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리 - 숲

from 음악 2024. 9. 24. 21:32

어렵게 찾은 고요가 깨지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과분한 행복 뒤에는 어김없이 지옥 같은 순간이 찾아왔다.  최선을 다할 기회 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만, 결국 착각 속에 머무르고 싶던 나의 욕심일 뿐.  그게 진심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었을지 반문해 보지만, 결국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나의 이기심일 뿐.  온갖 고통에는 꽤나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겪어본 적 없는 일교차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것 외에 답이 없었다.  소중한 사람과 행복해지고 싶다는 평범한 소망은, 이토록 어렵다.  나에게 주어진 온갖 과분한 행운들의 반대급부이겠지만, 왜, 지금, 하필, 가장 간절한 것을 떠나 보내야 하는가.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과,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뒤엉켜 버겁던 불면의 밤.  길고 힘든 밤들이었지만, 시간은 앞을 향해 직선으로 흐르므로, 어김없이 아침이 왔다.  유달리 푸르던 가을 하늘에 실려 돌아와, 5번 출구 너머 나를 맞이한 푸른 공원, 절로 미소짓게 하는 맑은 공기, 커다란 안도감, 그보다 더 큰 상실감, 허망함.

어떻게든 집안을 정리하고, 551 Horai에서 사온 슈마이로 저녁을 떼우고(놀랍게도 맛있었다....!), 5km를 천천히 뛴 후, 씻고 스피커를 켰다.  도저히 밖에서 음악을 들을 엄두가 나지 않아 자제하고 있었는데, 하루 종일 머리속을 맴돈 노래가 최유리의 숲이다.  "나를 베어도 돼 날 지나치지 마 날 보아줘" "아 숲이 아닌 바다이던가" "난 저기 숲이 돼볼래 나의 옷이 다 눈물에 젖는대도" "아 바다라고 했던가 그럼 내 눈물 모두 버릴 수 있나"

난 저기 숲이 돼볼게
너는 자그맣기만 한 언덕 위를
오르며 날 바라볼래
나의 작은 마음 한구석이어도 돼

길을 터 보일게 나를 베어도 돼
날 지나치지 마 날 보아줘
나는 널 들을게 이젠 말해도 돼
날 보며

아 숲이 아닌 바다이던가
옆엔 높은 나무가 있길래
하나라도 분명히 하고파 난 이제
물에 가라앉으려나

난 저기 숲이 돼볼래
나의 옷이 다 눈물에 젖는대도
아 바다라고 했던가
그럼 내 눈물 모두 버릴 수 있나

길을 터 보일게 나를 베어도 돼
날 밀어내지 마 날 네게 둬
나는 내가 보여 난 항상 나를 봐
내가 늘 이래

아 숲이 아닌 바다이던가
옆엔 높은 나무가 있길래
하나라도 분명히 하고파 난 이제
물에 가라앉으려나

나의 눈물 모아 바다로만
흘려보내 나를 다 감추면
기억할게 내가 뭍에 나와있어
그때 난 숲이려나

 

홍이삭 커버.  절대 안울거라고, 눈물 흘린 후에 찾아오는 후련함에 기대지 않을 거라고 꾹꾹 누르며 다짐했지만, 결국 펑펑 ㅠㅠ

전체 영상도 너무 좋다.

"작은 언덕에만 올라도 너에게 내 작은 마음을 보일 수 있는 숲이 되고자 했다. 나를 베어서라도 눈물 바다가 되더라도 길을 터주어 너의 눈길을 잡으려 했다. 그런데도 옆에는 훨씬 높은 나무가 아직 있었고. 너보다 항상 낮은 곳에 있는 내가 보였다. 깊은 눈물과 고민 끝에 이제 가장 낮은 곳에 가라앉기로 했다. 그제서야 내가 숲이 아니라 바다라는 것을 알았다. 내 눈물은 바다 아래로 능히 감춰진다. 비로소 난 그때 뭍에 나와서 너에게 숲이 되었다."

"나는 숲이 되고 싶은 바다인가봐.  상대방에게 내 마음 속에 머물러달라고 하면서 숲이 되보겠다 했는데, 정작 '나'도 몰랐던 나의 깊은 바다ㅜㅜ 나무가 있어서 숲인 줄 알았는데, 숲이 되고 싶기에 바다 어딘가에 나무 하나가 심어져있었고 그 마저도 가라앉을까 불안한, 어떤이의 쉼이 되고 기댐이 되어줄 사람이려 했는데 '나'도 마음이 힘들었어 ㅜㅜ"

"‘나'는 상대방이 나에게 기댈 수 있게끔 그늘이 되어줄 수 있는 '숲'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나'는 눈물이 많은 '바다'같은 사람이라 그렇지 못한다.  눈물을 바다로만 흘려보내 나를 다 감추면 그땐 난 뭍에 나와서 숲이 될 수 있진 않을까? 그땐 당신이 내게 기댔으면 좋겠다."

아, 이 와중에도 혹시 모를 어떠한 미래를 위해 저당잡힌 현재의 굴레 속에서 회신할 메일이 산더미이다.  이럴 때 일수록 더 성의있게 더 꼼꼼하게 더 잘해야 된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 무너져 내리더라도, 내가 지킬 수 있는 것은 어떻게든 이겨내야 한다.  충분히 토로했으니 이젠 눈물을 닦고 일어나야 해, 울며 주저앉는다고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내일도 하늘은 푸르고 맑을 거야.  언젠간 이 노래를 들어도 슬픔 대신 숲의 청량감만 번져오는 날도 올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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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 9월 / 겨울잠

from 일상 2024. 9. 14. 22:31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9월이 정말이지 우당탕탕 흘러가고 있다.

그 와중에 혼자 몸을 갈아서 무사히 이사를 마친 나를 칭찬하며, 가스토에서 늦은 저녁(피자+샐러드+와인) 중.
선뜻 도움을 줄 여러 얼굴들이 떠올랐지만, 가뜩이나 도움 요청하는걸 어려워하는 나인데 나이까지 어린 동생들이라 ㅠㅠ 차마 도와달라 하지 못했다.  이사하는 내내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는 말을 떠올리며 크게 후회했지만, 또 막상 꾸역꾸역/우당탕탕/바타바타 해내는 건 나의 30대 그 자체 ㅠㅠ

그 사이에 잡다하게 해야 할 일이 너무 쌓여 버렸다.

~9/16(월) 스크립트 확인, 9/18(수) 미팅 이건 정말 나한테 부탁하면 안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심호흡 열 번 하고 수락했다.  상황 다 이해하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것.  나는 이런 선배가 되지 않을 것임을 굳게 다짐.
~9/18(수) 일본 법제 조사 → 실로 오래간만에 하는 공익 업무.  수 년을 가라로 하고, 급기야 막판엔 마지막 보루까지 무너져서(기부금으로 공익시간 채우기) 양심의 가책을 많이 느끼던 차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9/20(금) 심포지엄 발제문 번역 → 가급적 18(수)까지 마무리.  내가 생각한 적정한 수준에서 접점이 생긴 것 같아서 기분좋은 스타트! 그나저나 논문 보내달라는 분이 종종 계신데, 다음에는 꼭 더 잘 쓸 것을 다짐해 본다 읽을수록 부끄럽다 ㅠㅠ
~9/22(일) 일시정지 관련 외국 문헌 조사 야마다 교수님이 1:1 면담에서 자그마치 3시간이나 내주시며 모든 개별 논점을 함께 훑는 기회를 주셔서 너무 황송하고 감사했다.  함께 토의하면서 본인도 위원회 참석이 더 즐거워졌다고 말씀해 주시는 스윗함까지 ㅠㅠ 이번 생에서 인복은 어딜 가도 패시브로 따라오는 것 같아서 너무 행복하고 보답하고 싶음!
~9/23(월) 면담 → 이것도 솔직히 선 넘었지 ㅠㅠ..........................................
~9/30(월) MBE Lecture 끝, 9월 초까지 overachieve하면서 흐름 좋았는데 끊어져서 아쉽.  Contracts랑 Tort는 비교적 수월했고 Criminal Law도 그냥저냥 할만하다고 느낌.  왠지 남은 과목들이 다 헬일 것만 같다.  시험 일정은 remote 응시 가능하면 내년 2월, 불가능하면 내년 7월로 확정
~2학기 일정 관련 교수님 면담 / 재택 연수 관련 N사무소 협의.  조건은 상관없으니 업무량이 적정하길 ㅠㅠ

사실 의도적으로 일을 벌린 부분도 있다.  어떤 방면에서든 결핍이 생기면 나를 채찍질하는 방향으로 해결하는 방법 외에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계속 바쁘게 몰아치면서 특정 감정에 잠길 여유를 주지 않는 것 외에 어떤 수가 있을까.

그러다가 텐가차야까지 소파 전자렌지 받으러 편도 80km를 운전하던 중 흘러나온 노래에 또르르.. 아이유 조각집 앨범 진짜 들을수록 좋다. 

 

때 이른 봄 몇 송이 꺾어다
너의 방 문 앞에 두었어
긴 잠 실컷 자고 나오면
그때쯤엔 예쁘게 피어 있겠다

별 띄운 여름 한 컵 따라다
너의 머리맡에 두었어
금세 다 녹아버릴 텐데
너는 아직 혼자 쉬고 싶은가 봐

너 없이 보는 첫 봄이 여름이
괜히 왜 이렇게 예쁘니
다 가기 전에 널 보여줘야 하는데
음 꼭 봐야 하는데

내게 기대어 조각잠을 자던
그 모습 그대로 잠들었구나
무슨 꿈을 꾸니
깨어나면 이야기해 줄 거지
언제나의 아침처럼 음

빼곡한 가을 한 장 접어다
너의 우체통에 넣었어
가장 좋았던 문장 아래 밑줄 그어
나 만나면 읽어줄래

새하얀 겨울 한 숨 속에다
나의 혼잣말을 담았어
줄곧 잘 참아내다가도
가끔은 철없이 보고 싶어

새삼 차가운 연말의 공기가
뼈 틈 사이사이 시려와
움츠려 있을 너의 그 마른 어깨를
꼭 안아줘야 하는데

내게 기대어 조각잠을 자던
그 모습 그대로 잠들었구나
무슨 꿈을 꾸니
깨어나면 이야기해 줄 거지
언제나의 아침처럼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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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거 전부 다 할 수 있을까, 이게 맞는 방향일까, 불안과 의심이 그늘을 드리울 때 찾게 되는 곡.  

평소에 조성진 (세간의 선호도에 비해)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이 라이브는 너무 완벽하다.

이와 대비되는 해석으로 최형록 버전도 매우 인상적인데, 내가 느낀 막연한 뭉클함을 탁월하게 표현한 댓글과 함께 공유.

32:49부터


이건 폴로네이즈 출판 당시 조르주 상드의 감상.

"L'inspiration! La force! La vigueur! Il est indéniable qu'un tel esprit doit être présent dans la Révolution française. Désormais cette polonaise devrait être un symbole, un symbole héroïque!"
"영감! 힘! 활기! 프랑스 혁명에서 보여지는 영혼같이 의심의 여지가 없어. 지금부터 이 폴로네즈는 상징이 되어야 해, 영웅적인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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