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 여자친구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 모든 일에는 흔적이 남게 마련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야 최초의 톱니바퀴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 "사랑은 저처럼 뒤늦게 / 닿기만 하면 닿기만 하면 / 흔적도 없이, 자욱도 없이 / 삼월의 눈처럼"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 한동안 우리는 날씨에 대해서만 얘기했다. 차라리 쏟아져 내리면 그나마 마음이라도 흡족할 것을.
내리는 둥 마는 둥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장마에 대해서, 균질하게 하늘을 가득 메운 무미건조한 회색에 대해서, 뜨겁고 뜨겁고 뜨겁기만 한 여름 햇살을 향한 본능적인 그리움에 대해서.

나는 장마가 계속 이어지는 탓에 달리기를 할 수 없다고 말했고, 그녀는 내가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그러다가 어느 결엔가 그녀가 내게 말했다. "맞아, 좋았어. 우리 참 좋았어. 그렇긴 하지만 우린 이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 그 말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고, 또 슬프게 만들었다. 우선 '맞아'라는 말 때문에, 그 다음에는 '그렇긴 하지만'이라는 접속사 때문에. 맞아. 그렇긴 하지만. 맞아. 그렇긴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 얼마간 나는, 예컨대 샌드위치를 만들기 위해 주방 테이블 위에 식빵을 일렬로 쭉 늘어놓으면서, 혹은 도서관 앞 휴식공간에서 담배를 입에 물고 마치 나의 앞날처럼 불안하고 흐릿하기만 한 풍경을 바라보면서 그 말을 되뇌었다.

'맞아, 어쩌면 이 장마는 영원히 계속될지도 몰라. 그렇긴 하지만, 나는 한번 달려보겠어.'

- 맞다, 나는 연필이었고, 그래서 흑심을 품고 있었다.

- '맞아요, 그렇지요. 세상의 끝까지 데려가고 싶을 정도로요.'

- 누군지는 끝내 알 수 없게 됐지만, 그래서 죽는 순간까지도 당신만을 생각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영영 말해줄 수 없게 됐지만, 언젠가는 그 사람도 알게 되겠죠. 시인이 한때 이런 시를 섰다는 거, 그 메타세쿼이아가 두 사람이 갈 수 있었던 가장 먼 곳이었다는 거.

- 우리는 모두 헛똑똑이들이다.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사실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대부분은 '우리 쪽에서' 아는 것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런 처지인데도 우리가 오래도록 살아 노인이 되어 죽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리석다는 이유만으로 당장 죽을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 삶에 감사해야만 한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나날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해되기만을 기다리며 어리석은 우리들을 견디고, 오랜 세월을 버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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