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出町座(데마치자)에서 본 첫 영화라서 기록하고 싶었음(2024. 6. 11.).
산책하다 정말 우연히 발견한 소중한 공간.

테니스장 + 콘서트홀 + 독립영화관이라는 완벽한 트라이앵글...
주거 만족도가 너무 높아서 오히려 다가올 미래가 불안한 하루하루.

이렇게 라멘 자판기 마냥 티켓을 끊고
→ 점원에게 보고싶은 영화를 말하면
→ 점원이 좌석배치도를 보여주고
→ 까만 마카로 표시되지 않은 남은 자리를 고르는(내가 자리를 고르면 마카칠을 하는),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극장도 울고 가실 아날로그 시스템.
화요일 할인 + 학생 할인(박사과정도 됨..) = 1,000엔.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는 드라이브 마이 카 이후 두 번째 영화.
데마치자에서 영화를 보는데 의의를 둬서, 사실 감독이 하마구치 류스케인 점은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하마구치 영화는 내 취향인듯 취향이 아닌듯. 와닿는 듯 불편한 듯.
나와 생각이 대체로 유사한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살짝 달랐을 때 느껴지는 큰 불편함(문제의식을 신나게 공유하다가, 마지막 해결 부분에서 작은 생각의 차이로 큰 결론이 달라졌을 때의 당혹스러움) 같은 게 느껴진다. 봉준호와 하마구치 류스케 모두 구로사와 아키라 팬이라는데, 그래서 그런가보다 싶기도.
그래도 아름다운 설경이나 비범했던 트래킹 신은 오래 기억에 남을듯. 촬영지는 나가노 현의 富士見町(후지미쵸) 인근이라 하는데, 내가 스키를 처음 배웠던 白樺湖(시라카바호) 인근이라 괜히 친근감이 들었다. 일본의 스산한 듯 장엄한 대자연은 언제나 경이롭다.
요새 들어 유난히 현학적이라 느껴지는 평론들이지만, 이런 류의 영화는 평론을 읽는 단계에서 비로소 앞뒤가 연결되는 부분이 많아서 읽지 않을 수 없다(그걸 경험적으로 알기에, 농담같이 툭툭 던지는 대사 하나하나나, 소소한 클로즈업 신에서도 계속 긴장을 해야 되서 불편함이 가중되는 듯도 하다). 내용이든 표현이든 심미적인 요소든 와닿았던 것들을 옮기며 기록을 마무리.
- (이 영화는) 시와 산문 사이에서 멈춘다(김혜리).
- 자연과 인간을 매개하는 심부름꾼은 자연에 매혹당한 (혹은 부지불식간에 자연을 희롱한) 개발사 직원을 산제물로 삼는다. 심부름꾼은 우리의 기대를 기꺼이 배반하고 마치 동아시아의 무당처럼 행동한다. 여직원은 자연의 경고를 받고 인간의 영역으로 돌아가 제 생명을 보전한데 반해, 남직원은 그 잔혹함에 매혹되고 선을 넘었기에 그에 따른 처분을 받은 것 아닐까. 영화는 인간이 자연에 밑도 끝도 없이 다가서는 행태를 재고하게 한다. 나아가 자연을 막연한 숭배나 숭고의 대상이란 미명으로 길들인 조연이 아니라, 엄연한 주연으로서 등장시킨다. (중략)
총에 맞은 사슴을 하나가 마주하고 있다. 하나의 시선에서 사슴을 바라보는 숏, 그 뒤 사슴의 몸 숏. 사슴은 총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다. 사슴의 시선에서 하나를 바라보는 숏. 하나는 모자를 벗는다. 카메라는 이 순간에도 사슴과 하나 각각의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본다.
특히 사슴이 하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숏은 타쿠미가 타카하시를 똑바로 바라보는 숏과 일맥상통한다. 하나가 영화 내내 무해해 보일 정도의 태도로 숲속을 돌아다녔어도 그는 자연 그 자체와 하나가 될 수 없다. 그것은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것과 같이 분명한 사실이다. 결국 총을 빗맞은 사슴은 자연과 하나될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하나를 공격할 수 밖에 없다. 감히 그 양자 사이에서 균형을 말했던 자신의 오만을, 타쿠미는 자신이 타카하시를 바라보았던 것과 똑같은 눈으로 하나를, 어쩌면 자신을 바라본 사슴의 눈에서 발견한다. 결국 타쿠미는 자신의 오만하고도 혐오스러운 모습을 고스란히 비추어 보이는 거울인 타카하시를 살해할 수 밖에, 아니 그렇게 자신의 분신을 죽여 자살할 수 밖에 없다(sirokryu).
-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엔 영화 보는 즐거움은 없을지 몰라도 영화를 알아가는 기쁨이 있다. (중략)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편하게 즐길 수 없다. (중략) 뒤집어 엎었다고 해도 될 정도로 크게 요동치는 마지막 대목에서는 누구나 충격을 받겠지만 혼란 이상의 감상을 느끼지 못할 관객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 미니멀한 촬영 방식이, 끝나기 직전까지 평평하기만 하던 그 플롯이, 그리고 그 갑작스럽게 폭주하는 그 엔딩이, 대단할 게 없어 보이는 그 대화들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비범함이다. 하마구치 감독은 편하지 않은 고요함으로 관객을 서서히 잠식해 들어간다. 하늘에 균열이 생긴 듯한 나뭇가지의 행렬은 단순하나 불길하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카메라의 시선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마음에 잔상을 남기고, 저 미동도 없이 얼어 붙은 호수는 예사롭지 않다. 멀리서 들려온 총성이나 날카로운 가시나무는 어떤가. 그리고 한 치 빈틈이 안 보이는 저 대사들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파문을 머릿속에 만들어 놓고 있지 않나. 그리고 나서 영화는 보란 듯이 폭발해 버린다(손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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