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 자체는 매우 흥미롭다.
2. 주제가 되는 공간인 '집'에 대해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서술한다.
'현대적 집(home)이란 공과 사의 공간을 구분하는 문자 그대로의 경계선을 표시한다. 또한 집은 공과 사의 영역 사이에 놓여 있는 비유적 경계선(metaphorical boundary)을 대표하기도 한다. 문자 그대로 공간과 비유적 영역에 있어 집(home)이란 개개인과 정부 권력 사이의 관계에 관한 기본적인 문제들이 일어나는 장소이다. 미국 법에서는 집(home)에 대한 생각을 통해 범죄, 폭력, 섹스, 가족, 사생활, 자유 그리고 재산이라는 법적 개념들이 중요하게 형성되어다. 집이란 전통적으로 주거침입관련죄, 정당방위 및 가정폭력 관련 형법을 규정하는 역할을 했다. 비합리적인 수색과 압수(unreasonable search and seizure)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정당한 법적 절차(due process)를 보장받을 권리 및 무기를 소지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 헌법 권리들을 표현하는 중심에 집이 위치한다.'
'집'을 법적으로 어떻게 볼지에 대해서 간단하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장이 되시겠다.
3 . 이러한 집에 대해서는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하는데
1) 전통적 관념으로서,
타인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최종적 장소로서의 집.
정부 침입, 통제로부터 개인적 자유를 누리는 장소
(Lawrence V. Texas : 전통적으로 정부는 집 안 어디에나 존재하지 않는다.)
경찰의 역할은 침입자로부터 '집'을 보호하는데 있고,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는다.
2) 현대적 관념으로서,
가정 내 구타, 성폭행, 위협을 공공의 중재, 개입(public intervention)으로부터 숨겨주는 역할.
무서운 사랑(terrifying love)이 일어나는 범죄가 있는 곳(home-as-violence)
이에 대해 경찰이 개입하는 과정에서 사생활 침해가 가능.
사생활의 보장이 폭력의 연장선에 놓일 수는 있으나, 사생활 보장 자체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로서
가치 충돌이 발생.
4. 종래 'Castle doctrine'에 따라 외부로부터 침입이 불가능한 '요새'였던 집이
Legal Feminism 등의 주장에 따라 가정 폭력이 형법화되고, '사적 문제'가 '공적 문제'로 재해석됨에 따라서
형법의 전적인 확장이 이루어지게 된다.
즉, 가정폭력에 관하여 상당한 근거(probable cause)가 존재하면,
경찰이 바로 체포하는 검거 의무화 법률(mandatory arrest laws)가 제정된 것.
no-drop 기소정책에 따라서 피해자가 기소를 원치 않아도 검사가 의무적으로 기소하게 되었다.
5. 특히 접근금지명령(Protection order)는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이에 의하면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가해자(주로 남편)이 접근을 못하게 되어
남편이 집 주인이더라도 가정에 머무르지 못하게 된다.
즉 가정 내에 피고인이 머무르는 것만으로 유죄가 되며, 가정은 형법적 통제구역이 된다.
'질서 유지' '공공 삶의 질'과 같은 criminal justice policy의 중짐 주제들이
공공 장소의 범죄뿐 아니라 가정까지 외연이 확대되게 되는 것.
종래 폭력피해여성운동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생활 터전 공유'라는 상황을 막기 위해
보호시설(shelter)을 최대한 이용했으나,
피해자가 퇴거하기보다는 피의자가 그 집에서 배제당하고
피해자가 자신의 공간에서 안정, 자율성을 되찾아 '두려움 없는 집'을 만드는 것이 더 옳은 방향이라고 봄.
이 과정에서 '집 안에 있는 상태(presence at home)'라는 비범죄적 행동이
범죄가 되면서 구성요건의 대용물(the proxy)이 된다.
또한 집 안 폭력이 범죄화되면서 가정폭력자로 추정되는 사람은 '최고 낯선 사람(superstranger)'이 된다.
6. 한편 가정폭력경범죄(misdemeanor domestic violence) 기소 과정에서 접근명령금지가 사용되면,
이는 정부가 친밀한 관계(initimate relationship)를 종결하는 것으로
결국 '정부 주도의 실질적 이혼(state-imposed de facto divorce)'가 이루어지게 된다.
즉 해당기간동안 대상자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관련 배우자의 동의도 없이도 정부 주도 하에 실질적인 이혼 상태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기본권(the fundamental right to marry)이 침해되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가능하지만,(State V. Ross)
연락금지명령이 수반되지 않는 가정폭력 대안으로는 같은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하여
이를 정당화하게 된다.
그리하여 home privacy, public interest, criminal law control간에 긴장이 발생하게 된다.
가정 폭력 피해자의 보호도 물론 중요하지만,
개인, 가정 공간에 대한 개인적 자주성이 공공의 이익이라는 이름 하에
정부 통제력에 종속화되고 있는 상황은 비판적으로 심사숙고해볼 만한 상황이라 하겠다.
7. 나는 요약 과정에서 많이 빠뜨렸지만
'Castle doctrine'과 'true man' 'the subordinated(종속된) woman' 과 관련된
'학대받는 여성과 그녀의 권리 신장(?)'이라는 측면도 이 책에서의 주된 시점 중 하나이다.
(페미니즘 쪽에 관한 관심과 지식이 얕은 편이라서
주로 기본권과 프라이버시에 관한 내용으로 요약의 중점을 둠..)
저자가 인용한 문구를 재인용하자면,
'아내를 때리는 것을 특별히 폭력적인 개인 또는 관계의 단순한 현상으로서가 아니라
사회 문제로 정의한 점은 페미니즘이 성취한 위대한 점 중 하나' 이며
'법 안에서 사생활을 이론화시키는 것은 여성을 상징하는 것이고, (중략) 법 안의 가정에서
정조를 가진 부인이기도, 가정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한 그녀가
사생활의 의미를 놓고 벌이는 양면 가치를 지닌 논점을 상징하는 주체인 것이다.
8. 우리 나라에서도
부부강간의 인정 여부, 부부간 접근금지가처분 등이 논란이 되고 있는 현실임을 생각하면
비록 적용 법리 및 판례는 미국의 것을 기준으로 하여 많이 다르긴 해도
'가정(폭력)' 'privacy' 등의 키워드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긴 하다.
but, 이제부터 쓴소리.
1.
이 책은 정말 학술적인 책이다. 'At home in the law'라는 무미건조한 영문 제목이 말해주듯
'가정'과 '법'의 관계를 다룬 법률 관련 전문 서적이다.
헌법의 기본권 파트, 검찰의 수사와 기소, 가정법 등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으면
한두페이지 넘기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임이 틀림없다.
또한 이 책이 발간 후 호평을 얻었다지만
'대중적인 법률 안내 서적'으로서가 아닌,
전문적인 학술 서적으로 인정받고 평가받은 것이다.
그런데 'At home in the law'라는 제목이 어떻게
'법의 재발견'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될 수 있으며,
어딜 봐서 법에 대한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책인지는 모르겠다.
법과 제도의 제정에 따른 가정과 법률 사이의 관계의 변천, 가정 개념의 변화 정도면 적당하지 않겠나.
이 책이 왜
- 국내도서 > 사회 > 법 > 일반인을 위한 법이야기
2. 그리고 미국 법사회협회 선정 '올해의 최고의 법률서적'으로 허버트 제이콥 상을 수상했다는데
허버트 제이콥 상은 이런거다. (http://www.lawandsociety.org/awards.html#Jacob)
Herbert Jacob Book Prize
Established in 1996 as the LSA Book Award, and re-named in memory of Herbert Jacob, past President of LSA, the competition is open to books from all fields of, and approaches to, law and society scholarship—excluding only works of socio-legal history, which are considered for the Hurst award—published in the prior year, and self-nominations are accepted.
Herbert Jacob was the founder of the first internet book review in the field, Law and Politics Book Review, a creative, energetic scholar who took on a wide variety of questions and issues, and a warm human being whose own work has been a major contribution to the field of law and society. The award is intended to recognize new, outstanding work in law and society scholarship.
Nominations are accepted from all aspects of the field and any country of origin and may include first books of young scholars to books that are capstones of long careers in law and society research and publication.
The award is a cash award of $500, (which is shared in circumstances of multiple awardees).
동급의 상으로만
- Harry J. Kalven, Jr. Award for Outstanding Scholarship in Law and Society
- J. Willard Hurst Award for the Best Work in Sociolegal Legal History
- Herbert Jacob Book Award
- John Hope Franklin Prize
- Law and Society Association Article Award
- Law and Society Association International Award
- Stanton Wheeler Mentorship Award
- Ronald Pipkin Service Award
이렇게 많은데, '올해 최고의 법률서적'이라는 표현은 좀 낯간지럽지 않은가.
상금이 권위를 대신하지는 않지만 500달러짜리 상이다.
그리고 법사회학 자체가 그렇게 큰 분야도 아니고,
학부 수준에서는 법철학과 더불어 4학년때 전공선택으로 학년당 1/20 정도의 학생이나 수강할까 말까 한데.
(법사회학을 비하할 목적은 없다. 미국 법사회학회 우수 도서중 하나가 '올해 최고의 법률서적'으로 둔갑된 데에 대한 어이없음을 표현하고자 한 것.)
3.
그리고 가장 나를 분노케 했던 것은
발번역
정말 문장을 발로 번역했다.
물론 문학 전공자인 석지영씨의 커리어가 말해주듯, 문학적 메타포와 어려운 법률 개념이 뒤범벅되어
번역이 쉽지 않은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한다.
하지만 주술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애매한 용어는 혼용된 것이 많아서 엄밀한 개념을 잡기가 매우 혼란스럽다.
어느 정도냐면 번역된 문장에서 원 문장을 유추할 수 있고,
그 유추된 원 문장을 다시 자연스럽게 번역할 수 있는 여지가 읽는 과정에서 떠오를 정도이다.
번역자도 문제지만,
이렇게 번역이 엉망으로 되었는데도 출판을 묵인한 저자 본인의 저의도 의심스럽다.
4.
이건 사견이지만.
4학년때 우리과에 석지영씨가 강연을 온 적이 있다.
늦게 가서 맨 뒤에서 졸면서 들었지만..
하여튼 강연은 전부 영어로 이루어졌다.
최근에 새로운 책을 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책 관련 인터뷰도 전부 영어로 했다고 한다.
그런 '영어' 위주의 본인의 아이덴티티와 별개로,
동양인 최초의 하버드 로스쿨 종신교수임을 너무 강조하고,
'하버드'라면 사족을 못쓰는 한국 분위기 답게 '한국인 하버드 교수'임에 도취되어서
오히려 반감이 들 정도로 그녀를 띄워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솔직히 든다.
종합하자면,
가정 폭력으로부터 가정을 보호하고자 이루어진 제도, 법률의 신설이
아예 '가정'이라는 개념 자체를 변화시키고,
단순한 폭력의 방지 및 격리 목적의 조항들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결국 정부 주도의 실질적 이혼(state-imposed de facto divorce)으로까지 연결되는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꿰뚫는 저자의 시각이 사뭇 날카로운 흥미로운 책이지만
내용 외부적인 측면, 특히 마케팅/번역 등에 관련해서는 굉장히 불만히 많은 책이기도 하며
일반인이 가벼운 마음으로 펼칠 만한 책은 절대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다.
'낚여서' 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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