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 쇼코의 미소

from 일상 2018. 8. 25. 14:15

쇼코의 미소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개인적으로 죽음, 특히 가족의 죽음이라는 소재는 다소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생의 끝자락에서 그와 주변인의 모든 감정은 극대화되기 마련이고, 참회와 회고로 가득찬 그 감정들은 너무나 익숙하다.  물론 쇼코의 미소에서는 쇼코-할아버지, 소유-할아버지, 쇼코-소유로 구성된 입체적인 관계에서 앞의 감정들을 조금은 다르게 조명하지만, 그래도, 익숙한 건 익숙한 거다.

아득바득 꾸역꾸역 살아 나가야 하는 우리네 삶은 얼마나 긴가.  삶의 어디를 조명할지는 작가의 자유지만, 그래도 생의 한가운데 서있는 나로서는 조금 더 앞부분을 비춰줬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그런 차원에서 나는 소유가 좇던 꿈이나 좌절과 관련된 부분이 더 인상적이었다.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아쉬운 점도 많은 소설이었지만 몇 가지 와닿았던 구절을 남겨 본다.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 길에서 나 또한 두려움 없이, 온전히 나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먼저 와서 실망했지"
쇼코는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아주 작게 열고 한숨을 쉬듯 했다.
"네가 그리웠어"
나는 쇼코가 조금 미워져서 나도 네가 보고 싶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그리웠었다는 그 말에 눈물이 났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애가 나를 어디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

사실 쇼코는 아무 사람도 아니었다. 당장 쇼코를 잃어버린다고 해도 내 일상이 달라질 수는 없었다.  쇼코는 내 고용인도 아니었고, 나와 일상을 공유하는 대학 동기도 아니었고, 가까운 동네 친구도 아니었다.  일상이라는 기계를 돌리는 단순한 톱니바퀴들 속에 쇼코는 끼지 못했다.  진심으로.

쇼코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쇼코에게 내가 어떤 의미이기를 바랐다.  쇼코가 내게 편지를 하지 않을 무렵부터 느꼈던 이상한 공허감.  쇼코에게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정신적인 허영심.



"불에 타다 만 발바닥"
"등이 꺼져버린 하이웨이 위의 가로등"
"썩었으되, 그것 뿐인 씨앗"
"발을 맞춰 걷지 못하는 군인"
"의욕 없는 독재자"
"전형의 반대말"
"그러나... 전형"
"이럴 줄 알았다는 말의 이상한 메아리"
"얼어죽기 전까지 바닥을 찍는 비둘기."
쇼코는 그림들과 그 제목을 다 소개한 후후에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 쇼코."



창작이 나에게 자유를 가져다 줄 것이고, 나로부터 나를 해방시킬 것이고, 내가 머무는 세계의 한계를 부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늘 돈에 쫓겼고, 학원 일과 과외 자리를 잡기 위해서 애를 썼으며 돈 문제에 지나치게 예민해졌다.
이미 직장에서 대리 급이 된 친구들과는 돈 씀씀이가 확연히 달라졌고 그 애들은 내가 밥값도 내지 못하게 했다.  친구들의 배려였지만, 그런 작은 일들 하나하나가 자존심을 긁었다.  직장에서 자리를 잡은 친구들은 주말이면 공연이나 영화를 보러 다녔고, 틈틈이 책을 읽었지만 나의 독서량은 그애들보다도 빈약했다.

반면, 영화를 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늘 들의 재능과 나의 재능을 비교하며 열등감에 휩싸였다. 영감은 고갈었고 매일 매일 괴물같은 자의식만 몸집을 키웠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알코올중독자가 된 감독 지망생과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패스트푸드점에서 하며 야근 수당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시나리오작가 지망생을 보며 내가 그들보다 낫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꿈은 죄였다, 아니 그건 꿈도 아니었다.

영화 일이 꿈이었다면, 그래서 내가 꿈을 좇았다면 나는 적어도 어느 부분에서는 보람을 느끼고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지 감독이 되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나 자신도 설득할 수 없는 영화에 타인의 마음이 움직이기를 바라는 건 착각이었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이미 죽어버린 지 오래였다.  나는 그저 영화판에서 비중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시나리오를 썼지만 이야기는 내 안에서부터 흐르지 않았고 그래서 작위적이었다.  쓰고 싶은 글이 있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써야 하기에 억지로 썼다.

꿈, 그것은 허영심, 공명심, 인정욕구, 복수심 같은 더러운 마음들을 뒤집어 쓴 얼룩덜룩한 허울에 불과했다.  꼬인 혀로 영화 없이는 살 수 없어, 영화는 정말 절실해,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제대로 풀리지 않는 욕망의 비린내를 맡았다.  내 욕망이 그들보다 더 컸으면 컸지 결코 더 작지 않았지만 나는 마치 이 일이 절실하지 않은 것 처럼 연기했다.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 마땅했다.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 간다.

나는 영화판에 발을 들여놓기 전 까지 친구라고 부르던 사람들을 거의 다 잃어갔다.  기다려준 친구들도 있지만 그림자를 먹고 자란 내 자의식은 그 친구들마저도 단죄했다.  연봉이 많은 남자와 결혼하는 친구는 볼 것도 없이 속물이었고, 직장생활서 서서히 영혼을 잃어간다고 고백하는 친구들 이해해주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고소하다고 생각했다.  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의 끔찍함에 놀랐으나 그 조차 오래가지는 못했다.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을 때가 많았고, 엄마와 할아버지를 찾아가지도 따로 전화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도 거리를 두면서 영화를 토통해 인간 내면의 깊은 곳을 그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오만이 그 사람들을 얼마나 쓸쓸하게 했을지 당시의 나는 몰랐다.



"너 말이다, 이런 말은 처음 해보는데."
"...."
"나는 네가 이렇게 큰 사람이 될 줄은 몰랐다. 서울에 가서 공부도 하고 영화감독도 되고. 힘든 대로 손 벌리지 않고 네 힘으로 살고. 까짓것 다 무시하면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지. 난 그거, 멋지다고 본다."


직장에 나간 엄마 대신 나를 업어 키운 그였다.  그의 돌봄으로 뼈와 살이 여물었고 피가 돌았다.  효도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나는 할아버지에 대한 부채감을 느꼈었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나는 그에게 해준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더 등을 돌리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평론)

남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 자기만의 개성과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거나, 다른 사람을 흉내냈다는 평가이다.  전통적 미학에서 가장 중요한 척도였던 아름다움과 추함 같은 것은 문제가 안 된다.  진부한 아름다움은 추함이 아니라 그 이하이고, 참신한 추함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이상이다.  그것이 전통적인 것과는 구별되는 현대적인 미의식이며, 비단 예술만이 아니라 상품이나 아이디어를 비롯, 일상적인 생활 감각의 수준에서도 통용되는 감각적 평가의 기준이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감각세계의 으뜸가는 척도인 것이다.


"이제 혼자"라는 쇼코의 말의 주어는 술어와 모순되는 "우리"였다.  역설적이지만 그런 역설을 각각의 방식으로 감당하는 것이 성숙한 유대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 수준에서라면 전이와 역전이는 수시로 교차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기댐과 기댐 받음이 수시로 교차하는 것, 즉 서로 기댐의 수준에서 마음의 흐름이 수시로 방향을 바꾸며 진동하는 모양새를 뜻한다.  둘 사이에 완벽한 일치란 존재할 수 없으니 정서의 낙차와 흐름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 낙차란 언제든 역전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물매 자체가 크지 않아 그 마음의 흐름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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