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다고 하여 + 카라타 에리카가 너무 예뻐서 픽.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살아가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으니까.

영화는 매우 단순하고 직설적인 메시지를 반복해서 전한다.
그깟 직장 관두어도 괜찮아, 모든 사람이 옳은 길을 선택하고 있지는 않아, 이렇게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살아나가고 있는 것 만으로도 기특해.

마음의 벽을 잠시나마 허물고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  그 순간에나마 공감하고 진심어린 위로를 건네줄 사람이 있다는 것.. 이 물론 중요하지만,

사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굳이 남기는 이유는 내가 더 이상 이 메시지들에 공감이 가지 않아서.  직장 관두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삶만으로 괜찮을 리가 없잖아, 취업해서 빠진 동료 알바생 자리 계속 땜빵해줄 성실함이면 새로운 직장 찾을 수 있잖아, 모든 사람은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길로 나아가고 있잖아,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을 하더라도 더 나은 직장으로 할 수도 있잖아, 이 삶을 그만 둘 용기도 없으니 그냥 하루하루 되는대로 살아가는게 뭐가 기특해.. 라는 생각이 들어서.  울긴 왜 울어.  울고 난 후의 후련함에 기댄다고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걸.

그냥 현실로 닥친 문제(내년에 찾아올 거대한 폭풍우 포함)들이 잔뜩 쌓여 있는데 뭐 하나 해결하지도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별로인지라.. 이런 류의 위로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임을 잘 알아서 전혀 몰입이 되지 않았나 보다.  그저 20대 중반 여자애의 예쁜 브이로그를 한편 본 느낌.

맞아 어쩌면 그 나이 때는 그 정도로 충분할 수 있어.  하지만 그런 날들이 쌓이면 사람들이 차마 위로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리는 걸.  아 맥주+호로요이 한캔 먹었을 뿐인데 유난히 생각이 번진다.  3연휴를 맞이해 맥주 한잔 마시면서 가벼운 영화 한편 보고 잘 심산이었는데, 여기서 혼술은 절대로 피해야 하는구나 라는 교훈만 다시 얻고 간다.

위로가 아닌 공허만이 남아버린 영화.

+ 영화의 만듬새 면에서도 강하게 추천할 수준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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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町座(데마치자)에서 본 첫 영화라서 기록하고 싶었음(2024. 6. 11.).
산책하다 정말 우연히 발견한 소중한 공간.

사진 출처: https://portla-mag.com/post-22928/


테니스장 + 콘서트홀 + 독립영화관이라는 완벽한 트라이앵글...
주거 만족도가 너무 높아서 오히려 다가올 미래가 불안한 하루하루.

사진 출처: https://www.instagram.com/demachiza/?e=8735d13a-af24-488e-b15b-d501fc8a86cf&g=5

이렇게 라멘 자판기 마냥 티켓을 끊고
→ 점원에게 보고싶은 영화를 말하면
  점원이 좌석배치도를 보여주고
  까만 마카로 표시되지 않은 남은 자리를 고르는(내가 자리를 고르면 마카칠을 하는),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극장도 울고 가실 아날로그 시스템.

화요일 할인 + 학생 할인(박사과정도 됨..) = 1,000엔.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는 드라이브 마이 카 이후 두 번째 영화.
데마치자에서 영화를 보는데 의의를 둬서, 사실 감독이 하마구치 류스케인 점은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하마구치 영화는 내 취향인듯 취향이 아닌듯.  와닿는 듯 불편한 듯.
나와 생각이 대체로 유사한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살짝 달랐을 때 느껴지는 큰 불편함(문제의식을 신나게 공유하다가, 마지막 해결 부분에서 작은 생각의 차이로 큰 결론이 달라졌을 때의 당혹스러움) 같은 게 느껴진다.  봉준호와 하마구치 류스케 모두 구로사와 아키라 팬이라는데, 그래서 그런가보다 싶기도.

그래도 아름다운 설경이나 비범했던 트래킹 신은 오래 기억에 남을듯.  촬영지는 나가노 현의 富士見町(후지미쵸) 인근이라 하는데, 내가 스키를 처음 배웠던 白樺湖(시라카바호) 인근이라 괜히 친근감이 들었다.  일본의 스산한 듯 장엄한 대자연은 언제나 경이롭다.

요새 들어 유난히 현학적이라 느껴지는 평론들이지만, 이런 류의 영화는 평론을 읽는 단계에서 비로소 앞뒤가 연결되는 부분이 많아서 읽지 않을 수 없다(그걸 경험적으로 알기에, 농담같이 툭툭 던지는 대사 하나하나나, 소소한 클로즈업 신에서도 계속 긴장을 해야 되서 불편함이 가중되는 듯도 하다).  내용이든 표현이든 심미적인 요소든 와닿았던 것들을 옮기며 기록을 마무리.

- (이 영화는) 시와 산문 사이에서 멈춘다(김혜리).

- 자연과 인간을 매개하는 심부름꾼은 자연에 매혹당한 (혹은 부지불식간에 자연을 희롱한) 개발사 직원을 산제물로 삼는다.  심부름꾼은 우리의 기대를 기꺼이 배반하고 마치 동아시아의 무당처럼 행동한다.  여직원은 자연의 경고를 받고 인간의 영역으로 돌아가 제 생명을 보전한데 반해, 남직원은 그 잔혹함에 매혹되고 선을 넘었기에 그에 따른 처분을 받은 것 아닐까.  영화는 인간이 자연에 밑도 끝도 없이 다가서는 행태를 재고하게 한다.  나아가 자연을 막연한 숭배나 숭고의 대상이란 미명으로 길들인 조연이 아니라, 엄연한 주연으로서 등장시킨다. (중략)

총에 맞은 사슴을 하나가 마주하고 있다.  하나의 시선에서 사슴을 바라보는 숏, 그 뒤 사슴의 몸 숏.  사슴은 총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다.  사슴의 시선에서 하나를 바라보는 숏.  하나는 모자를 벗는다.  카메라는 이 순간에도 사슴과 하나 각각의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본다.

특히 사슴이 하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숏은 타쿠미가 타카하시를 똑바로 바라보는 숏과 일맥상통한다.  하나가 영화 내내 무해해 보일 정도의 태도로 숲속을 돌아다녔어도 그는 자연 그 자체와 하나가 될 수 없다.  그것은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것과 같이 분명한 사실이다.  결국 총을 빗맞은 사슴은 자연과 하나될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하나를 공격할 수 밖에 없다.  감히 그 양자 사이에서 균형을 말했던 자신의 오만을, 타쿠미는 자신이 타카하시를 바라보았던 것과 똑같은 눈으로 하나를, 어쩌면 자신을 바라본 사슴의 눈에서 발견한다.  결국 타쿠미는 자신의 오만하고도 혐오스러운 모습을 고스란히 비추어 보이는 거울인 타카하시를 살해할 수 밖에, 아니 그렇게 자신의 분신을 죽여 자살할 수 밖에 없다(sirokryu).

-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엔 영화 보는 즐거움은 없을지 몰라도 영화를 알아가는 기쁨이 있다. (중략)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편하게 즐길 수 없다.  (중략) 뒤집어 엎었다고 해도 될 정도로 크게 요동치는 마지막 대목에서는 누구나 충격을 받겠지만 혼란 이상의 감상을 느끼지 못할 관객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 미니멀한 촬영 방식이, 끝나기 직전까지 평평하기만 하던 그 플롯이, 그리고 그 갑작스럽게 폭주하는 그 엔딩이, 대단할 게 없어 보이는 그 대화들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비범함이다.  하마구치 감독은 편하지 않은 고요함으로 관객을 서서히 잠식해 들어간다.  하늘에 균열이 생긴 듯한 나뭇가지의 행렬은 단순하나 불길하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카메라의 시선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마음에 잔상을 남기고, 저 미동도 없이 얼어 붙은 호수는 예사롭지 않다.  멀리서 들려온 총성이나 날카로운 가시나무는 어떤가.  그리고 한 치 빈틈이 안 보이는 저 대사들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파문을 머릿속에 만들어 놓고 있지 않나.  그리고 나서 영화는 보란 듯이 폭발해 버린다(손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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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만 접했고 영화를 제대로 본 것은 처음(정확히는 예전에 봤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남).  다아시가 새벽 안개를 뚫고 걸어올 때 느꼈던 전율을 잊기 싫어서 남겨봄(사진으로 보니까 가슴털이 좀 거슬리긴 하네).  여전히 우리 리지 너무 매력적이야 ㅠㅠ

10년도 전에 읽었던 소설은 요기: https://soliloquy4u.tistory.com/entry/%EC%A0%9C%EC%9D%B8-%EC%98%A4%EC%8A%A4%ED%8B%B4-%EC%98%A4%EB%A7%8C%EA%B3%BC-%ED%8E%B8%EA%B2%AC

사람이 발전이 있어야 하니 오늘은 영어 대사 위주로 추려봄.

- Elizabeth: I wonder who first discovered the power of poetry in driving away love?
- Darcy: I thought that poetry was the food of love.
- Elizabeth: Of a fine, stout love it may. Everything nourishes what is strong already.
But if it is only a thin, slight sort of inclination, I'm convinced that one good sonnet will starve it away entirely.

- Darcy: Maybe it's that I find it hard to forgive the follies and vices of others, or their offences against myself. My good opinion, once lost, is lost forever.

- Darcy: Miss Bennet, I have struggled in vain but I can bear it no longer...
The past months have been a torment...
I came to Rosings with the single object of seeing you... I had to see you...
- Elizabeth: Me?
- Darcy: I've fought against my better judgement, my family's expectation...
The inferiority of your birth... my rank and circumstance... all those things...
but I'm willing to put them aside... and ask you to end my agony...
- Elizabeth: I don't understand...
- Darcy: I love you. Most ardently. Please do me the honour of accepting my hand.
- Elizabeth: Sir, I appreciate the struggle you have been through,
and I am very sorry to have caused you pain. Believe me, it was unconsciously done.
(중략)
- Darcy: Might I ask why, with so little endeavour at civility, I am thus repulsed?
(중략)
- Elizabeth: Do you think that anything might tempt me to accept the man who has ruined, perhaps for ever, the happiness of a most beloved sister?
Do you deny it, Mr Darcy?
That you separated a young couple who loved each other, exposing your friend to the censure of the world for caprice, and my sister to its derision for disappointed hopes, and involving them both in misery of the acutest kind?
(중략)
- Darcy: So this is your opinion of me!
Thank you for explaining so fully. Perhaps these offences might have been overlooked, if your pride had not been hurt..
- Elizabeth: My pride?
- Darcy: by my honesty in admitting scruples about our relationship.
Could you expect me to rejoice in the inferiority of your circumstances?
- Elizabeth: And those are the words of a gentleman?
From the first moment I met you, your arrogance and conceit, your selfish distain of the feelings of others, made me realize that you were the last man in the world I could ever be prevailed upon to marry.
- Darcy: Forgive me, madam, for taking up so much of your time.

- Darcy: P.S. As we shall never meet again, I wish you all happiness in the future.

- Mrs. Reynolds: I've known Mr Darcy since he was a boy. 
He was always a kind and generous person even then.
Not everyone can see it, because he does not make a meal of it like a lot of young men nowadays.
But he is the most sweet-tempered and kind- hearted man I have ever known.

- Darcy: I have recently thought a great deal about how I appear and act to others.
- Elizabeth: It does you credit, sir.

(LONGBOURN - DAWN)
Elizabeth creeps out into the garden and wanders around through the early morning mist, as the sun starts to rise.
Elizabeth walks out into the open countryside.
The mists are starting to evaporate.
From out of the mist in the distance a figure emerges. Her heart misses a beat.
She is alone, vulnerable. Then she sees it is Darcy.

- Elizabeth: Mr. Darcy!
(중략)
- Darcy: You must know that your happiness was one of my prime inducements.
I know you are too generous to trifle with me.
I believe you spoke with my Aunt last night, and it has taught me to hope as I had scarcely allowed myself before.
If your feelings are still what they were last April, tell me so at once. My affections and wishes are unchanged, but one word from you will silence me forever.
- Elizabeth: (silent)
- Darcy: If, however, your feelings have changed...
I would have to tell you, you have bewitched me body and soul and I love and love and love you.
And never wish to be parted from you from this day on.
- Elizabeth: I am very happy to inform you that,
not only have my sentiments changed there are no other words which could give me greater pleasure.

- Mr. Bennet: I thought you hated the man.
(중략)
- Elizabeth: (tears in her eyes) I do like him! (WITH PASSION) I love him! He's not proud. It's I who's been prejudiced, who didn't realize ... You don't know him, Papa...if I told you what he's really like. What he's done.
(중략) We misjudged him, me more than anyone.
In every way, not just in this matter. I've been so blind. He's been so blind! About Jane, about so many things. Then so have I... You see, he and I are so similiar...we're both so stubborn...
- Mr. Bennet: You do love him, don't you?
- Elizabeth: Very much.
- Mr. Bennet: I cannot believe that anyone can deserve you, but it seems I am over-ruled. So I heartily give my consent.
I could not have parted with you, my Lizzie, to any one less worthy.

- Elizabeth: How did it begin?
- Darcy: I cannot fix the hour, or the spot, or the look.
It was too long ago and I was in the middle before I knew it had begun.
- Elizabeth: Now be sincere, did you admire me for my impertinenc?
- Darcy: For the liveliness of your mind, I did.
- Elizabeth: You may as well call it impertinence, though make a virtue of it by all means.
My good qualities are under your protection, and you are to exaggerate - them as much as possible.
And, in return, it belongs to me to find occasions for teasing and quarrelling with you as often as maybe...
and I shall begin directly...
We draw back-their figures diminish, smaller and smaller under the immense, star-spangled sky...
Fainter and fainter, the sound of music and laughter...

-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들고,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든다." (왓챠)

OST인 Jean-Yves Thibaudet - Marianelli: Dawn은 심금을 울리고, 마침 영화를 압축한 듯한 영상을 보면 몽글몽글 영화의 장면들이 생각나서 너무 좋다.  언젠가 연주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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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나를 지배한 아이콘 중 하나는 홍상수였다. 내가 느끼던 막연한 불안, 우울, 내지는 선한 가치에 대한 반역적 시선(진정한 사랑이란?)을 이토록 잘 구현한 감독이 또 어디 있던가? 그가 스스로 말하듯 그의 영화는 인생의 한 사이클을 산 사람, 20대 후반 이상을 타겟으로 하는데,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인생(특히 남녀관계/감정)의 어려움을 나는 홍상수의 영화를 통해 이해하고, 나름대로 풀어냈다(교과서를 잘못 고름).

하지만 30대가 되고 조금씩 사회에 뿌리를 내리면서 그의 영화와 자연스레 멀어졌다. 안정적인 생활,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할수록 그의 영화나 메시지가 내포하는 불안정성(내지 그 미화/정당화)을 견디기 어려워진 것이다. 설령 그의 영화나 메시지에 공감이 된다 하여도 그건 주로 내가 지우고 싶거나 부끄러워하는 스스로의 단면에 닿아 있었기에, 어떻게든 제도권 안에서 몸과 마음을 다잡기 위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냈다.

그러다가 고 이선균 씨의 부고를 친구의 입을 통해 嵐電 정류장에서 우연히 전해듣고, 문득 다시 보고 싶어져서 이 영화를 꺼냈다. 30대 후반이 되어, 반 발짝 떨어져서 보니, 내가 갈구하거나 괴로워하거나 고뇌했던 감정, 관계의 실체가 조금은 더 선명히 보이는 것 같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로 귀결된다. 나는 이선균이나 홍상수의 선택을 할 수 없는 – 할 용기가 없는 - 사람이므로 여전히 홍상수의 영화와 거리를 두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종종 생각날 때면, 권태에 대한 정당화 기제가 필요할 때면, 아니면 불안한 예감에 대한 선험적인 시각화를 원할 때면, 가끔 찾아볼 것 같다(가급적 위로와 공감을 얻어서는 안될 것이다).

영화에 대한 평은 나보다 훨씬 뛰어난 언어를 구사하는 한겨례 기사로 대체.

https://www.hani.co.kr/arti/culture/movie/617895.html

인간이라는 딱하고 예쁜 존재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홍상수 감독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 올해의 영화 1위에 올랐다. 꿈과 현실이 동등하고 정연한 배치로 흘러가며 만드는 리듬과 정서가 아름답다. 애처롭고도 씩씩한 젊은 여자가 삶에서 그리워하는 것들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는 홍상수가 냉소주의자가 아니라 인간을 딱하고 예쁜 존재로 바라보는 작가라는 사실을 어떤 전작보다 분명히 깨닫게 해준다.(김혜리) 이 영화를 올해의 영화로 선정한 지지자들을 대표할 만한 평이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중에서도 애상의 감정이 유독 깊은 영화로 손꼽힌다. 젊고 씩씩하지만 동시에 두려움과 소망도 많은, 해원이라는 젊은 여성 캐릭터가 겪어내는 그 감정의 모험극이 진한 여운을 전한다는 의견도 많다.
 
영화 속 꿈과 현실을 동일 질감으로 오가며 만들어낸 그 새로운 미학적 성취에 대한 찬사는 더 말할 것이 없다. 해원을 통해 드러내는 홍상수의 기하학적 청사진. 시공간을 뛰어넘는 통쾌함과 청량한 감상이 주저없이 이 영화를 최고의 영화라고 말하게 만든다.(이지현)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외롭고 슬프다가 무서워지는 시간을 견디고 반복하고 다시 감각하기 위해 애쓰고, 그런 자신을 끈질기게 응시하는 동안 홀로 외롭고 슬프고 무서웠으나, 적어도 죽음에 지지 않았다. 한없이 서글프지만 결국은 죽음에 지지 않는 영화. 홍상수의 열네 번째 영화는 그렇게 또 한번, 또 다르게 생을 깨어나게 한다 (남다은) 등의 평들이 제출된 바 있다.
 
그러니 그 말들을 따르자면,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꿈과 현실을 아름답게 잇고, 죽음과 용기 있게 대면하고, 생을 새롭게 두들기는, 불가사의한 영화다. 그로써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 올해의 영화 1위가 된 것이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의 주인공 성준과 이선균 씨를 대조하며 많은 감정이 교차하는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Movie Quotes:

*

진주(김자옥): 공부는 잘 하고 있지? 학교에서

해원(정은채): 엄마, 용기를 학교에서 배우는 줄 알아요? 다 똑같애. 사는거야 그냥.

진주: 그렇구나

 *

해원: 난 캐나다가 엄마한테 좋았으면 좋겠어요.

진주: 그전에 한 번 가본 적 있어. 나 거기 가서 내 마음대로 하고 살거야. 맨발로 길거리도 막 걸어다니고, 길거리에서 막 춤도 춰보고. 거기서는 다 할 수 있어. 정말이야. 내 마음대로 하고 살아 볼거야

해원: 엄마 맘대로, 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살아요.

진주: 너도 그래. 사는 건 죽어가는 거야. 하루하루 조금씩 죽음을 향해서 가는 거라고. 그러니까 아끼지 말고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 나처럼 살지 말고.

해원: 그렇게 살고 있어요.

*

해원: 오랜만에 비맞고 다니니까 좋네요. 오랜만이에요 진짜 비맞는거.

성준(이선균): 어 그래. 비맞으면 갑자기 딴 세계 온거 같지. 그지

(중략)

성준: 옛날에 내가 좀 미쳤었거든. 근데 오늘은 니가 좀 그런거 같다 야

해원: 선생님 내가 미친 것 같아요?

성준: 어? 아냐 아냐. 너 너무 예뻐. 너무 예쁘네 진짜.

해원: 나 선생님 보니까 저도 좋아요

성준: 너 왜 이렇게 예쁘니

해원: 왜 그래요 뻔뻔하게

성준: 뭐뭐 내가 뭐

해원: 정말 미쳐본 적 있어요?

성준: 어. 그런 것 같은데

해원: 선생님 그게 좋은 것 같아요.

성준: 뭐가 좋아 그게

(해원 문화재 파괴)

성준: 야 여기 들어가면 안될 것 같은데

(중략)

해원: 오늘만 같이 있어 줘요. 내가 힘이 좀 들어서 그래요.

성준: 알아.

해원: 술 한잔 하러 갈까요?

성준: 술 좋지.

해원: 술 마시고 싶죠?

성준: 어. 다 하고 싶어. 너랑은 다 하고 싶어.

해원: 허. 웃겨. 술만 해요 술만.

성준: 예쁜 새끼가 진짜. 사람 미치게 하려고 진짜

해원: 쳏 웃겨..

(위엄있는 동상 등장)

해원: (동창들에게) 내가! 오늘 엄마가 떠났어 캐나다로 가셨거든. 그래서 많이 슬펐어 그래서 내가 감독님 부른거야. 그러니까 오해하지 마. 그게 진실이라고. 믿든 안믿던지. 암튼 거짓말해서 미안하다.

 *

해원: 아빠가 나 어렸을 때 7년을 외국에서 일했거든요.

성준: 그래서 니가 다른 애들하고 좀 다른 것 같애.

해원: 뭐가 달라요?

성준: 아 그니까.. 너도 살라고 머리 쓰거든. 쓰는데. 좀 덜 머리 굴리는 것 같애.

해원: 나 악마에요.

성준: 악마야?

해원: 네. 악마에요.

성준: 니가 뭐가 악마야.

해원: 고마운데 선생님이 좋게 보는거에요.

(중략)

해원: 왜 그렇게 슬퍼 보여요?

성준: 옛날 사람들. 여기 성벽 쌓아올리고. 여기서 먹고 자고 했을 거 아냐. 하이고, 이게 다 뭔 소용이 있다고 그렇게 힘들게 살았는지 참. 아무도 이제 기억도 못하잖아. 아무 것도 없는데.

해원: 여기 돌들 남았잖아요.

성준: 그래 돌은 남았지. 이게 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쌓은 거잖아.

해원: 하나씩 하나씩 어떻게 쌓았을까 이 산 위에까지.

성준: 난 아무것도 남기지 않을 거야.

해원: 나도 똑같은 생각이에요.

성준: 그래. 아니다, 그래도 세 개는 남겠다. 내 새끼하고, 내 영화하고,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갖는 기억.

해원: 많이 남기네요.

성준: 그게 많아? 아냐 너도 똑같이 남길거야. 사람들이 널 기억할거고. 그러고 나중에 너가 결혼하면 애도 낳을 거고.

해원: 안남길거라니까요. 선생님 혼자 많이 남기세요.

성준: 알았다. 그래 그럼.

해원: 가요.

 *

성준: 이거 뭔지 알아?

해원: 뭐에요?

성준: 사직서야.

해원: 그만 둘라고요?

성준: 그만 둘까?

해원: 농담이에요? 사직서네..

성준: 아침에 써봤어 그냥.  그냥 써봤어.

해원: 이거 낼거에요?

성준: 그냥 써봤어. 새벽에 일어나가지고 그냥 써봤는데, 웃긴 게 눈물이 좀 나는 것 있지 진짜 빙신같이. 식구들 생각하니까 너무 미안한거야.  돈도 못버는 놈이 앞으로 뭐 어떻게 살아가겠다고.  찢어버릴까?

해원: 잘 생각해서 하세요. 생활은 해야 되잖아요. 애기도 있고

성준: 알아. 그냥 최악을 연습해 본거야 마음으로.

해원: 선생님 잘못한 것 없어요.

성준: 널 좋아했잖아.

해원: 좋아하지 마세요 그러니까.

성준: 내가 미쳤나?

해원: 먹을 걸 싸올 걸 그랬나봐요.

(중략)

성준: 우리 잘하자.  그래서 오래오래 보자.

해원: 그러고 싶어요.

성준: 우리만 잘하면 돼. 정신 바짝 차리고, 절대 들키지만 않으면 돼. 전에 있던 일은 아니라고 끝까지 우기면 되는거야. 자기들은 증거 없잖아. 시간이 지나면 다 지나가게 되어 있어.

해원: 선생님.

성준: 어?

해원: 비밀은 없어요. 세상에 비밀은 없어요. 모르세요? 비밀 없어요. 결국 다 알아요.

성준: 그럼 어떡하니?

해원: 다 죽으면 돼요.

성준: 하하하! 아이 시끼 말하는거 봐 쪼끄만게. 넌 어쩜 이렇게 예쁘니?

해원: 선생님도 이뻐요.

성준: 사랑해.

해원: 이상하다, 그 소리 들으니까.

성준: 사랑해 정말

해원: 나도요.

해원(독백): 거기서 그만 갈 걸 그랬다.

*

성준: 이런 씨발 좆 같은!

해원: 알았어요 욕하지 마요. 욕하면 무서워.

성준: 뭐 씨발! 좆같애가지고 진짜.

해원: 무섭다 그랬죠!

성준: 뭐 욕이 어때서! 니가 한게 얼마나 더러운 줄 몰라?

해원: 뭘 더럽다는 거에요?

성준: 진짜 너가 한게 뭔지 몰라?

해원: 몰라요!

성준: 뭐?

해원: 당신 맘이 더러운 거겠지.

*

도서관에서 잠든 해원이 보던 책 / 국문 번역: 죽어가는 자의 고독,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문학동네, 2012)

*

정원(김의성): 사세요. 저도 아까 그냥 물어봤는데 주고 싶은 만큼만 주시면 된대요 이거.

해원: 그래요? 그런데 그럼 제가 너무 드러나잖아요.

해원: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에요?

정원: 해원씨가 좀 비슷한 것 같은데요?

해원: 네? 농담하시는 거에요? 뭘 아신다고요 저에 대해서

정원: 꼭 오래 봐야지 보이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사실 겉으로 다 볼 수 있는 것 같은데,

해원: 뭐가 보이시는데요?

정원: 해원씨는 겉으로 보기에는 차갑고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인 것 같은데, 안으로는 제일 용감한 사람인 것 같아요. 뭔가 힘이 너무 강해서 계속해서 부닥치면서 되게 아프고 그럴 것 같은데, 그래도 계속 부닥칠 것 같아요.

해원: 그래요?

정원: 그래야지 자기가 누군지 알 것 같으니까 계속 부닥치는거죠. 알고 싶은거죠 자기가 누군지. 그런데 그 부닥침의 강도나 지속이 대단할 것 같아요. 그건 뭐랄까 절대적인 진실 같은 것을 살아있는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체험하고 싶은거 그런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보고 있으면.

해원: 그런 사람이 좋으세요?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

정원: 아뇨. 그런 사람이 제 옆에 있는게 필요해요. 뭔가 내가 망가뜨릴 수 없는 강한 개성 같은 그런게 제 옆에 있는게 저한테는 필요해요. 제 정신 건강을 위해서. 건강한게 행복한 거잖아요. 네. 저한테 정말 그게 필요한 것 같아요.

해원: 아늑하네요 이집.

 *

중식(유준상): 깃발 참 멋지네. 어. 너무 단순한데? 너무 멋진 것 같애. 야 깃발은 참 정말 멋진 발명품이야 그지?

연주(예지원): 그것 때문에 바람이 보이잖아요 눈에.

 *

성준: 나, 더 이상 힘들어서 더 이상 못할 것 같애. 집에서도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못견디겠어. 학교 애들도 눈 못 마주치겠고. 너 정말 나랑.. 나 사랑하니? 너 너무 사랑하거든? 우리 어디로 가버릴까? 아무도 없는 데로?

해원: 어디로 가요 우리가 어디로..

성준: 강원도 같은 데.. 거기 내가 아는 신부가 있거든

해원: 선생님 잘못이에요

성준: 뭐?

해원: 우리 맨 처음 자고 나서 그게 끝이라 그랬잖아요. 그때 얼마나 좋았어요. 근데 선생님이 다시 전화했잖아요. 그때 전화하지 말았어야 해요

성준: 그래 내가 잘못한거고.

해원: 네 선생님이 잘못하셨어요. 원하는거 다 어떻게 하고 살아요. 왜 왜 다하려고 하세요.

성준: 다하려고 한거 아니야. 너 사랑한 것 밖에 없어.

해원: 사랑한게 아니라 내 생각을 안한 거겠죠.

성준: 꼭 그렇게 얘기해야 되냐?

해원: 너무 힘이 들어요. 너무 힘들면 아무도 못참아요. 아무도 못참아요. 선생님은 안힘드세요?

성준: 뭐하자는 거니 우리 지금

해원: 헤어져요. 헤어질 것도 없겠지만. 선생님 하나도 포기 안하려고 하시잖아요. 저도 잘 살고 그냥 그럴래요.

성준: 그래. 잘 살아라. 미안. 내가 인사하고 갈게.

해원(독백): 외롭고 슬프다가, 갑자기 무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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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 25. 광화문 시네큐브

지금이 자네의 화양연화야

친해진 고객이 있다.  66년생 아저씨다.  다른 일로 서대문에 왔다길래 순대국 한사발 하고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나 빨면서 지나간 업무 이야기나 하고 있었다.

친해지면 잘해주고 싶은게 사람 마음이다.  1월 1일에 급하게 처리해 주었던 업무 이야기를 하다가, 힘들진 않냐고 묻기에 으레 그렇듯 너스레를 떨면서 넘기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저씨 눈망울이 묘하게 그렁그렁해지면서 "혹시 화양연화라는 단어를 아세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같은 시절을 화양연화라고 하지요. 저는 이제 일하고 싶어도 마음껏 일하지도 못해요. 내가 만할때는 일에 미쳐 살았지. 자정까지 일해도 힘든 줄을 몰랐어. 그땐 일이 재미있었거든. 돌이켜 보니까 그때가 화양연화였나보다 싶더라고. 힘들어도 찾는 사람도 많고 할 일도 많은 지금이 화양연화니까 재미있게 해요. 내나이 되면 하고 싶어도 못해. ㅎㅎ"

문장으로 옮겨놓고 보니 흔한 586 세대의 꼰대 발언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울컥했던 것은 우선 66년생 건설사 출신 아저씨와 사뭇 대조적으로 "화양연화"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의 산뜻함, 의외성, 그리고 화자의 진정성 때문이었던 것 같다(지금 프로젝트 끝나고 고정된 직업이 없으신 상태). 은퇴 후에 이것저것 해보려고 돌아다니시는 아버지 모습도 겹쳤다. 맞아 저 사람은 정말 내가 부러울 수도 있겠다. 젊고 건강한 지금이 내 전성기일 수도 있겠다.

그러다가 문득 영화 "화양연화"가 재개봉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20대 때 처음 봤을때는 보다가 졸았는데, "20대때 봤을 때는 그냥 괜찮은 영화, 30대때 다시 봤을 때는 아련함과 슬픔으로 눈물이 나는 영화, 40에 이르러 또 다시 봤을 때는 내 인생의 인연들을 반추하게 만들고 내 인생의 화양연화를 추억하게 만드는 영화"라는 평을 보고 서른이 되면 다시 봐야지 - 했던 기억도 함께 떠올렸다. 같은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도 처음엔 그저 그랬는데 산전수전 겪고 다시 보니 최애 영화가 되었듯, 화양연화 또한 그렇지 않을까 라는 기대와 함께.  도대체 화양연화란 언제고, 무엇일까.

사랑의 완성은 때로는 이별이다

당연히 푸른 청춘의 어느 예쁜 사랑을 그릴 줄 알았는데, 남주의 화양연화는 첫사랑도 결혼 상대도 아닌 불륜 상대였다.  서로의 배우자에게 배신당하고, 그 상처를 공감대로 만난 둘의 인연은 참 조심스럽다.  서로가 신경 쓰이고 호감은 가지만 "우린 그들과 달라야 하기에" 내민 손을 뿌리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쉽게 떠나지 못한다.  그 가운데 서로가 위치하는 공간(남자의 방, 호텔 등), 양조위의 포마드와 장만옥의 치파오로 상징되는 남/여성성이 주는 성적 긴장감이 상당하고, 침대와 소파만큼의 거리가 오히려 마음을 조인다.

그렇게 엇갈리고 스치고, 마음을 내어줬다가 거뒀다가, 결국 항상 풀세팅 상태이면서도 모럴은 흐트러지지 않는 장만옥이 이내 양조위에게 엉엉 안겨 울때 참 마음이 아팠다.  사람에게 데이고 사람 때문에 아프고 힘든데, 다시금 사람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씁쓸했다. 

"티켓이 한장 더 있다면 나와 같이 가겠소?" "티켓이 한장 더 있다면 저를 데려갈 건가요?".  진심이지만 정답이 아닌 말들. 서로 두 눈을 바라보고 했으면 더 없이 로맨틱한 말들이, 가슴을 부여잡고 눈물 흘리며 하는 독백이 되니 너무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았을 때 온전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이별을 택하는 두 사람의 마음에는 너무나 공감이 된다.  결혼을 통해 사랑에게 배신당한 두 사람이, 오히려 이별을 통해 사랑을 완성하는 과정은 모순적이기에 아름답다.

화양연화를 최대한 즐기는 방법

작년 말 올해 초는 많이 힘들었다. 일은 많았고 인연은 어그러졌으며 나는 시종일관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런데 그렇게 일에 파묻혀 있는 순간마저도 사실은 화양연화였을지도 모르겠다.  청춘은 서른에 끝났다며 미화된 20대를 그리워하지만 과연 그때라고 행복했을까. 오히려 현재는 초라했고 미래는 불안했을지도 모른다. 항상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꿈꿨던 시절에 불과했다.  지금은 그래도 잘 버티고 있잖아,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그러고 보니 30대는 내가 가진 능력 이상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는 몇 안되는 세월이다).  지금이 나름의 화양연화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나니 다시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돌이켜보면 한 순간도 쉬운 시절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나름대로 재미있게 잘 살았다고 생각한다. 내 장점은 남들이 보기에 어려운 환경이어도 그 나름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충분히 향수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내가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가진 사람들이 할 수 없는 무언가를 찾아내는 행복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일이든 사람이든) 결핍은 빨리 메워야 하고, 거리는 빨리 좁혀야 한다는 강박이 심해졌다.  뒤쳐지기 전에 남들만큼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자력으로 메울 수 있는 결핍은 빨리 메우면 좋겠지만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들도 무수히 많다.  심지어 내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어그러지는 일도 있고, 내가 베푼 선의가 오히려 안좋은 결과로 돌아오기도 한다.  내가 최선을 다했는데...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그냥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이지, 채우지 못한 나를 무작정 채찍질하거나 채워주지 않은 상대방을 탓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결핍 내지 공백을 이용하면 재미있는 일도 많을 수 있다. 소공녀의 미소처럼 단골 바를 만들거나, 12시 넘어서까지 야근을 하면 스스로에게 위스키 한잔을 선물하고 꿀잠을 잔다거나(회사에 라산타라도 한병 들여놓을까...다 술얘기네...)... 상수를 견뎌내고 변수를 즐길 것, 내가 이뤄왔고 이루고 있는 일상을 과소평가하지 말 것, 돌이켜 보면 오늘을 그리워할 미래에 대한 예의를 다하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할 것.

기억에 남는 대사들

"낮에 사무실엔 왜 전화했죠?" 
"당신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제 남편도 늘 그렇게 말했죠. 
오늘은 왜 전화 안 했어요?" 
"귀찮아할까 봐."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 같아요." 
"우리야 결백해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죠." 
"절대 잘못돼선 안 돼요."

"내 말에 솔직히 대답해요. 당신 애인 있죠?" 
"미쳤어? 누가 그래?" 
"그건 알 것 없고, 있어요, 없어요?" 
"없어"
"거짓말 할 거예요? 날 봐요, 나 좀 봐요. 정말 애인 같은 것 없어요?" 
"있어." 
(오열)
"그렇게 반응하면 안 되죠.  솔직히 그걸 인정했을 땐 받아들여야죠." 
"난 자신 없어요.  그러고 싶지도 않고." 
"한 번 더 해봐요." 
"솔직하게 대답해 봐요.  당신한테 애인 있죠?" 
"미쳤어? 누가 그딴 소릴 해?"
"그건 알 것 없고... 있어요, 없어요?" 
"없어"  
"거짓말 말고... 솔직히 말해봐요.  정말 애인 없어요?" 
"있어" 
(오열)
"괜찮아요?" 
"인정하고 싶지가 않아요."

"우리 소문이 무성해요." 
"우리만 결백하면 되는 것 아녜요?" 
"나도 처음엔.. 당신처럼 생각했죠.  우린 그들과 다르다고.
근데 틀렸소.  당신을 위해서라도 내가 떠나야 해요."
"날 사랑했다는 말인가요?"
"나도 모르게...
처음엔 그런 감정이 아니었소. 하지만 조금씩 바뀌어 갔소.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이 남편과 있다고 생각하면 미칠 정도로... 난 나쁜 놈이오.
부탁이 있소." 
"뭐죠?"
"미리 이별 연습을 해봅시다."

"옛날엔 뭐가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면,
산에 가서 나무를 하나 찾아, 거기 구멍을 파고는 자기 비밀을 속삭이곤 진흙으로 봉했다 하죠. 
비밀은 영원히 가슴에 묻고"

"그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 거기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그는 지나간 날들을 기억한다.  먼지 낀 창틀을 통하여 과거를 볼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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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시보기

from 영화 2016. 1. 15. 15:04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다시보기(15. 4. 24)

になる彼女上野樹里ちゃん登場シーン最後ににやけて…。」というのはアドリブだそうです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조제는 '꽃이나 고양이가' 보고 싶어서 산보를 했다고 한다. 
나는 꽃이나 고양이가 보고 싶어서 밖에 나가본 적이 있나? 

- 프랑수아즈 사강, '신기한 구름'

- '코와레모노'가 해야 할 일이란?

- 기껏 '카에레'를 외쳐놓고 '혼마니 카에루키까'를 말할 수 밖에 없는 조제의 심정. 

- 시간이 흐른 후 연인관계에서의 온도차. 호랑이를 볼 때를 시선

- 1년 반 기다려준 우에노 쥬리와 재회하고 주저앉아 터트린 울음의 의미는 뭘까. 조제에 미안함? 쥬리에 대한 미안함? 자괴감? 후회? 결국 정상인을 택하는 스스로에 대한 역겨움? 

- 그렇게 뜨거웠던 너희가 시간이 지나면 정말 친구로 지낼 수 있을까.



말레나 다시보기(15. 4. 27)

- 모니카 벨루치는 '굉장하다'

- 같은 대상을 바라보는 소년의 관점, 남성의 관점, 여성의 관점이 다 각기 다르다. 

- 건전한 여론과, 소문과, 추문을 구분하는 지점은 어디인가.

- '제 의뢰인 말레나는 단지 죄가 있다면
운명적인 외로움과, 아름다움을 타고 난 죄 밖에 없습니다.
아름다운게 죄였습니다.
시기와 질투 그리고 거짓말로 인해
수치스러움 속에 부친의 신뢰마저 잃었습니다.
제 의뢰인은 이제 남편의 주검이 있을 저 먼 아프리카를 바라보며 눈물만 흘릴 뿐입니다' 

라고 해준 변호사마저 결국은...

- 명불허전 레몬샤워씬

- 드러낼 수 없는 말레나의 슬픔은 소년의 눈물을 통하여 드러난다.

- 굳이 나치를 끌어온 이유는 나치즘, 파시즘과 일반 대중들의 집단 광기가 그 속성에서 큰 차이가 없음을 드러내려 한 것이 아닌가.

- 대체로 메시지가 과한 느낌은 있으나, 거리로 인해 유지되는 소년의 순수와 그 안에 내재된 갈망/성욕이 섞여서 끝까지 묘한 느낌을 유지한다. 여운이 남는 영화.



시간 여행자의 아내(15. 4. 29)

- 레이첼 맥아담스

- 어바웃 타임과 대체로 유사하다. 시간 소재 로코라서 어쩔 수 없는듯.

-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 내 손을 떠난 것들, 하지만 내가 너무 사랑하는 것들.

- 마지막 키스는 정말 눈물난다. 유한성이 사랑을 매순간 새롭게, 영원하게 하는 것이었을까?

-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우리네 삶에선 그 순서도 정말 중요하다.

- Life is always~


봄날은 간다(15. 5. 19)

- 시종일관 여자 위주 페이스.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에 농락당하는 유지태!!

- '무슨 말이야' '그냥 끝나간다고' '뭐가 끝나가는데' '..끝나간다고'

- '은수씨 내가 라면으로 보여? 말조심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그냥 떠나는 것 말고 남자에게 남겨진 선택지가 뭐가 있는가.

- 집 나갈때 침대에서 눈뜨고 있는 여자 심리는 도대체 뭐지?
다시 전화걸어서 녹음실에 찾아온 심리는 또 뭐지?
'내가 오니까 좋아?' '나 보고 싶었어?' 그리고 '나 들어가볼게.' ??
다시 키스하는 심리? 다시 돌아가는 심리?

- '우리 헤어져' '너 나 사랑하니?'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헤어지자'

- 맹목적인 사랑은 치매노인의 미련 같은 것인가. 사람도 사랑도 변했는데 놓지 못하는 그런.

- 차에 기스내고 '크헝'하고 한숨쉰 후 토끼는 유지태 짱웃김

- '잘 지내지' '기억나?' '뭐가?' '그냥'. '우리 같이 있을까?' '왜?'

- 사랑이 때때로 변한다는 건 잘 알겠다. 사랑하다가 덜 사랑하게 될 수도, 안 사랑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다가 다시 사랑하게 될 수도 있고.
그럼 개인으로서의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건가? 변하는 감정에 맞춰서 같이 변해야 되는건가? 변치 않은채 지켜나가야 하는건가?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머리로만 알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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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조영화라니 이렇게 행복할 데가..... 시험 끝나니까 세상을 다가진 기분이다.


2. 다큐멘터리에 가까우면서도, 내러티브적으로 대단한 것이 없다는 것은 확실한 흠이다.
사실관계 자체가 단순하고 영화화할 건덕지가 많지 않은 관계로 전반적으로 스토리가 단조롭다. 

3. 스토리도 단조로운데 인물 성격 설정도 단조롭다. 별 고민 없이 왕비의 자리에 올라 단조로운 일상에 괴로워하며 할리우드 복귀까지 생각했다가, 나라가 위기에 빠지며 '모나코 왕비'라는 또 하나의 배역에 충실하기 위하여 적응하고, 노력해서 평화를 이끌어내는 다소 신데렐라적인 캐릭터.... 할리우드 배우->왕비라는 굉장히 특수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특유의 내면의 고충이라던지 성찰적인 부분을 더 강조할 수도 있었을텐데, 더 입체적인 캐릭터도 될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영화를 좋게 본 이유는 

1) 주인공 자체의 매력. Grace kelly 자체가 워낙에 매력있는 인물이었을 뿐더러, 니콜 키드먼도 왕비 역할을 진짜 눈부시게 소화했다. 하도 니콜 키드먼이 이쁘게 나왔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기대를 많이 하고 간 터라 처음엔 약간 실망했었는데, 보다보니까 매력넘침....

중간에 개인교습받을 때랑 적십자 연회에서 시민들과 소통하는 장면은
대부분 니콜 키트먼 풀샷에
대사도 없이 표정과 아우라만으로 이끌어나간 신인데,
명성다운 포스를 팍팍 풍김ㅎㅎㅎ 

2) 모나코는 아름답다. 다음 유럽 여행 코스에 모나코 추가..... 
영상미도 뛰어나고, 그냥 경치 감상만으로도 눈 정화..

3) 항상 외교적으로 치이고 강대국한테 짓밟힌 역사를 가진 우리 나라 국민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가는 상황이다. 


5. 잔잔하고 예쁜 영화를 원한다면 추천, 밍숭맹숭하고 뻔한거 싫어하면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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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대후문 필름포럼에서 첫 영화감상.

장점을 말하자면

1) 연대, 이대에서의 접근성이 괜찮음. 버스도 이대후문 정거장에서 내리면 바로 옆임.

(제시카키친 바로옆!)

2) 광고 없음. 엔딩크레딧 올라갈때까지 불 안킴.

3) 저렴한 가격(6천원). 매달 1매씩 티켓 제공하는 그린회원(?)인가는 연회비 5만원. 싸다.

단점은..

1) 역시나 영화티켓은 영수증 ㅜㅜ

2) 상영중인데도 포스터 없는게 좀 있음

3) 상영관이 작다보니 약간 빔프로젝트 틀어놓고 골방에서 영화보는 느낌 ㅋㅋ
나쁜건 아닌데 뭔가 밋밋할 수 있다. 뭐 이건 공간 자체의 한계. 이런 사이즈의 공간이니 유지가 되겠지.


2. '코엔 형제' 특유의 수많은 메타포의 해석에 대해서는
http://movie.naver.com/movie/bi/mi/reviewread.nhn?nid=3304029&code=89627&pointAfterActualPointYn=N&pointAfterOrder=sympathyScore&pointAfterPage=1&pointBeforeInterestYn=&pointBeforePage=1&reviewOrder=&reviewPage=1#tab 참조.


3. 음악영화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했다는 것만으로도 신선하고 좋았다.
어거스트 러쉬부터 원스에 이르기까지 가수로서의 '성장'과 '성공'에 초점을 맞추면서
결국 가수는 뭔가 별처럼 빛나는 존재고 노래는 모두의 심금을 울리는....ㅋㅋ
승리로 귀결되는 스포츠 영화에서처럼 그 나름의 감동을 자아내기는 했지만
어쩌면 그런 영화의 감흥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의 감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도 모른다.

영화 이면의 세계를 영화로 보여준 느낌. '현실은 영화와 다르잖아'라는 명제를 부수는 영화.
이 영화야말로 현실이다.


인용하자면

'영화는 기적들의 어색한 연결보다는,
일상의 통찰력있는 연결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공감.

시카고 오디션 장면에서도
미소를 지으며 선율에 빠져 있다가
'이 노래는 돈이 안되겠는걸' 이런 대사를 접할때의 가슴 쿵한 순간은
모두가 박수치고 모두가 환호하는 광경에서 느낄 수 없는... 먹먹함으로 다가온다.

4. 워낙부터 존메이어나 김광석 같은 포크송 싱어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60년대' 포크송은 처음 접해보는데
올드한 느낌은 조금 있지만 편하면서도 찐득한게 너무 좋다 ㅜㅜ

영화 자체가 대단한 메세지나 플롯이 있는게 아니라 음악 자체에 집중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기타 선율에, 포근한 목소리에 정신을 맡기는 것 만으로도 몽글몽글 충분한 힐링 ㅜㅜ 

five hundred miles 진짜 좋음!!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T9yPd5nQJNc)


5. 마성의 캐리 멀리건 ㅜㅜ 위대한 개츠비에서 데이지도 진짜 야무지게 잘 소화해냈는데 여기서 여주인공 '진'도 엄청 매력적이다. 말갛게 수수하게 멍한 표정에서 욕을 찰지게 내뱉는데 뭔가 설렌다 ㅋㅋ


6. 흘러가는 삶에 지칠 때도 많다. 모두가 성공을 거머쥐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은 고단하게 노력하지만 아무 대가도 받지 못한다. 여기가 아닌가 싶어 저기를 가봐도 마찬가지이다. 고양이조차 쉴 곳이 있는데 뚜렷한 거처 없이 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결국 나는 지쳤어!! 를 선언하고 남겨진 초라한 선택지를 택하는 것, 어쩌면 그게 '현실의 자각'이고 '어른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뮤지션이라고 저녁 식사의 흥을 돋우기 위해 아무데서나 노래하는 그런 사람 아니라고, 프로답게 목에 핏대 세워가며 자존심 세우고, 작은 밤무대에서나마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줄 때의, 뮤지션으로써의 그의 모습이 제일 멋지다. 삶이 워낙 고되기 떄문에 양보해야 하는 지점도 있지만 그만큼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이 있다. 남루한 옷차림에도 남의 집 소파를 오가는 삶 속에서도 그가 그렇게 초라해보이지 않았던 것은 그런 열망, 총기에 찬 눈망울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정적인 선원 일을 얻으면 고정된 수입은 있을지언정 그는 훨씬 초라해보이리라고 감히 예상한다. 나를 빛나게 하는 일을 찾는 것. 그 가운데서도 일상과의 밸런스를 무너뜨리지 않는 것... 무서울 정도로 모순인 이야기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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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U 시네마트랩에서 첫 영화감상. 재학중일 때 생겼으면 정말 많이 애용했을 것 같은데... 졸업하고나서야 이런 바람직한 시설이 생기다니 ㅜㅜ 

여튼 시네마트랩의 장점은

1) 광고가 없음

2) 관객이 매우 적어서 관람여건이 쾌적함

3)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까지 불을 키지 않아서 엔딩크레딧을 집중해서 볼 수 있음
(사실 엔딩크레딧도 신경많이써서 만든건데... 여타 영화관에서 영화 띡 끝나고 불켜서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남아있기 뻘쭘하게 만드는 문화에 대하여 불만이 많았었다!)


단점은

1) 상영관이 하나. 시간을 잘 맞추지 않으면 보고싶은 영화를 볼 수 없다

2) 영화표가 영수증. 이번부터 티켓 보관하는 습관을 가지려 했는데 의욕상실.


그래도 종종 이용할 것 같다.  

로1 생활의 활력소로 매주 토요일 마지막 상영영화를 볼까 생각중!!


2. 영화 내용에 대한 해석은

http://movie.naver.com/movie/bi/mi/reviewread.nhn?nid=846338&code=37544 

이 훌륭한 리뷰글로 대체.



3. 청춘의 시기에는 영화같은 삶을 꿈꾸기 마련이다. 나도 밴드에서 곡을 카피하고, 영화속 주인공의 코디를 따라하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외부에서 따온 이미지나 상징으로 나를 구성하고, '원래 나'와 거리를 두어 그 비워낸 부분에 세상의 조각을 채워 나감으로서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과 동화되고 싶었던 걸까. '모방'의 본능은 어디서 기인하는지? '타인의 삶'을 자신이 재현함으로써 타자와의 공감대를 찾는 '연대의 희구'가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자신이 열등한 부분을 우상 혹은 모방의 요소로 채워넣어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려는 부끄러움의 감정도 하나가 될 듯 하다. 그러다가 점점 성장이 멈추고, 변화/발전가능성이 사라진 스스로를 담담하게 바라보며 꿈꾸기를 멈추게 되리라.


4. 어릴 때 형제관계는 건전한 대인관계, 나아가 성관념 정립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것이 결핍되거나 왜곡된 경우 '성정체성(성적 대인관계를 포함)' 정립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겉으로 쉬이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라 논의가 많이 되지는 않지만 이래 저래 속으로 곪아 있는 사람이 많을거다.


5. 사랑한다는 말을 요구하고 구걸할수록 비참해지고 멀어지는 느낌. 마지못해 '나도 사랑해'라는 답변을 들을때의 코딱지만한 안도감과 이내 느끼는 서운함, 아쉬움, 자존감 하락, 절망. '유일성'이 본질인 애정관계에서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만큼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고' '어쩌면 네가 나 아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나는 너를 더욱 붙잡고, 원하고, 그런 내가 너는 부담스럽고.


6. 역사적 배경이 참 중요한데, 시대를 구성하는 인물의 속성은 시대를 닮아가게 되어 있다. 치열한 68년이었기에 그들의 젊음과 광기도 '치열'할 수 있었던 것이고, 피로사회를 사는 우리 젊은이들은 저렇게 분출할 광기도 탐닉할 대상도 찾지 못한채 가볍게 쉽게 모든 것을 소비하고, 이내 쉽게 질리고 피곤해지고... 

그런 의미에서 '오래된 정원'(황석영)의 배경인 80년대와 더불어 참으로 탐나는 시대적 배경이 아닐 수 없다


7. 퐁피두 센터가 '퐁피두 총리'의 이름을 따온 것이었구만. 


8. 셋은 역시나 불안정하다. 홀수를 odd(이상한, 기괴한) number라고 하고 짝수를 even(공정한, 평등한) number라고 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듯도 하다. 매튜는 이자벨을 이자벨은 테오를 보는 장면에서 섬뜩하게 느꼈다. 짝수에서는 쌍방향적 지향관계가 가능한데 홀수면 어디선가 엇갈리거나 기껏해야 순환관계에 지나지 않게 된다. 


9.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은 직후처럼 가슴이 먹먹했다. 


10. 젊음은 일시성을 본질로 해서 그런지 '연소'되어가는 느낌이 크다. 자살을 기도한지 5분만에 시위대의 최전선에 서는 모습이 모순이 아닌 시절이다. 나의 욕구와 욕망이 이리저리 튀는 것도 크게 신기한 일은 아니고, 그냥 영화에서처럼 나도 이렇게 저렇게 fluctuation을 반복하다가, 점점 그 스펙트럼이 작아지다가, 결국 안착하게 되겠지. 얼마 안남았다 내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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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2013)

from 영화 2013. 10. 5. 16:58

소원


소원(2013)
by 이준익 / 설경구, 엄지원

2013. 10. 5 @ 부대...

★★★★☆



1. 조두순 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품. ‘아동 성폭력 피해자를 주제로 한 영화’라는 들었을 때 떠오르는 스테레오타입들 - 넋나간 피해자, 가족들의 오열, 뻔뻔한 피해자, 솜방망이 처벌,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이에 대한 분노까지 - 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한다. 이는 소재 자체가 내포한 한계라 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큰 감동을 준다. 초점을 살짝 틀어 가해 행위에 대한 고발보다 피해자가 조금씩 회복되는 모습, 어떻게든 희망을 찾으려는 한 가족의 몸부림에 맞췄기에 가능한 결과물이다.

2. 더 이상 정상적으로 용변을 볼 수 없는 소원이... 당황한 아버지가 다급히 소원이의 속옷을 갈아입히려 할 때 소원이는 ‘벗겨짐’의 행위에서 아픈 경험을 떠올리고, 아버지를 바라보는 눈빛 위에는 범죄자의 모습이 덧씌인다. 이불을 뒤집어쓴채 아버지를 거부하는 소원이, 문 밖에 숨어 힐끗힐끗 소원이를 쳐다보며 맘 졸이는 아버지, ‘코코몽’이 되어서밖에 딸과 소통할 수 없는 부녀의 거리.. 보고 있으면 숨이 턱턱 막히고 어찌할 도리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그렇기에 조금이나마 회복되어 학교에 돌아온 소원이가 코코몽! 아빠야제? 할 때의 가면 속 설경구의 흔들리는 눈빛, 손수 가면을 벗겨 아빠의 땀을 씻어주는 소원이의 손길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희망의 증거’이다. 코코몽 댄스(?)를 선보이는 어머니, 바스락거리는 용변 주머니를 가리고자 사탕 가방을 만들어주는 아버지, 문방구 앞에 붙은 격려 문구, 소원이 동생 소망이.... 희망의 조각들을 꿰어 어떻게든 상처를 가리고, '아이고 죽겠다' ‘왜 태어났나 싶'음에도 힘든 삶을 꾸려나간다.

3. 물론 이 영화에서 찾은 희망은 비현실적이다. 영화에 묘사된 성폭행 피해자와 그 가족을 돌보는 사회와 공동체의 모습은 ‘판타지’에 가깝다 할 것이다. 희망의 순간으로 가려지지 않는 좌절과 불행의 나날은 얼마나 길고 어두울까. 무자비하게 파괴된 내장을 들어낼 때의 고통, 초등학교 여자아이가 삶의 본질에 대해 회의해야 하는 현실은 결코 감당하기 힘든 것이다. 

4. 이러한 난점이 있음에도... + 이준익 감독이 피해자에게 2차, 3차 피해를 입힐 수 있는 현실을 감안하고서라도 이런 영화를 만든 건.... 아마 ‘이 영화를 통해서 많은 사람이 이 문제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고’ ‘사회적 움직임이 생겨서 아픈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즉 감독 자신이 그린 판타지적 세계에 어떻게든 현실을 조금이나마 조응시켜보고자 하는 노력의 발로가 아닐까.. 생각한다.

5. 유기징역 상한은 15년, 가중처벌해도 최대 25년... 그런 측면에서 심신미약 감경사유 적용해서 12년이면 그렇게 짧은건 아닌데... 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주위에서 '저딴 새끼는 목매달아 쳐죽여야 된다' '판사새끼 지딸이 당해봐야 정신차리지' '적어도 무기징역 아닌가'라는 아우성이 들려서 퍼뜩 정신이 났다. 13년 6월부로 성범죄 관련 법률은 강화되었고 거의 모든 성폭력 범죄에서 음주, 약물로 인한 감경 사유는 인정되지 않게 되었다. 국민 대다수의 법감정에 맞추어 법은 엄격해지고 있으나.... 하지만, 인용하자면,

'법이 약해 강간범이 활개친다는 주장은 여타의 고민을 중세적인 "쎈 법"에 모조리 떠넘기겠다는 직무유기에 가깝다. 꼴도 보기 싫은 저 강간범을 죽이거나 내 눈앞에서 영원히 거두라는 외침은, 그 피의자 또한 사회의 일원이라는 점을 간과한다는 점에서 고작 '내 세계'의 안위'만'을 위한 것이고, 따라서 역설적으로 '반사회'적인 주장인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법은 '나'의 정의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수천만의 다른 정의가 타래진 '사회'의 정의를 통해 완성된다. 고로 어떤 강간범은 영원토록 격리시킬 것이 아니라 결국 사회의 품으로 돌아와야 하고, 그 역할은 법을 집행하는 국가의 몫임과 동시에 사회 구성원 스스로의 몫이기도 한 것이다'

'왜 강간범을 태워죽이지 않냐고? 그 성에 차지 않는 형량의 '여백'에 우리와 국가가 해야 할 나머지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국가-개인이라는 1:1의 관계 안에서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개인이 보기에 별 신통찮을 근대법체계 속에 생활하고 있는 우리는 그 체계를 통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고, 우리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잘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근대를 누리며 늘어놓는 탈근대적 투정이나 순간적인 격정의 의의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형법관련법의 제정 및 개정에 있어서는 형법이 가지는 보호적 기능과 관련하여 형법의 최후수단성·보충성의 원칙(Subsidiaritätsprinzip)에 충실한 입법이 요구된다. 일반인의 법감정에 근거한 보호목적 우위의 입법은 테러형법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어 자칫 보호를 갖아한 침해가 될 수 있다. 실제에 있어 입법자는 여론을 의식하여 범죄화에 따른 상징적 효과 때문에 집행할 의도나 능력도 없이 중벌화 입법의 유혹에 빠질 위험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입법들은 내용적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
(이와 관련해 배종대 교수는 "형벌이 최후수단이라는 말은 교과서 속에나 있는 말이고, 현실에서는 최초수단(prima ratio)이 된지 이미 오래되었다고 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의해 자기결정·자기책임을 강요당한 개인은 자신의 필사적 생존을 위해 사회적 연대로부터의 개별인간으로서의 정신적 여유나 관용을 상실한 채, 범죄의 사회성에 눈을 돌릴 여유를 가짐이 없이 엄벌에 의한 치유를 요청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엄벌의식이 '이물질로 생각되는 것'의 배제·배외의식에 연동됨과 함께 의심과 불안감을 재생산함은 물론 새로운 범죄를 재생산하게 된다. 여기에서 엄벌주의는 문제는 더욱 악화시킨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범죄행위는 사회에 적대적인 것이지만 범죄자는 인간으로서의 자유의 향유주체이며 인권의 주체라는 것은 변하지 아니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근대형법의 기본원리인 행위책임의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형법은 행위책임이며 행위자형법이 아니다. 행위자는 그가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처벌받은 것이지, 그의 상태 때문에 처벌받은 것은 아니다. 흉악범죄인에게는 인권이 없다는 사고는 헌법(제10조)이 보장한 인권의 보편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인권은 기본권의 구체인 인간 누구에게나 심지어 범죄자에게도 보장되어야 할 권리이다. 사람은 사람이라는 것 자체에서 존엄은 보장되어야 하며 인간은 자유롭게 처분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은 허용되지 아니하는 존재이며, 범죄자는 범죄행위로 인해 필요최소한도 내에서 일정한 기본권이 제한될 뿐 일반인의 국가형벌권으로부터의 과도한 보호욕구로부터 인권이 보장되어야 할 지위에 있다. 이러한 자기구속의 법원리는 일반국민과 범죄인은 고정된 지위가 아니라 일반국민도 내일의 범죄자 지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

-http://cryingkid.egloos.com/3407401
- 이재석, "형법의 중벌화 입법경향에 관한 비판적 고찰", <법학연구> 44, 2011, 204-218쪽


이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6. 하여튼 이 영화가 주는 감동에는 변화가 없다. 시커먼 군인들도 눈물 줄줄 흘리며 본 영화.. 여성분들 눈화장 조심하세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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