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관계이며, 소통이며,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며,
탈출이며, 존재의 증명이며, 해방이자 자유이며,
한편으로는 어둠이며, 죄악이며, 자해이며, 허무이며, 절망이며, 폭력이며,
파괴이자 자살행위인 것이다.'

'Mea Culpa
, Mea Culpa, Mea Maxima Culpa..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제 큰 탓이옵니다.)'

'K 스스로 판결을 내려도, 경범죄가 아닌 인륜의 금기를 깨는 중죄임에 분명하였다.
그런 중죄가 3,4분의 짧은 고백만으로,
'주의 기도'를 세 번 외우고 성경의 한 구절을 읽는 것으로 무죄가 될 수 있는가.
못은 빼도 못자리는 남는 것이 아닐까.
사제에게 한 고백만으로 죄가 용서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빠른 시간 안에 밀수품을 사고 파는 불법 거래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연상시키는 소설의 제목은, '낯익은 타인'을 주제로 하고 있다.
'낯섬'을 본질로 하는 타인에게서 '낯익음'이라는 단어를 수식시켜 일견 모순되는 듯한 제목이 암시하듯,
자아와 피아, 낯익음과 낯섬, 익숙함과 생소함을 넘나들며
요동치는 기억과 현실 속에 복잡한 전개 양상을 보인다.


하여튼 뭔가 작가의 의도가 잡힐듯 말듯 하면서,
나에게는 다소 읽기가 벅찬 소설이었다.
격한 비유와 섹스에 대한 묘사도 소화하기 꺼림칙했고,
극도의 혼란을 일으키는 전개 양상은 마지막에 당황스럽게 수습되는데, 
편한 말로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아직 문학적 수양과 성찰의 깊이가 얕아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대충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꼭 이렇게 써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불편한 책.


이 책이 최인호 작가에게는
등단 이후 처녀작 위주의 1기와, 역사/종교소설 위주의 2기를 넘은,
3기로 구분되는 현대소설 집필의 서막을 알리는 책이라는데,
나는 최인호씨의 역사소설을 감명깊게 봤던 사람으로써 다소 불편한 변화이긴 하다...


이 책에 대한 부족한 이해로 인해, 검색한 서평을 붙여넣으면서 의미를 부여해보며 마무리짓도록 하겠다.


 
뒤틀리고 붕괴된 현실의 틈새에서 발견한 진실 
;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조금 깊이 들여다보기


이 작품은 특이한 구조와 그로테스크한 작중인물의 설정, 환상주의와 사실주의를 넘나드는 이야기 전개만큼이나 다층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때문에 빠르게 읽히면서도 한편으로는 강한 여운을 남긴다.

1. ‘역할’로 점철된 현대인의 우울한 초상을 그리다
단란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모범적인 가장으로서, 의사 친구와 가깝게 지내며 번듯한 직업을 가진 사회인으로서, 스스로의 도덕적 결함을 견디지 못하는 제도적 인간으로서, 그리고 주일마다 미사에 반드시 참석하는 견실한 신앙인으로서 K는 생의 의무에 충실한 사람이다. 하지만 일상이 조작되고 현실에 균열이 생기며, 그로 인해 환상과 실재의 공간을 오가면서 K는 사실 조작된 것은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주변 세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는다. 그리고 급기야 처음에는 자신의 행세를 했을 것이라 믿었던 또 다른 ‘K’에게 순순히 ‘참 자아’의 자리를 내주고 만다. 자신이 쌓아온 견고한 삶이 생의 진짜 모습은 아니라는 깨달음 때문이다. 생은 때때로 허물어지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입기도 하는 것. 자신이 만든 견고한 삶은 하나의 무대에 지나지 않았으며, 거기에 ‘진짜 삶’은 없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K는 자신의 배역과 역할에 충실한 동안 정작 자신의 시간을 누리지 못하는 현대인의 ?습을 상징한다. 도덕적이고 합법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세상에 떳떳하다는 것은 인간 본연의 임무가 아니라 제도에 순응함으로써 갖게 된 스스로의 착각일 뿐이다. 그 단단할 것 같은 일상에 금이 가면서 K는 자신을 의심한다. 그리고 그 균열 속에서 그는 자신의 계획과는 다르게 진행된 또 다른 삶을 목격하는 것이다.

2. 일상과의 이별을 통해 본래의 자신을 회복하다
이 책의 발문을 쓴 소설가 김연수는 이 작품을 이해하는 독법의 열쇠를, 작가가 1972년에 발표한 단편 「타인의 방」에서 찾고 있다. 김연수는 「타인의 방」을 두고 쓴 문학평론가 남진우의 “그는 타자가 기획한 무대에 등장한 어릿광대이며 속임수에 빠진 가련한 희생자에 불과하다”라는 글을 인용하면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 K가 처한 상황 역시 왜곡되고 뒤틀리면서 일상의 공간이 비일상의 공간, 연극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본래의 우리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이 일상의 틈을 통해서다. K가 또 다른 자신을 만나는 순간은 지진의 균열이 일어날 때와 일치한다. 디디고 선 땅이 물렁해지는 이 의심의 순간은 진실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의심을 통해 만나게 되는 진실은 무엇일까? 그건 일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견고하지 않다는 사실이리라. (…) 현실은 언제든 그처럼 붕괴될 수 있다는 점, 그게 바로 진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거대한 별사(別辭)인 동시에 어떤 붕괴에 대한 보고서랄 수 있다.
_「발문」, 김연수(소설가)

그리고 이 작품 후반부에서 K는 월요일 아침 출근을 위해 지하철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면서 지난 이틀 동안의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인물들과 인사를 한다. 이 ‘거대한 작별의 장면’을 두고 김연수는 현실이 붕괴된 뒤 K 자신과 함께 사라질 현실의 꼭두각시들과 작별하는 의식이라고 말하면서, 이 모든 것과 작별한 뒤에야 우리는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밝힌다.

3. 현실의 균열 속에서 진실과 구원의 희망을 발견하다
이 책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작가가 성경 「탈출기」의 내용을 장치해놓은 것 역시 이 작품을 해석하는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이 모세에게 이르는 “나는 곧 나다”라는 말은 이 작품의 끄트머리에서 K가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K1’과 합체되는 장면과 연결되고 있다. K는 주말 이틀 동안의 카오스와 붕괴를 겪은 뒤 맞는 월요일 아침에 자신이 맡아온 배역의 캐릭터를 완전히 변화시키면서 ‘온전한 나’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것은 구체적인 세상과 현실과 일상에 오염되기 전, 창조주의 계획으로만 존재하던 ‘나’의 신성을 회복하는 순간이다. 작가는 수없이 많은 ‘나’들이 만든 세계를 무너뜨림으로써 ‘나’를 구원하는 희망의 전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을 어떤 시각과 관점으로 바라보든,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최근 작가에게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의 의도와는 별개로 논해야 할 화학적 반응의 결과물이다. 소설 속 주인공 K는 사흘 동안에 일어난 비현실적인 사건을 통해 변신한다. 세상의 잣대로는 비극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K의 결말은, 결말인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다. 작가 역시 어떤 이별을 통해 원점으로 회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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