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열음

from 일상 2016. 9. 13. 16:52



이 영상은 진짜 귀하다. 손열음이 앨범 녹음을 잘 안해서 연주 폭에 비해서 감상할 수 있는 곡 자체가 적다. 특히 이렇게 arrange된 곡은 연주 영상이 아니면 접할 길이 없다.


음악도 음악이고, 걸크러쉬 쩌는 열음누나의 인터뷰 몇 소절 감상.




어떤 연주자들은 “나는 다른 연주자의 음반은 듣지 않는다”라고 확고하게 말하기도 합니다. 나름의 이유도 분명하죠. “따라 하게 될 수도 있다.” 
저는 음악 듣는 걸 너무 좋아해서, (음반을) 안 듣는다는 건 상상이 안 돼요. 만약 다른 연주자의 음악을 듣지 않는다면, 그는 음악을 만들기만 할 뿐 음악 애호가로서의 역할은 없는 거잖아요. 저는 음악가로서의 나도 있고, 애호가로서의 나도 비등하게 셉니다. 그래서 좋아서 듣는 걸 듣고, 사실 그게 진짜 좋아요. 솔직히, 그걸 따라 하게 될까 걱정하는 것은… 뭐랄까. 분명 ‘이 사람은 이렇게 하네’라며 똑같이 따라 해볼 수는 있지만 그건 포장일 뿐이니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디테일까지 똑같이 만들 수 있지만, 영혼이 다르니까요. 그걸 카피한다고 문제가 될 순 없을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요리가 맛있어 보여서 똑같은 재료와 똑같은 방법으로 요리한다고 해도, 맛이 다르잖아요. 누가 따라 한다고 해서 그 비법을 뺏기는 건가? 아닌가?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아이러니컬하네요. 모든 의견을 듣지만, 자기가 수긍하지 않으면 ‘아닌데?’ 하고 넘긴다니요. 지난 5월호 커버스토리 인터뷰 때 느낀 점이, 열음 씨는 반문이 많았어요. 그래서 이번 ‘홀딱’의 부제도 원래 ‘손열음의 아닌데?’로 지으려 했는데, 열음 씨의 반대로 인해….
저는 정답을 모르는 사람이에요. 확고한 의견이란 게 많지가 않아요. 지금 이렇게 얘기하는 것조차도 그래요. 현대사회는 너무 말이 앞서는 거 같아요. 설명하긴 힘들지만…. 저는 스스로를 우유부단하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하나를 갖고 몇 달을 고민하고 결국 답도 내리지 않아버리는 현실도피형에 가까워요. 반대로 사람들은 제가 결단력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런 면도 저고, 저런 면도 저예요. 그런데 “저는 우유부단해요”라고 말하면, 정말 그런 사람이 되어버려요. 그렇게 말로 뚝뚝 끊어 정의하는 현대사회가 마음에 안 들어요. 사람도, 음악도, 모든 게 하나로 정의될 수 없다고 봐요. 예를 들어, “그 음악은 너무 강렬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 강렬함의 뉘앙스가 백만 가지일 수 있죠.


음악산업계에도 소위 ‘주류’라는 것이 있습니다. 음반업계로 치자면, 독립 레이블이 힘을 얻고 있지만 분명 메이저 레이블이 존재합니다. 오늘 날 음악산업계가 원하는 ‘주류’ 피아니스트 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산업계가 원하는 사람들… 글쎄요. 유튜브형 아닐까요? 금방 “오!” 하고 불꽃이 튈 수 있는. 영어로 ‘아이캐칭’하는 그런 모습 아닐까요. 잘 모르겠어요.

그런 모습이 이상적이라 생각하는지.
정답은 없는데, 제 취향은 아니에요.


예전에 열음 씨가 김대진 선생님의 말씀이라며 이런 얘기를 전해준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콩쿠르가 난센스라고 생각하겠지만, 물론 난센스다, 근데 세상에 나가보면 콩쿠르만큼 공평한 것도 또 없을 거다.” 만약 콩쿠르가 공평하고 확실한 등용문이라면, 성공하고 싶다면 콩쿠르에 나가야 할 겁니다. 근데 체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콩쿠르와 안 맞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떤 조언을? 
사는 게 그렇게 쉽나? 하고 싶은 거만 하고 살 수가 있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일 음대에서 카푸스틴을 배울 수 있나요? 카푸스틴이나 사티 등을 클래식 음악으로 봐야 하나, 그런 논쟁도 있잖아요. 
독일에서 석ㆍ박사 과정만 한 거라 어떤 식으로 가르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어요. 저희 (아리에 바르디) 선생님께서 70대 중반이신데, 1933년에 나온 그로브 사전에 라흐마니노프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얘기해주셨어요. 칩(cheap)한 취향의 사람들이 듣는 음악, 금방 없어질 음악이다. 선생님 어렸을 때 라흐마니노프를 시험에서 치기는 좀 그런 분위기였대요. 특히 협주곡은요. 베토벤ㆍ슈베르트와는 비교 자체가 안 되는 음악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지금 보면 라흐마니노프는 ‘너무나’ 클래식이잖아요. 시간이 흐르면 카푸스틴도 클래식으로 분류될 거 같아요.


이쯤에서 열음 씨의 또 다른 장기, 글쓰기 얘기를 해볼게요. 자신의 공연 프로그램북에 직접 곡 설명을 쓰곤 하는데, 아직 누군가의 연주에 대해 쓴 글을 본 적이 없는 듯합니다. 저도 연주평을 쓰지만, 현장의 ‘순간’ ‘소리’ ‘피아니스트의 근육 움직임’ ‘의도하려던 바’를 글로 표현하는 게 쉽지도 않거니와 어떨 땐, ‘이거 다 뻥 아닌가’라는 회의도 들곤 합니다. 그저 내 주관적 소견이 아닌가 라는 뜻에서 말이죠. 연주평 혹은 음반평을 쓴다면 어떻게 접근할 건가요?
주관성은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이고, 또 하나의 특징은 추상성이에요. 그걸 구체화한다는 거 자체가 모순이죠. 낱낱이 풀어버리면 음악이 가진 예술성을 해부하는 셈이니… (연주평이) 어떤 식으로 얼만큼의 의미가 있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소리가 어땠고 이런 해석은 어땠고… 솔직히 그런 것엔 관심이 없어요. 이렇게든 저렇게든 칠 수 있죠. 어떻게 치느냐로 접근한다면, 특정 피아니스트가 가장 잘 치는 사람이 될 수 있죠. 저는 피아니스트가 어떤 걸 전달하려 했는지, 그 사람 내면의 판타지는 무엇인지에 관심이 있어요. 그것도 객관적이기보다 주관적이죠.


연주자 내면의 판타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떻게 찾아내세요?
표현하기 너무 힘들죠. 사실 그런 걸 말로 표현 못하니까, 음악이 있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타고난 듣는 감이 좀 필요한 것 같아요.


열음 씨에게도 너무너무 어려운 악보가 있나요?
제가 악보를 쉽게 보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고, 흐름을 예측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음악 안의 상식ㆍ내러티브ㆍ플롯을 예측하는 능력? 그래서 빨리 외울 수도 있고요. 제 상식에서 벗어난 악보는 힘들겠죠.


역시 공통질문입니다. 지난 ‘객석’ 10월호 클라라 주미 강 커버 스토리에서 열음 씨가 브람스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언급이 있었는데, 이유가 궁금하다.
허허. 우선 주미가 브람스를 정말정말 좋아해요. 클라라잖아요. 진짜 브람스를 각별히 생각해요. 남의 집 이야기를 해서 죄송하지만, 주미 오빠는 보리스 고두노프의 보리스, 언니는 바흐 부인 아나, 주미는 클라라 슈만의 클라라, 형제들 이름이 이렇게 음악적이에요. 그에 비하면 제가 브람스를 덜 좋아한다는 얘기였겠죠. 저는 브람스를… 흠, 이게 더 나쁜 표현일지도 모르겠는데 브람스를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저평가하는 듯해요. 물론 좋아하는 곡들도 많아요. 피아노 협주곡 2번도 좋아하고, 변주곡, 왈츠 등등…. 다만 제 생각에 브람스는 저랑 안 맞는 부분이 있어요. 그는 혼연일체가 안 되는 사람 같아요, 제가 봤을 땐. 나쁜 뜻이 아니라, 괴리가 있어요. 몸ㆍ머리ㆍ마음이 일치되지 않는 음악가라고 생각해요. 완벽한 일치는, 제 생각에 모차르트이고 충돌이 예술로 승화된 경우는 베토벤, 완전히 마음으로 간 건 슈만이죠. 근데 브람스는 그게 다 따로 놀아요. 그런 이유로 브람스를 좋아하는 분들이 계세요. 다만 저랑 그 점은 안 맞아요. 다시 말하지만, 저도 분명 좋아하는 곡이 있어요. 그래서 그 얘기는 더 이상 안 나왔으면 해요. 이게 고착화돼서, 제가 브람스를 연주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니까요. 피아노 곡들뿐만 아니라 바이올린 소나타 다 했고, 4중주도, 5중주도 다 해봤고, 브람스의 많은 곡을 좋아합니다.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습니까?”
슬럼프, 음악을 하지 말아야 할까, 이런 거요? 피아니스트는 음악가라고 하기엔 무척 직업적인 직업인 듯해요. 여행도 많이 해야 하고, 사람도 많이 만나야 하고, 음악과 전혀 상관 없는 게 많은 직업이죠. 그런 것에 대한 회의는 항상 있지만, 음악을 안 하고 싶단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어요. 그런 슬럼프는 없었어요. 직업적인 건 늘 있지만.

열음 씨, 피아니스트가 직업이라면 그럼 ‘음악을 한다’는 건 무슨 뜻이죠? 
‘사는 거’ 같아요. 살면서 배우는 거죠. 저는 상황이 좋지 않고 힘들면 오히려 음악이 잘돼요. 그래서인지 행복하고 일이 술술 풀리면 오히려 불안해요. 반대로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음악은 잘 나오겠구나’ 해요.

손열음은 2006년부터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아리에 바르디와 공부하고 있다. 대신, 여전히 아리에 바르디와 공부하는 이유는 이것이다.
진짜 감사한 건 선생님이 제 음악을 좋아하세요. 스승과 제자가 서로의 음악을 취향 안에서 좋아하는 건 쉽지 않을 일인데 말이죠. 제 음악 좋아해주시니 거기서 용기를 많이 얻곤 해요. 평생 배워도 모자랄 것 같다는 느낌, 그 느낌이 정말 좋아요.

인터뷰가 끝나고, 손열음은 어떤 곡을 칠지 잠시 고민했다. “쇼팽 에튀드 10의 3, 이별.” 이렇게 말하고 그녀는 피아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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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힘내서 행정법 다풀고 가야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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