톰, 밤새 가벼운 생들처럼 눈발 하염없이 휘날리던 그날 밤 가장 서럽게 노래 불렀던 것이 너였다는 것을

죽음이 관통하는 삶의 거리에서 그래도 우리는 죽은 자를 추모하며 죽도록 술을 마셨지

밤새 눈이 내리고 거리의 추위도 눈발에 묻혀갈 즈음 파울로의 작은 손전등 앞에 모인 우리가 밤새 찾으려 했던 것은 생의 어떤 실마리였을까

맥주 가게와 담배 가게를 다 지나면 아직 야근 중인 엥겔스의 공장 불빛이 빛나고 마르크스의 다락방에서는 여전히 꺼지지 않은 불빛 아래서 누군가 끙끙거리며 생의 선언문 초안을 작성하고 있었지

누군가는 아프게 생을 밀고 가는데 우리는 하염없이 밤을 탕진해도 되는 걸까 생각을 하면 두려웠지 추웠지 그래서 동이 틀 때까지 너의 노래를 따라 불렀지

(후략)

 

- 그의 시는 모두가 잠든 새벽에 읽어야 한다. 새벽 서너 시쯤 혼자서 중얼중얼 소리 내야 한다. 박정대 시인(49), 그의 얘기다. “오전 10시 은행 창구 앞에 앉아서 내 시집을 읽으면 현실의 모든 걸 포기하고 죽고 싶거나 ‘이게 뭐야’ 하면서 시집을 쓰레기통에 집어넣을 거다. 밤에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서 술도 한잔했고 잠도 안 오고 뭔가 보고 싶을 때 시집을 펴면, 박정대가 쓴 게 아니고 내(시를 읽는 이)가 쓴 것 같다는 느낌이 들 거다.

- 내가 쓰는 시에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내면에 존재하는 것들이 담긴다. 현실을 무시한 꿈은 현혹일 뿐이다. 내 시를 보면서 위안을 얻고 진짜 현실을 사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나의 시는 내면적 리얼리즘이다.

- 그는 밝은 대낮에는 충실한 직장인으로 생활하다가 퇴근하는 그 순간 ‘나는 글 쓰는 사람이고 시인이다’라는 자의식을 충전시킨다. 일찍 저녁을 먹고 잠들었다가 밤 11시에 일어난다. 온전한 시인의 삶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음악을 듣다가 발동이 걸리는 새벽 서너 시에 시를 쓴다. 글을 쓰다가 고개를 들면 시계가 오전 7시를 가리킬 때도 더러 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스스로 시인임을 의식하지 않으면, 예술가적 감수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평범한 시민이 될 뿐이다. 내가 헌신하는 예술적 시간을 위해서 그 나머지를 희생하고 하기 싫은 일을 한다. 현실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140129/60469133/1

,

이민진 - 파친코

from 도서 2023. 6. 1. 20:56

이것도 작년에 선물받은 책인데 독서가 너무 늦었다.  1편의 흡입력은 압도적이었고, 2편의 마무리는 아쉬웠다.  유기적인 구성은 돋보였으나, Thesis statement를 제외한 나머지 개별 문구 중 마음에 확 들어오는 문구는 많지 않았다(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다 -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고, 작가가 의도한 단어 내지 문구의 울림이 희석되었을 것 같다는 느낌).

-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역사는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 Test everything. Hold on to the good.(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

- 아버지와 어머니와 선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삼각형으로 묶여 있는 것 같았다.  선자가 고향에서의 삶을 회상할 때 그리운 것은 그 친밀한 관계였다.

- 창호는 남편을 배신하지 않을 사람을 사랑했고, 어쩌면 그것이 경희를 사랑한 이유일 터였다.  경희는 자신의 본질을 훼손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 한수는 '공부하라'는 말 대신 '배우라'고 했고, 노아는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배움은 일이 아니라 놀이였다.

- 미처 모르던 진실을 갑자기 깨닫는 것(anagnorisis)과 사건이 급전되는 것(peripeteia)

- 조선인이 선량하든 불량하든 상관없이 노아를 조선인으로만 보는 것은 결국 불량한 조선인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믿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아키코는 노아를 한 인간으로만 볼 수 없었고, 노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저 한 인간으로 여겨지고 싶다는 것임을 깨달았다.

- 나는 민족의 정의를 이렇게 제안한다.  민족은 상상의 정치 공동체이다.  본성적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주권을 지녔다고 상상된다.
민족은 '상상된다'.  제일 작은 민족의 구성원일지라도, 동포 대부분을 결코 알거나 만나거나 심지어 소식을 듣지도 못하지만, 각자의 마음 속에 동질감이라는 관념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민족은 '제한되어' 있다고 상상된다.  인구가 10억 명에 달하는 제일 큰 민족이라도 유동적일지언정 한정된 경계가 있고 그 너머에는 다른 큰 민족들이 있기 때문이다.
민족은 '주권을 지녔다'고 상상된다.  이 개념이 계몽사상과 혁명이 신성하게 부여된 계급적 왕국을 무너뜨린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민족은 '공동체'로 상상된다.  각자에게 만연할 지 모르는 실제의 불평등과 착취에도 민족은 항상 깊은 수평적 동포애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이 동포애가 지난 두 세기동안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런 제한된 상상의 산물들을 위해 남을 죽이기보다 기꺼이 자기 목숨을 내던지게 했다(베네딕트 앤더슨).

- 인간은 끔찍해.  맥주나 마셔.

- 홋카이도의 설산이 그리웠다.  눈 덮인 추운 숲속에서 나뭇잎이 다 떨어진 검은 나무들 아래를 걷고 싶었다.  삶에는 모욕당하고 상처받을 일들이 너무 많았고, 에쓰꼬는 자기 몫을 감당하기에도 벅찼다.  하지만 이미 수많은 치욕이 쌓여 있는 처지이면서도 솔로몬의 치욕을 가져다가 자신이 떠안고 싶었다.

-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선자가 이 세상의 악에 대해 물었을 때 이삭이 이 구절을 가르쳐 주었다.  

 

아래는 보그지 인터뷰 중 발췌.

"“수백 명을 인터뷰하면서 ‘저런 사람이구나’로 시작했다가 ‘내 생각이 틀렸구나’ 깨닫게 될 때가 많아요. 사람들은 정말 복잡해요. 아름답고 돈 많고 똑똑하고 인기 많고 성공한 사람도 알고 보면 평생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죠.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고, 인식의 범위가 확장되면서 지레짐작을 안 하게 되죠.” 그녀는 강연 중에 이렇게 말한다. “Reality corrects my preconceptions, and my eyes and my ears experience what my characters may ultimately feel(현실은 내 선입견을 고쳐주고 내 눈과 귀는 내 주인공들이 느낄 감정을 직접 경험한다).” 수많은 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많은 인간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이를 지키기 위한 용기에 대한 질문에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혐오에 맞서야 할 때가 있어요. 국가나 역사의 시스템에 의한 것이든, 일반 시민에게서 오든 분명히 혐오는 존재하고 매일 맞닥뜨려야 하는 것이죠. 진정한 용기는 그 혐오에 대해 또 다른 혐오나 폭력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 복수심에 불타오르지 않게 감정을 관리하는 것, 시니컬해지지 않는 것이죠.”

 “Our crowns have been bought and paid for-all we have to do is wear them(우리는 비용을 이미 다 지불한 왕관을 소유하고 있다. 이제 쓰기만 하면 된다).” 그녀가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삶에서 얻고 싶은 모든 건 이미 우리 내면에 있으니 단지 용기를 내서 그걸 발견하고 당당하게 살아내면 된다. 

https://www.vogue.co.kr/2021/07/26/%ED%95%9C%EA%B5%AD%EA%B3%84-%EC%86%8C%EC%84%A4%EA%B0%80-4%EC%9D%B8/

 

평생 한국에 대해 쓸 것, ‘파친코’ 작가 이민진 인터뷰

해외에서 한국계 작가의 소설이 읽힌다는 것은 단순히 국경을 뛰어넘은 뛰어난 소설의 탄생을 의미하진 않는다. 아시안 아메리칸, 이민 가족, 아시안 청소년, 소외된 아웃사이더 등 엄연히 존재

www.vogue.co.kr

 

이코노미조선 인터뷰 발췌.

매일 성경을 한 챕터 읽고 글을 쓰는 이유는.
“변호사를 그만두고 나서 미국 작가 윌라 캐더가 매일 성경 한 챕터를 읽는다는 걸 떠올리고 그걸 작업 습관으로 시작했다. 나는 서양의 클래식한 문학에 심취해 있고, 성경을 잘 아는 것이 서양의 문학과 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편당, 11년 혹은 26년의 창작 기간이라니…지치지 않나.
“Writer’s Block(글길 막힘, 집필 장애 상태)으로 힘들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희한하게도 글쓰기 자체는 간단하다. 어려운 것은 실제로 옳은 내용이어야 한다는 거다. 나는 사회 문제를 다루는 현실 기반 소설을 쓰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것에 대한 정확성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처음 두 권의 책을 쓸 때는 내가 하는 일의 중요성을 실감하기 훨씬 어려웠다. 하지만 ‘코리안 3부작’ 마지막 작품인 ‘아메리칸 학원’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교육이라는 주제를 탐구하는 것에 내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다. 나는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버틸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다.”

 

'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베르 까뮈 - 이방인(L'Étranger)  (1) 2023.12.23
박정대 - 삶이라는 직업 등  (1) 2023.08.28
로버트 파우저 - 도시 탐구기  (0) 2023.05.28
박준 -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0) 2022.01.12
최은영 - 밝은 밤  (0) 2021.11.09
,

책 선물은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언제나 기분좋다.

행복해지는 선물을 주고받고, 무해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동료들을 잔뜩 만난 것이 우리 회사를 선택한 가장 큰 기쁨이 아닐까...? 앤아버가 아닌 LA를 택한 그의 행복을 빕니다.

책 자체는 가벼운 수필 내지 개별적인 도시에 대한 단편적인 감상 수준을 모은 수준의 것이었다.  창밖의 풍경을 스치듯 바라보는 기분으로 즐겁게 읽었다.  대단히 감명깊은 문구는 그다지 없었으나 기억 환기용으로 몇 개만 정리.

[책을 펴내며]
- 나에게는 외국어로 책 한권을 쓰는 일은 늘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어려움이 오히려 생각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외국어로 책을 쓰기 위해서는 생각을 먼저 잘 정리해야 하고, 적절한 표현을 찾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앤아버]
- Thomas Wolfe, You Can't Go Home Again(그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리, 1940)
- 앤아버로 돌아오면서 나는 과거로 돌아온 셈이다.  앤아버를 떠나며, 나는 비로소 미래를 향해 다시 떠나는 듯 했다.  나는 바랐다.  이 길이 다시 한번 변방을 떠나 어딘지 모를 나만의 중심을 향해 이어지기를.  젊은 시절과 달라진 점이 있긴 하다.  변방과 중심은 장소가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걸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서울]
- 언젠가부터는 이렇게 조용하게 나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고, 옛 추억을 떠올리는 맛을 만끽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느낌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움이라는 한국어보다는 포르투칼어인 '소다드(saudade)'가 더 적합할 듯 하다.  소다드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나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그리는 애수, 향수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애수와 향수를 느낌으로써 과거, 즉 예전의 기억과 나누는 소통의 즐거움 역시 소다드다.

[대전]
-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일차원적 인간'

[더블린]
- 스미딕스

[런던]
- 이러한 우월감은 제국주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중심과 변방의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제국주의자들은 거의 하나같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이나 문명의 우월함을 다른 민족이나 국가를 지배하는 명분으로 내세운다.  문화, 경제, 종료를 비롯한 모든 면에서 스스로가 대단히 뛰어난 성취를 이루었다고 여기는 동시에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변방의 문화, 경제, 종교 등을 존중하기는커녕 열등한 것으로 치부한다.  그러면서 피지배국에 자신들의 문명을 주입시키는 행위를 마치 커다란 시혜라도 베푸는 것으로 미화한다.

[구마모토/가고시마]
- 가고시마 사람들은 정이 두텁다(人情が厚い).
- 일본의 미래는 앞으로 이 나라가 얼마나 규슈 또는 구마모토의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검소한 삶과 선함, 단순함을 좋아하고, 쓸데없는 호화와 낭비를 싫어하는 그 정신 말이다.

[교토]
- 그 절의 625년 역사가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미국만 해도 다음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더 크고 높은 성취를 이뤄야 한다고 흔히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는 있지만, 한편 생각해 보면 그렇게 되지 못하는 세대인 경우 불안을 느낄 수 밖에 없다.  625년 이상의 역사 속에서 사는 개인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볼까.  아마도 자신만의 한평생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의 삶과는 다를 것 같았다.  수백 년 전부터 이어온 절의 역사에 자신의 역사가 함께 흐르고, 자신의 역사 뒤에 또다시 수백, 수천 년의 역사가 이어진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야말로 역사의 크고 깊은 흐름 속에서 살고 있다는 자각이 끊임없이 들 것만 같았다.  교토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수백 수천 년의 역사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잠깐이지만 교토 전체가 새롭게 보일 뿐만 아니라 이 도시에 살게 된 나의 삶이 커다란 흐름 속에 속해 있는 지극히 작은 존재처럼 여겨졌다.
- 품위를 강조하는 이면에는 늘 품위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자리잡고 있다.  완벽한 모습만 보여야 한다는 의식이 교토 전체에 배어 있다.
- 개인주의가 강한 분위기인 탓에 교수라고 해서 저절로 존경하는 분위기는 절대 없다.  교수라고 해도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묘한 압박감을 더 느낀다.  알아서 하게 할 자유가 주어졌으니 정말 알아서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모두에게 있는 듯 했다.  자신의 흐트러진 모습을 노출하는 것도 꺼리지만 다른 사람의 흐트러진 모습에도 민감하다.
- 교토는 복잡하고 거친 세상에 살고 있지만, 마음 한켠에 고즈넉한 분위기와 품위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매력적인 이상향이다.  200년대 초 교토 지하철에는 이런 광고가 붙어 있었다.  '일본에 교토가 있어서 좋다'(日本に、京都があってよかった。).

[프로비던스]
- 누군가 나에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곤 한다.  어디인들 답하고 싶지 않을까.  내가 거쳐온 수많은 도시가 바로 내가 온 곳이다.

'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정대 - 삶이라는 직업 등  (1) 2023.08.28
이민진 - 파친코  (0) 2023.06.01
박준 -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0) 2022.01.12
최은영 - 밝은 밤  (0) 2021.11.09
데이비드 브룩스 - 두 번째 산(읽는 중)  (0) 2020.10.25
,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 박준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2012)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가 제 초점이었어요. 개인에게 생긴 슬픈 일을 슬퍼하는 건 당연하죠. 관건은 타인에게 일어난 슬픈 일을 얼마나 잘 감지하느냐는 것이죠. ‘슬픔의 연대’라고 하면 좀 거창한가요. 2008년 여름, 시인 될 궁리만 하던 때였습니다. 20살 때부터 신춘문예에 줄창 냈는데 계속 떨어졌어요. 당선된다는 보장도 없는 일에 매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광우병 촛불집회가 열렸어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인 되는 법은 학교나 강좌에서 배우는데, 시민 되는 법은 어디서 알려주나.’ 저희가 정치의식 있는 세대는 아니지만, 그때부터 집회에 자주 나갔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서 있기만 했어요. 용산참사 때도 그냥 걸어서 주변에 서 있다가 돌아오고…. 그때부터 ‘타인의 슬픔’에 대해 적어볼까 생각했습니다. 타인의 슬픔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으니, 깊은 속으로 들어가진 못하겠죠. 단지 그 슬픔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거기에 개인의 슬픔이 섞이니, 결국 슬픔의 절대량이 늘어났습니다.”

“제가 사회 속에서는 밝은 마스크를 쓰고 잘 살아가지만, 기본적으로는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만나서도 할 말을 잘 못해요. 그게 제 첫번째 후회입니다. 후회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복기’입니다. ‘그때 괜히 그래서…’ 하는 거죠. 하물며 연애라는 일생일대의 사건에 대해서 후회할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단, 제 시에 ‘당신’ ‘미인’ 같은 호명이 많이 나오는데, 그게 모두 연애 상대는 아닙니다. 연인이기도 하고, 강이기도 하고, 정치인일 때도 있고, 젊은 나이에 죽은 누나이기도 합니다. 내 옆에 없으니까 후회되는 일이 많죠. 그런 감정들이 연시의 톤으로 나오는 것 같아요. 사랑시는 사랑을 시작해 두근두근하거나, 막 끝났을 때는 못 써요. 마치 컴퓨터 폴더 안에 있는 몇 년 전 여름 사진을 꺼내보듯이 써야죠. 과거를 기억하는 일에는 모종의 슬픔이 따라옵니다.”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1801121722005#c2b 발췌.

'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민진 - 파친코  (0) 2023.06.01
로버트 파우저 - 도시 탐구기  (0) 2023.05.28
최은영 - 밝은 밤  (0) 2021.11.09
데이비드 브룩스 - 두 번째 산(읽는 중)  (0) 2020.10.25
허연 - 목요일  (0) 2018.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