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숙사 배정

예정보다 하루 늦은 8/23(수) 점심 무렵 발표되었고, 1지망 슈가쿠인(2인실) 당첨!

[기본 설비]
- 냉난방 설비와 급탕 설비
- 인터넷 회선 설비(LAN)
- IH 쿠킹히터
- 냉장고
- 전자레인지
- 세탁기
- 욕조
- 화장실, 침대, 침구 및 가구류

[방 구조]

[공용시설]
- 도서관, 담화실
- 세탁실(건조기 30분 100엔)

[숙박요금]
- 수도세, 인터넷 사용료, 침구 렌탈료 포함
- 전기세 불포함
- 입관시 11,000엔 별도 지불(1회차 숙박료와 함께 청구)
※ 슈가쿠인 전화번호(075-712-9300)

2. 대사관 OT 참석

- 4월 도일자들과 함께 OT 받았던 내용과 대부분 동일.  10월 도일자의 경우 꼭 두번 다  갈 필요는 없음, 단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과 네트워킹 가능하다는 장점은 있음
- 다들 친절하시고, 경험담 나눠주셔서 좋았음.  일본이 생소한 사람들에겐 꿀팁이 많았음
- 일본 도착하면 재류카드 / 계좌 개설 / 건강보험 관련 행정 처리가 급선무
- 교수님께 드릴 선물 챙기기

일이 끝나지/끊기지 않아서, 일본행 비행기 타야 비로소 실감이 나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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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4) - 항공권 수령

from 京都 2023. 8. 20. 12:22

대사관에서 유학 의지에 대한 최종 확인을 구하면서, "각 해당 배치 대학에 출국일  귀국일을 문의하여 작성할 것"이라고 안내하였다.  출국일 결정 및 항공권 발권이 각 대학에서 진행되는 것인 줄 알고,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는 등 다소 간의 혼선이 있었다.

결론만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비행기 표는 대사관에서 발급하여 메일로 보내줌.  각 학교에 먼저 문의할 필요는 없음
- 10월 도일자 기준으로 8월 16일에 항공권을 수령하였고, 출국일자는 9월 25일(월)임
개강이 10월 2일(월)인 점을 고려하면, 개강일 기준 (i) 발권은 대략 1개월 반 전, (ii) 출국은 1주일 전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음
- 의외로 아시아나를 발권받았고, 아침 이른 시간 인천에서 출발하는 비행기임

출국 일정이 확정되니 좀 더 실감이 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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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안희연

 

온전히 나를 잃어버리기 위해 걸어갔다

언덕이라 쓰고 그것을 믿으면

 

예상치 못한 언덕이 펼쳐졌다

그날도 언덕을 걷고 있었다

 

비교적 완만한 기울기

적당한 햇살

가호를 받고 있다는 기쁨 속에서

 

한참 걷다보니 움푹 파인 곳이 나타났다

고개를 들자 사방이 물웅덩이였다

 

나는 언덕의 기분을 살폈다

이렇게 많은 물웅덩이를 거느린 삶이라니

발이 푹푹 빠지는 여름이라니

무엇이 너를 이렇게 만든 거니

 

언덕은 울상을 하고서

얼마 전부터 흰토끼 한마리가 보이질

않는다 했다

 

그뒤론 계속 내리막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밤이 왔다

 

언덕은 자신에게

아직 토끼가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지만

 

고요 다음은 반드시 폭풍우라는 사실

여름은 모든 것을 불태우기 위해 존재하는

계절이라는 사실도

모르지 않았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토끼일까

쫓기듯 쫓으며

나는 무수한 언덕 가운데

왜 하필 이곳이어야 했는지를 생각했다

 

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시간은

반으로 접힌다

펼쳐보면 다른 풍경이 되어 있다

 

서울을 빗겨간 폭우가 야속할 만큼, 여전히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흐르고 있는 삶...

빨리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왔으면 하는 마음과, 여름을 계속 살아내야 한다는 생각,
그만 불태우고 싶다는 애처로움과, 아직 불태울 것이 남았다(더 불태울 수 있다)는 자존심, 
가을의 선선함에 대한 동경과, 혹여 선선함을 넘은 추위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

이제 날 그만 놓아달라고 늘 생각하지만, 정작 내가 놓지 못하고 있는 모습.  아무도 붙잡지 않았음.

다른 책에 대한 것이긴 하나, Yes24 인터뷰에서 발췌(https://ch.yes24.com/Article/View/54125).
(외람되오나) 결이 비슷한 분이듯..?

지난해 <책읽아웃-황정은의 야심한책>에 출연하셨죠. 그때도 느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시인님은 참 '애쓰며' 사람을 대하시는 것 같아요. 

맞는 것 같아요. 가끔은 그게 스스로도 힘들다고 느껴질 때가 있고 '애쓰지 말자'를 한해 목표로 세울 때도 있는데요. 만난 그 순간에 진심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 수도 있고요. 시간을 들여서 초대해 주시고 만남의 자리를 만들어주신 것에 진짜 너무 감사함을 느껴서, 그 순간만큼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관계에 있어서도 애쓰는 편인 것 같고요.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예요. 한 편의 글을 쓸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주어진 시간 동안은 에너지를 탕진하듯이 쏟아내는 게 습관이 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서 에너지를 비축해요.

글쓰기는 평생 지속해야 하는 작업이니까 '이렇게까지 전력을 다하면 내가 오래 버티지 못할 거야, 힘을 덜 쓰려는 노력을 해야 돼'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당연히 있고요. 지금도 그 거리 조절을 잘 못해서 글 쓰고 나면 한 2~3일 동안 되게 힘들 때도 많아요. 특히, 이번 책에 있는 이야기를 쓸 때 그랬어요. 그냥 가볍게 일상을 스케치한다고 생각하고 접근했으면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요. 자꾸만 저는 '어떤 이야기를 쓸 것인가'를 생각할 때 제 기억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서 재료를 얻으려고 하는 거예요. 

특히, (이번 책에서) 할머니 관련된 꼭지를 쓰고 나서 한 달 동안 글을 못 썼어요. 사실 세 달 정도 걸려서 쓴 글이었는데, 한 문장을 쓰면 눈물이 나고 또 한 문장을 쓰면 눈물이 나니까 '이건 정말 내가 존재를 걸고 쓰는 거구나, 어쨌든 시작했으니 끝을 맺어야 한다' 이런 마음이었어요. 어떻게든 완결을 하는 것이 목표는 아니었어요. 미로 같은 길을 걸어서라도 가장 진실하게 써야 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약속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떤 글이든 제 삶의 조각들이 담기기 때문에, 글 쓰고 난 뒤에 겪게 되는 여운은 늘 있는 것 같아요. 그건 제가 감당해야 되는 몫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쓰는 것 같아요.

힘을 빼고 쓰려 해도 도저히 안 되는 글이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대신에 일상에서 균형을 찾으려고 애쓰기는 해요. 혼자 산책 많이 하고요. 여유가 있을 때는 동네 엄청 잘 돌아다니고, 지하철 세 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까지 걸어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오고, 많이 걸으면서 덜어내려고 해요. 그래야 또 앉아서 고요하게 몰두할 수 있는 힘이 생기니까. 균형을 맞추려고 나름 애를 많이 쓰는데요. 그래서 사람들이 항상 놀라요. 글에서 보는 제 얼굴하고 실제로 만났을 때의 얼굴이 되게 다르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거든요. 잘 웃고 말수도 많다고 해요. 제 글에서 말도 잘 안 하고 되게 침울할 것 같은 인상을 많이 받으시나 봐요.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서 인지부조화를 느끼시는 분들도 있어요.(웃음)

다정한 사람이니까 골짜기도 품고 있는 것 아닐까요? 골짜기가 있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다정한 것이고요. 

맞는 것 같아요. 사람을 만날 때 반가움을 느낄 수도 있고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어떤 사람이든 만나면 애처로움을 먼저 느껴요. 이 사람이 이렇게 살아있음이 감격스럽고 되게 애처롭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그리고 저한테는 그 사람이 혼자 방에서 등 돌리고 앉아 있을 때의 표정 같은 것, 그 '등뼈'를 상상하는 버릇이 있어요. 그래서 항상 애처롭고 안쓰러워하고...

'어쩌면 부엉이들이 나의 입을 빌려 말하고 싶은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제가 오해하는 걸 수도 있어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서 입을 지운 채로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모든 존재는 그 모양 그대로 세상에 나타난 이유가 있을 테니까. 그런데 저는 입이 없는 그 존재들이 '백지라는 무기'를 가진 제가 그 안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지 감시하는 존재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제가 엄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붙잡아주고 더 진실한 이야기를 쓰게 하는 파수꾼 같은, 저한테는 부엉이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아주 날카로운 발톱을 가지고 입이 없는 채로 나뭇가지에 매달려서 밤이라는 시간 내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응시하고 있는 거예요. 그 눈빛을 저는 모른 척할 수 없고, (부엉이는) 제 안의 가장 진실한 밤의 세계로 갈 수 있게 도와주는 거죠. 저를 망치러 온 구원자 같은 느낌이에요.

'나무뿌리'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어김없이 넘어지곤 하는 나무뿌리가 있죠. 시인님의 나무뿌리는 어떤 건가요?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 앞에서는 번번이 넘어져요. '죽음'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통과 중인 사람들의 얼굴은 제가 귀신같이 알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뭐랄까요... 어떤 부재를 경험해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저의 나무뿌리인 것 같기는 해요. 모른 척하기가 많이 어렵고요. 그럴 때는 사람들의 신발 같은 걸 되게 유심히 보거든요. 

시인님의 눈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어떤 인상을 받으면 좋으시겠어요?

얘 너무 투명하다.(웃음) 송사리가 살 것 같은 1급수다.(웃음) 저는 맑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해 줄 때 극찬을 받은 것처럼 기쁜 마음이 되는 것 같아요. 글도 그래요. 너무 투명해서 핏줄이 다 들여다보이는 피부 있잖아요, 제 글이 그랬으면 좋겠어요. 맑음에 대한 갈망이 좀 있는 것 같아요.

맑은 사람이 되는 건 정말 어려운 일 같아요. 

안에 가라앉은 게 많아야 맑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한테는 이게 수련이에요. 진흙을 가라앉혀야 눈이 맑아지니까.

생채기라든지 티끌이라든지, 그런 게 없어야 맑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전혀요, 전혀. 나뭇가지도 많이 가라앉아 있고 돌덩이도 가라앉아 있고, 그래야 윗물이 맑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려면 견디기도 해야겠네요.

그럼요. 몰라서 맑은 게 아니라 알아서 맑은 거 있잖아요.

에필로그에 이렇게 쓰셨어요. "저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그러니 이제 가세요, 당신의 기억으로." 이야기의 바통을 '당신'에게 넘겨주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책이 꼭 직접적인 효용성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그 시간을 즐겁게 재미있게 보내는 것만으로도 책은 충분히 그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적어도 이 책만큼은 그 시간을 보낸 뒤에 연결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독자들이 자신이 가야 될 방향이나 자신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연결이요. 각자의 기억을 돌이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 기억은 제가 갈 수 없는 곳이거든요. 

이 책은 금방 읽혔으면 좋겠고, 독자 분들의 기억이 가지고 있는 커다란 세계 안으로 들어가셨으면 좋겠어요. 그곳에 테이블을 놓으시고 가장 먼저 어떤 음식이 떠오르는지, 나한테 가장 내밀하게 또는 의미 있게 남아 있는 사물이나 경험은 무엇인지, 그걸 찾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 강했어요. 진짜 제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고, 도움닫기 판 같은 것이고요. 독자 분들이 각자의 뜀틀을 넘어서 각자의 기억의 세계로 점프해 가시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아래는 인터파크 북DB 인터뷰(https://brunch.co.kr/@bookdb/1354) 중 발췌.

Q “슬프다가 막막하다가 텅 비었다가 잠시, 반짝인다.” 이 시집에 대한 제 소감입니다. 이 막막한 슬픔 속에서 ‘잠시 반짝이는 것’의 정체는 바로 ‘옆’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이 시집을 묶으면서 단 하나의 바람이 있었다면 ‘독자들을 먹먹함 속으로 끌고 들어가고 싶다’는 거였어요. 읽었을 때 먹먹해지는 시. 막 시끄럽다가 갑자기 귀가 잘 안 들리는 것 같고, 울컥하고, 마음의 막다른 곳에 탁 도착해서 멈추게 하는 시를 쓰고 싶었어요.

‘옆’이라는 곳은 눈앞에 없는 사람의 자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부재는 없는 게 아니라 없음으로 존재하는 것인데, ‘옆’이란 그런 의미에 가깝다는 생각이에요. 이미 흩어지고 사라져버린 것들에게 자리를 주고 싶다는 의미. 하지만 다양하게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연대의 의미로 읽어도 좋을 것 같고, 무수한 ‘나’의 모습으로 봐도 좋을 것 같고, 죽음의 자리로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Q ‘삶이 보이는 창’ 2017년 봄호에 김중일 시인이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서평을 써주셨더라고요. 제가 본 여러 서평들 중에서 그 글이 가장 좋았습니다. 호평 속에 한 가지 조언도 있던데요,  “첨예하게 잡아가는 감각의 균형은 그의 뚜렷한 장점이다. 다만 예술의 아름다움은 대칭과 균형에서 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차라리 한쪽이 심하게 허물어진 먼지투성이 폐허 속에서 그것은 자주 발견된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떠세요? 평소에도 생각하고 있던 부분인가요?

정말 애정 어린 조언이네요. 저도 굉장히 동감하고 노력하고 있어요. 제 시가 ‘착한 절망’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너무 착하고 너무 올바르다는 거죠. 처음에는 속상했어요. 그때는 시를 예쁘게 잘 쌓아올리는 것에 심혈을 많이 기울였거든요. 그게 시를 쓰면서 힘들었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요즘에는 좀 못나 보여도 못남을 인정해주려고, 결벽을 버리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매끄럽게 쓰는 것보다 오히려 못나서 사람 마음을 건드리는 것들을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Q 안희연 시인에게 시의 촉매는 뭔가요? 무엇이 시를 시인의 밖으로 나오게 하는지.

부끄러움이에요. 인간은 부끄러움을 잃어버리면 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부끄러움은 인간에게 최후의 보루 같은 것이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한 그나마 제 삶을 책임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에 대한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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