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방전된 것 같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개강은 여전히 설레지만 역대급 방학을 보내면서 심신이 너무 지쳐있다.
하지만 바보같은 2학기를 5주간의 인턴 강행군을 기획부터 실행까지 최악의 로드였던 일본연수를 거치며 느낀 점은 다음학기만큼은 어떻게든 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행복과 삶의 균형이라는 달콤한 말들로 나를 풀어준 결과가 이것이다. 정말 공부하다 죽는한이 있더라도 쓰러져서 휴학하는 한이 있더라도 다음학기는 반드시 후회가 없어야 된다. 나도 훌륭한 법조인이 될 수 있다는걸 지난 8년간이 total waste가 아니었다는 것을 반드시 입증할 것이다. 바보같을 정도로 우직하게 공부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을 난 고3때 이미 배우지 않았는가. 그땐 참 불행하고 매일 잿빛인 일상이었지만 그때의 내가 있기에 지금까지 즐거웠다. 딱 한학기다. 반드시 이기자.
문득 변호사는 '외롭지는 않은'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되었든 내가 편들어야 할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은 내 편인 거니까.
매사 옳고 그름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가운데 선을 넘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항상 고민이 된다. 한쪽으로 기울었을 때 최선을 다하는 것은 역량의 문제이므로 내 노력으로 해결될 터인데... 항상 그 판단의 기준점이 문제가 되고 어찌할 바를 잘 모르겠다. 사실 시간이 지나면 아무래도 좋은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기에 더 마음이 공허해지고 씁쓸한 듯도 하다.
그래서 요새는 일에 몰두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가상의 법리 속에서 정신을 놓고 길을 찾다 보면 그 노동 속에서 고민할 힘이 소진된다. 몰두하면 온갖 망상과 잡념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행복한 것이다. 하지만 동굴도 어둠도 끝이 나게 되어 있고, 그 출구에서 문득 꿈에서 깬 듯한 허무한 감정을 추스리며 멍하니 집으로 갈 떄가 가장 혼란스러운 것 같다.
양복을 입고 지하철 막차에 타 귀가중이다. 제법 많은 사람이 부대끼고 있고 창밖에도 오다니는 헤드라이트가 요란하다. 날을 넘겨 집에 들어가 바로 씻고 쓰러질듯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고, 눈뜨자마자 서둘러 출근을 준비하는 생활이 나에게는 아직 생소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일상일 것이다. 서른 마흔의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지금보다 어리던 시절에는,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는 말은 어른들의 비겁한 핑계라고 생각했다. 쉽사리 잊혀진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을 것이고, 정말 사랑했다면 그 간절하고 애탄 감정과 격정적인 순간들이 뇌리에 찐득하게 박혀있을 터.
그렇기에 저 문구는 현실의 정당화 및 방어기제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유사한 연애의 패턴 속에서 반복되는 행위와 감정들... 현재의 사람을 마주하고 있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과거의 사람이 기억이 감촉이 가슴 한켠을 뜨끔하게 할 때면 누구나 한번쯤은 딜레마에 빠진다. 실패로 끝난 과거의 사랑에서도 이러한 감정을 맛본 기억이 있기 때문에...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과거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며 잠시나마 이번 연애도 '끝이 보인다'. 언젠가 변할 자신의 마음이 보이고 영원히 뜨거울 수 없는 심장의 온도에 좌절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달콤함을 포기할 수 없고, 이미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기에 우리는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예전 사랑은 지금의 사람으로 "잊었다"'고.
하지만 '잊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잊지 못하였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정말 잊고 지내는 사소한 것들은 사실 떠올리지도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 문구는 '망각'이 아닌 과거의 '부정' 및 현실의 정당화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현재의 안온함을 위해 스스로를 착각에 빠뜨리고기억을 조작하여 작은 안도를 얻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른다. 이번엔 아니겠지. 이번엔 다를거야. 과거는 이미 잊었어. 새롭게 출발해 보자. 라고 읊조리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출발 이후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전 남친 전 여친과 현재의 사람을 조금씩은 비교하게 되지 않는가? 친구들에게 ~는 어땠는데 ~는 이게 좀 부족해.. 라고 투덜거리는 우리들의 모습 속에서 당신은 정말 과거를 잊었는가? 정확하게 말하면 현재의 감정에 충실하고 싶은 자신의 욕심 때문에, 그리고 사랑은 유일할 것이라는 모두의 기대와 착각 때문에 과거의 감정을 애써 지우려 발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이런 명제는 자신의 편의와 욕구를 위한 것에 지나지 않기에 우리는 상황에 따라 과거를 잊은 척 했다가는 떠올리고, 어느 시점에서는 심지어 그리워하기까지도 한다.
그러한 사랑 후에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어쨌든 감정 육체의 소모가 심했으니) 우리는 각자의 방법으로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다시 이윽고 찾아오는 인연에 최대한 많은 가치를 부여하여 빈자리를 메꾸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감정에 자신이 없어지다 보니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람을 재단하는 경향이 심해진다. 최대한 자신과 유사한 사람을 찾고 싶어하고, 안정적인 배경과 이상적인 외관(꼭 자신의 이상형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갖춘 사람을 만나 '실패의 확률을 줄이고자' 움직인다. 그리고 끼워 맞춰진 퍼즐들을 여러 일상적 우연과 타래지어 '이번 사람은 진짜야!'라고 확신을 가지고자 한다. (이전 연애에서 명시적으로 실패한 부분이 있다면 그 반작용으로 특정 요소가 강조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혼조차도 궁극적인 골인이 아닐진대.. 100일 1년 3년 5년짜리 연애를 시작했다 접었다 하며 잊고 잊혀지기를(잊고 잊혀졌다고 착각하기를) 반복하는 것이 대부분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그렇게 마음이 닳고 닳아 꼭 한번씩 내뱉게 되는 말이 '다 부질없다'는 말이다. 설레는 순간을 지나 뜨겁게 불타오르다, 익숙함 안정감에 마음만 아슬하게 걸쳐있는 상태에서 서로 지쳐 헤어지는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무언가에 기대를 하는 것 자체가 바보처럼 느껴진다. 스물하나 스물둘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열병을 앓던 시기를 지나, 조금씩 나이가 먹어가며 만남도 헤어짐도 익숙해질 쯤... 데자뷰의 순간들, 익숙한 기시감 속에서 감정의 파동은 작아지고, 좋게 말하면 '담담한' 상태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뭔가 심드렁하고 지쳐 보이는 서른의 문턱에 다가선다.
신기한 것이, 그렇게 어른이 되어 저 문구를 다시 들여다보면 어느샌가 부분적으로나마 '정말 잊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내가 이 사람을 엄청 좋아했던 것 같고 그 감정에 확신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다 보니까 정말 잊혀진 것인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기 보다는, 다른 사랑의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냥 내 마음 자체가 닳고 지쳐서 모든 것이 빛이 바래고 기억조차 나지 않는 상황이 되는 것 같다.
윤색된 과거의 풍경들... 거짓말처럼 미화되어 현실감을 잃은 동화같은 풍경 속에서도, 내지는 불안과 실망으로 얼룩진 엄혹한 과거의 현실 어느 쪽에서도 진정한 희망의 빛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방치하기에는 내 남은 20대가 너무 아깝다. 제 가슴에 파묻은 시선을 들어 창밖을 바라보면 세상에는 분명 즐거운 일도 찬란한 일도 많다. 영속성과 유일성에 대한 기대를 버리면, 어쩌면 조금 더 성숙해져 올바른 방법으로 현실을 수용하거나 적당한 변용을 거치는 능력을 키운다면 분명 행복은 크게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것이다.
마음을 닫고 아무 기대도 하지 않으면 안전하고 평온하다. 마치 frozen에서 엘사가 쌓아 올린 유리성처럼. 고독이 찬란할 때도 있고 혼자만의 시간은 분명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 평온함은 공허함에 기인하는 것이다. 일궈낼 씨앗조차 없는 곳에서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상을 넘은 나의 20대의 하산길도 어느 새 중턱을 지났다. 까마득한 시간이 흘렀고 남은 길이 얼마 안되는 것 같아 초조하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 아직 살아가야 할 시간이 많다.
행복하고 싶고, 행복해야 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시기이다. 너덜너덜해진 마음이나마 다시 부여잡고 일어설 준비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