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보다 마음이 참 힘들었던 주말 "커리어의 씁쓸함과 실존적 무게로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는 사려 깊은 책"이라는 소개 문구에 충동적으로 구매한 책이다.

추천의 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고 세속적 성공이라는 기준에 부합하려는 첫 번째 산을 정복했다는 말이 아니다.  마흔 이후로 전력질주를 이어가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밖에 없는 여러 상황을 경험하고 나니, 남이 아닌 내가 더 잘 사는 방법이 무엇일지 궁리하게 된다.  이기심으로 돌아선다는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더 잘 살기 위한 방법론 위에서 나 자신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남은 인생은 너무 막막한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은 무엇일까.  또, 어떤 일이 나에게 궁극적인 기쁨을 주며, 내 인생을 성공한 인생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그때마다 누군가가 제시하는 방안은 남은 인생처럼 막연하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이 고민에 맞닥뜨리는 시기를 두 번째 산에 비유한다.  물질적인 첫 번째 산을 넘은 뒤 찾아오는 진정한 인생의 고민.  (중략) 결국 사회적 관계는 인생의 성취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며, 그가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진정한 관계의 회복이다."

"삶의 공허 앞에서 브룩스는 이제 그만 첫 번째 산에서 내려와 두 번째 산에 오를 때가 됐다고 말한다.  첫 번째 산을 오르는 삶이 나의 성공을 위한 삶이라면, 두 번째 산을 오르는 삶은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헌신의 삶을 말한다.  헌신의 깊은 유대 없이 서로 연결되지 못한 삶의 뿌리들은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고 쓰러지기 마련이다.  타인을 위한 삶은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할 소소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몰입해야 할 중요한 가치이자 토대가 되어야 한다."

서문

사람들의 삶에는 두 개의 산이 있다.  이들은 학교를 졸업한 뒤 취직을 하거나 가정을 꾸리며 자신이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산을 찾아낸다. "난 의사가 될거야" "난 기업가가 될거야" 첫 번째 산에서 우리 모두는 특정한 인생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 그 과업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재능을 연마하고, 확고한 자아를 세우고, 자신의 족적을 세상에 남기려고 노력하는 일 등이다. 이 첫 번째 산에 오를 때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들이면서 평판 관리에 신경쓴다.  그래서 늘 점수를 기록한다.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내 순위는 전체에서 어디쯤일까? 심리학자 제임스 홀리스가 지적하듯이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자기의 참모습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 첫 번째 산에서 사람들이 설정하는 목표는 자신이 속한 문화권에서 규정하는 통상적인 목표이다. 성공하기, 남들에게 존경받기, 제대로 된 사회 집단에 초대받기, 개인적인 행복 누리기. 좋은 집, 화목한 가정, 멋진 휴가, 맛난 음식, 좋은 친구들.

어떤 사람들은 이 첫 번째 산의 정사엥 올라 성공을 맛보고 끝내 손에 넣지만, 만족하지 못한다. "이게 내가 바라던 전부인가?" 그리고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더 심오한 여정이 반드시 있음을 알아차린다.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이 사람들은 더는 산 위에 있지 않다. 이들은 당혹스러움과 고통스러움의 계곡에서 헤맨다.  고통의 시기는 그 사람의 가장 깊은 내면을 드러내며, 자신이 생각하던 모습이 사실은 진정한 자기가 아니었음을 깨닫해 해준다.  또 다른 층이 엄연한 자기로 존재함을, 어둠이 똬리를 틀고 있으며 가장 강력한 열망들이 살아 숨쉬는 어떤 기질이 실존함을 그제야 깨닫는 것이다.

고통의 시절은 일상이 피상적으로만 흘러가는 것을 방해해서 자신의 좀 더 깊은 내면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자기 기질 깊숙한 곳에 보살핌의 본질적인 어떤 능력, 즉 자아를 초월해서 타인을 보살피고자 하는 어떤 열망이 있음을 깨닫는다.  이 열망에 맞닥뜨릴 때 이 사람들은 전인적인 인간 whole person이 될 준비가 완료된 상태인다.

고통을 통해서 한층 더 성장한 사람들은 두 가지 반란 단계에 나아간다.  첫 번째로 이들은 자기의 이상적 자아(ego ideal- 한 개인이 자신이 되고자 하는, 무의식적으로 만든 완전성을 갖춘 자아)에 반기를 든다. 자아의 욕구들은 자신이 자기 안에서 발견한 깊은 영역들을 결코 만족시키지 못할 것임을 이들은 깨닫는다.  또한 이들은 주류 문화에 반기를 든다. 이들은 진저으로 바랄 가치가 있는 것들을 자기가 바라기를 원한다. 

두 번째 산은 첫 번째 산의 반대가 아니다. 두 번째 산에 오르는 것은 첫 번째 산에 오르는 것에 이어지는 또 하나의 여정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어떤 사람은 자기 삶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이들은 법률사무소를 팽개치고 티베트로 날아간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직장, 결혼 생활을 그대로 유지하지만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  이제 자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소명이다.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자기를 더는 관리자로 보지 않고 멘토로 생각하며 다른 직원들이 더 나아지도록 돕는데 모든 힘을 쏟는다.  이들은 자기가 속한 회사 조직이 사람들이 그저 다달이 봉급을 받으려고 출근하는 얄팍하고 얕은 공간이 아니라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있는 실팍하고 두터운 공간이 되기를 원한다.

자신이 지금 첫 번째 산을 오르고 있는지 아니면 두 번째 산을 오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결정적인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당신이 궁극적으로 소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 내면에 있는 자아인가, 아니면 당신 바깥에 있는 어떤 것인가?

첫 번째 산이 자아를 세우고 자기를 규정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자아를 버리고 자기를 내려놓는 것이다.  첫 번째 산이 무언가를 획득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무언가를 남에게 주는 것이다.  첫 번째 산이 계층 상승의 엘리트적인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무언가 부족한 사람들 사이에 자기 자신을 단단히 뿌리내리고 그들과 손잡고 나란히 걷는 평등주의적인 것이다.  "이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오로지 겸손함만이 그 무게를 버틸 수 있다.  혹시라도 자존심을 내세우다간 그 짐의 무게로 등이 부러지고 말 것이다."

사람들은 회사에서 일을 하거나 대학교에서 강의를 듣지만, 이런 활동들이 그 사람에게 어떤 두드러진 흔적을 남기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그런 데서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고 나면 그냥 떠나 버린다. 그러나 두 번째 산의 조직은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은 곳을 건드려서 영원한 어떤 흔적을 남긴다.

우리는 초개인주의 hyper-individualism 문화 소에서 살고 있다. 자기 자신과 사회 사이의 긴장, 개인과 집단 사이의 긴장이 늘 팽팽하게 존재한다.  이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다시 균형을 잡아서 사람들로 하여금 관계와 공동체와 헌신(우리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열렬하게 바라지만 초개인주의적인 생활 방식 때문에 늘 훼손하고 있는 덕목들)을 향해 나아가도록 방향을 잡아 주는 문화를 건설하는 것이다.

(당연히 모든 사람의 모든 인생을 아우르는 단 하나의 공식은 없다(예를 들어 A는 두 번째 산을 첫 번째 산보다 먼저 올랐던 것 같다 - 개인적인 성공이 아니라 도덕적인 헌신을 강조하는 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 

(소명, 천직으로서의 직업 vocation과 생계, 출세를 위한 일자리 job / career의 구별).

헌신이란 대가를 기대하지 않은 채로 무언가에 매진하는 것이다. 헌신은 무언가를 깊이 사랑하게 되어서, 사라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순간들에 대비해 그 무언가의 주변에 어떤 행동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다.  어떤 직업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그 일을 하며 평생을 살아가는 것, 결혼 상대를 결정하고 결혼 생활을 잘 꾸려가는 것, 인생 철학을 세우고 다듬어서 신앙을 경험하는 것, 공동체에 기여하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히는 것,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쳐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번성을 누리도록 노력하는 것.

대부분은 자기를 희생하는 인생을 올곧게 살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높은 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의 모범적인 사례에 고무되는 것, 그리고 깊이 헌신하는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예전에 나는 개인주의의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 때 나는 개인주의를 단단히 붙잡기만 하면, 즉 자기 배의 키를 단단히 붙잡고 있기만 하면 인생은 점점 더 나아지고 최상의 수준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믿었다. 인간의 품격은 대부분 자기 자신을 토대로 해서 쌓아 나가는 어떠한 것이라고여전히 믿었다. 모든 의지력을 동원해 자기가 가장 약한 부분에서 자기 자신을 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인격 형성이 개인 차원에서 성취되는 것이라고 더는 믿지 않는다.  근육을 키우듯이 정직성, 용기, 성실성, 끈기 등의 덕목을 키울 수 있다고 더는 믿지 않는다.  좋은 인격이란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과정의 부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랑할 가치가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어떤 공동체나 대의에 순종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사랑의 애착 관계를 두텁게 쌓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살피는 일상적인 행동 속에서 스스로를 잊어버리듯이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는 일상적인 행동들 속에서 나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인격은 갖추기에 좋은 것이다. 인격을 형성해 가는 과정에서 배울 점은 많다. 그러나 인격보다 지니기에 더 좋은 것은 도덕적인 기쁨 moral joy이다.  이 평정심은 완벽한 사랑을 구현하는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갈 때 비로소 찾아온다.

나는 커리어에서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렇게 거둔 성공은 나를 특정한 인간 유형으로 만들어 버렸다. 다른 사람들과 멀리 외따로 떨어져 있으며, 어떤 것에도 상처받지 않으며, 타인과의 의사소통 업시도 존재하는 그런 인간으로 말이다. 적어도 개인적인 삶에서는 분명히 그랬다. 나는 인간관계의 의무를 회피했다. 내 인생의 온갖 실수와 실패 그리고 죄를 돌아보니, 하나같이 내가 가까이해야 마땅했던 사람들 앞에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던 성향의 것들, 즉 개인적인 차원으로 움츠러든 죄들이었다. 회피하고 얼버무르기, 일에만 파묻히기, 갈등 외면하기, 공감하지 않기, 그리고 나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표현하지 않기.  사람보다는 시간을, 인간관계보다는 생산성을 중시하는 바람에 사랑하는 존재와 함께하지 못하는 이런 습성은 내 인생에서 반복되고 있다.

죄의 대가는 죄이다. 나의 잘못은 차곡차곡 쌓였고, 그러다 마침내 우르르 무너졌다. 내 삶을 규정하던 실체들이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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