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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일상 2017. 5. 24. 12:24

연애할 때와는 달리 결혼이 주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결혼을 통해서 한 시대를 마무리 짓고 성장하고 싶었어요. 연애를 할 때는 상대가 내가 싫어하는 일을 하면 그냥 밀어내서 헤어져버릴 수 있지만 결혼은 그렇지 않잖아요. 여러 가지 대응 방식을 취하게 되죠. 설득을 해서 푼다든지, 나도 똑같이 화를 낸다든지, 참는다든지, 그냥 웃어준다든지, 다양한 방식들이 있죠. 저는 쉽게 헤어질 수 없는 울타리가 사람의 성장을 담보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건 본능이니까,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그냥 헤어져버리고 말잖아요. 새로 연애를 시작하는 좋은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으니까요. 그런데 아무리 연애를 해도 사람 간에 나누는 감정은 비슷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를 새로운 틀 속에 넣어보기로 한 거죠. 


이십 대에 행복하지만은 않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기억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어떻게 보면 저의 이십 대가 한국사회의 성과주의에 희생된 것 같기도 해요. 성과주의의 특성은 아무리 해도 더 해야 된다는 거잖아요. 겉에서 보기에 저는 학력도 나쁘지 않고 밴드도 잘 되고 있었는데도, 그런 걸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기 힘들었어요.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그건 끝이 없거든요. 성과주의의 특성은 현실에서 내가 어떤 것을 이루었든 얼마나 열심히 했든 상관없이 더 뽑아내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그게 지금 십 대 이십 대의 자살률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성적 때문에 죽는다는 게 진짜 문제가 아니라, 뼛속까지 스며들어있는 더 잘해야 된다는 강박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거라고 생각돼요. 그걸 공감해주는 사람이 없었겠죠.


‘이만큼 했으면 됐다’는 생각을 갖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고, 그럴 시간에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있는 거죠.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노래를 아무리 해도 할수록 더 힘들어요. 노래를 100번 1000번 부르는 동안 어떻게 항상 그 감정 속에 있을 수 있겠어요. 그런데 노래 부를 때는 그렇게 해야 되거든요. 가끔씩은 관객들이 나를 평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죠. 아무리 해도 관객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거든요.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에서 이야기한 평범한 불행이라는 건, 평범한 것이라기보다는 만연되어 있는 불행이라고 생각해요. ‘의식주도 풍족하고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도 왜 불행한가’라는 생각말이죠. 뭔가 공허한 거죠.



그 이유가 뭘까요?


심리학에서는 결핍을 삶의 추동력으로 삼았던 부모 세대가 자식들에게 ‘더 해야 된다’는 콤플렉스를 물려줬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방식은 그 자녀의 자녀에게까지 이어지고, 콤플렉스도 대물림 된대요. 아래 세대로 내려올수록 콤플렉스는 더 심해지고요. 그런데 부모 세대에게는 ‘더 해야 된다’는 콤플렉스를 가져야 할 이유가 있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 죽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자녀들은 그렇게 해야 할 이유도 없는데 콤플렉스만 남아있는 거예요. 제가 생각하는 평범한 불행이라는 건 그런 종류의 불행이었던 것 같아요. 어딘가 부족하다, 더 잘해야 될 것 같다, 그런 생각으로 인해서 겪게 되는 것들이죠.


어떤 노래로 기억되는 뮤지션이 되고 싶으세요?


앨범을 낼 때 어떤 사람이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마찬가지로 책도 어떤 사람이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어쩌면 처음부터 뮤지션을 목표로 삼았던 게 아니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다 보니까 뮤지션이 된 거고, 그래서 더 목표가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책 역시 어떤 목표 지점을 두고서 쓴 게 아니거든요. 자연스럽게 흘러서 분량이 쌓이니까 출간하게 된 거예요. 가을방학 앨범이랑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거거든요.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목표는 없었어요. 어떤 음악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마음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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