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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일상 2016. 11. 13. 10:28

한밭, 그 너른 들에서

나를 표시하는 몇 개의 숫자들과 더불어 산다
간혹 집 전화번호나 통장 비밀번호 같은 것을 잊고서
청어 대가리처럼 어리둥절해 한다
먼 도시의 지인들 사이에 떠도는
나에 대한 소문들을 듣기도 한다
소문에서 나는 무엇에 대단히 화가 나 있거나
누구를 아주 미워한다 행복한 가장이 되어
세월을 잊고 세상일마저 모른 채 지낸다고도 한다
소문만으로도 내 근황이 충분하므로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비듯 일없이 달력이나 넘겨본다
아무 징조도 없이 계절이 바뀌고 그러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하려는데 문득
자동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이 너른 들판 어디쯤에선가 나도
그렇게 시동이 꺼질 것이다
갑작스레 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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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떠도는 ''는 얼마나 우습고 헛된 것들인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당신들이 잘못 알았다고 손사래를 치는 일 또한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런데 그쯤에서 나의 삼엄한 진실을 만난다. 어느 날 문득 자동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날아오는 돌멩이를 맞은 듯 띵 해진다. 내가 누군지 이렇게 헷갈리는 사이, 갑자기 시동 꺼지듯 삶이 멎을 것이다. 이 고독한 생의 인식을 대면하는 일만으로도, 이 시는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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