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 여자친구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 모든 일에는 흔적이 남게 마련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야 최초의 톱니바퀴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 "사랑은 저처럼 뒤늦게 / 닿기만 하면 닿기만 하면 / 흔적도 없이, 자욱도 없이 / 삼월의 눈처럼"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 한동안 우리는 날씨에 대해서만 얘기했다. 차라리 쏟아져 내리면 그나마 마음이라도 흡족할 것을.
내리는 둥 마는 둥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장마에 대해서, 균질하게 하늘을 가득 메운 무미건조한 회색에 대해서, 뜨겁고 뜨겁고 뜨겁기만 한 여름 햇살을 향한 본능적인 그리움에 대해서.

나는 장마가 계속 이어지는 탓에 달리기를 할 수 없다고 말했고, 그녀는 내가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그러다가 어느 결엔가 그녀가 내게 말했다. "맞아, 좋았어. 우리 참 좋았어. 그렇긴 하지만 우린 이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 그 말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고, 또 슬프게 만들었다. 우선 '맞아'라는 말 때문에, 그 다음에는 '그렇긴 하지만'이라는 접속사 때문에. 맞아. 그렇긴 하지만. 맞아. 그렇긴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 얼마간 나는, 예컨대 샌드위치를 만들기 위해 주방 테이블 위에 식빵을 일렬로 쭉 늘어놓으면서, 혹은 도서관 앞 휴식공간에서 담배를 입에 물고 마치 나의 앞날처럼 불안하고 흐릿하기만 한 풍경을 바라보면서 그 말을 되뇌었다.

'맞아, 어쩌면 이 장마는 영원히 계속될지도 몰라. 그렇긴 하지만, 나는 한번 달려보겠어.'

- 맞다, 나는 연필이었고, 그래서 흑심을 품고 있었다.

- '맞아요, 그렇지요. 세상의 끝까지 데려가고 싶을 정도로요.'

- 누군지는 끝내 알 수 없게 됐지만, 그래서 죽는 순간까지도 당신만을 생각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영영 말해줄 수 없게 됐지만, 언젠가는 그 사람도 알게 되겠죠. 시인이 한때 이런 시를 섰다는 거, 그 메타세쿼이아가 두 사람이 갈 수 있었던 가장 먼 곳이었다는 거.

- 우리는 모두 헛똑똑이들이다.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사실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대부분은 '우리 쪽에서' 아는 것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런 처지인데도 우리가 오래도록 살아 노인이 되어 죽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리석다는 이유만으로 당장 죽을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 삶에 감사해야만 한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나날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해되기만을 기다리며 어리석은 우리들을 견디고, 오랜 세월을 버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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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 비행운

from 도서 2018. 5. 20. 22:11

비행운 김애란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 아마 그래서였을 거다. 훗날 누군가 내게 사랑이 무어냐고 물어왔을 때,
'나의 부재를 알아주는 사람'이라 답한 것은.

- 광합성을 하는 사람에게는 광합성의 빛이, 
전자파를 먹고 사는 사람에게는 전자파의 빛이 얼굴에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 갑자기 목울대로 확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사막에서 만난 폭우처럼 난데없는 감정이었다.
곧이어 내가 살아 있어, 혹은 사는 동안,
누군가가 많이 아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아는,
혹은 모르는 누군가가 나 떄문에 많이 아팠을 거라는 느낌이.

그렇게 쉬운 생각을 그동안 왜 한 번도 하지 못한 건지 당혹스러웠다.

- 그 사이 언니에게도 몇 줄로는 요약할 수 없는 시간들이 지나갔겠죠?
바람이 계절을 거둬가듯, 세월이 언니로부터 앗아간 것들이 있을 테죠?
단순히 기회비용이라고만 하기엔 아쉽게 놓쳐버려 아직도 가슴을 아리게 하는 것도.
말해도 어쩔 수 없어 홀로 감당해야 할 비밀과 사연들도요.

그래서 사실 오늘 언니가 8년 동안 임용이 안 됐었단 얘기를 들었을 때 가슴이 먹먹했어요.
8년, 8년이라니.
괄호 속에 갇힌 물음표처럼 칸에 갇혀 조금씩 시들어갔을 
언니의 스물넷, 스물다섯, 스물여섯.... 서른하나가 가늠이 안 됐거든요.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 속에 생기는 
온갖 기대와 암시, 긴장과 비관에 대해서라면 저도 꽤 아는데,
자식 노릇, 애인 노릇 등 온갖 도리들을 미뤄오다 잃게 된 관계들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닌데,
좁고 캄캄한 칸에서 오답 속에 고개를 묻은 채, 
혼자 나이를 먹어갔을 언니의 청춘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어요.

- 다만 그랬을 뿐인데, 정말 그게 다인데, 이렇게 청춘이 가버린 것 같아 당황하고 있어요.

그 동안 나는 뭐가 변했을까.
그저 좀 씀씀이가 커지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물건 보는 눈만 높아진 시시한 어른이 돼버린 건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고요.

이십대에는 내가 뭘 하든 그게 다 과정인 것 같았는데,
이제는 모든 게 결과일 따름인 듯해 초조하네요.

- 그런데 언니, 요즘 저는 
하얗게 된 얼굴로 새벽부터 밤까지 학원가를 오가는 아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요.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그리고 그때 저를 위로해준 건, 제가 직접 손을 뻗어 만질 수 있는 누군가의 체온이었어요.
욕망이나 쾌락은 그 다음 문제였지요.
어쩌면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온기는 그리 많은 양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이만하면, 이 정도면 충분하다면서요.

아마... 그 사람도 그랬을 거에요.

- 부푼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저는 제가 뭔가 창의적이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며 살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지금 이게 나예요. 

누군가 저한테 그래서 열심히 살았느냐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쩌다, 나, 이런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중략) 지금 선 자리가 위태롭고 아찔해도, 징검다리 사이의 간격이 너무 멀어도, 
한 발 한 발 제가 발 디딜 자리가 미사일처럼 커다랗게 보였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언젠가 이 시절을 바르게 건너간 뒤, 사람들에게 그리고 제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나, 좀 늦었어도 잘했지. 
사실 나는 이걸 잘한다니까 하고 말이에요. 

하지만 당장 제 앞을 가르는 물의 세기는 가파르고, 
돌다리 사이의 간격은 너무 멀어 눈에 보이지조차 않네요. 

그래서 이렇게 제 손바닥 위에 놓인 오래된 물음표 하나만 응시하고 있어요. 
정말 중요한 '돈'과 역시 중요한 '시간'을 헤아리며, 
초조해질 때마다, 한 손으로 짚어왔고, 지금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그것.

'어찌해야 하나.'

그러면 저항하듯 제 속에서 커다란 외침이 들려요.

'내가, 무얼, 더.'

(중략) 언니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제가 무얼 하면 좋을까요.

(중략) 그리고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생각을 해요. 
그때 그 애가 내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중략) 언니, 앞으로 저는 어떻게 될까요. 
마흔의, 환갑의 나는 어떤 얼굴로 살아가게 될지,
어떤 말을 붙잡고 어떤 믿음을 감당하며 살지 모르겠어요.
바뀌는 건 상황이 아니라 사람일까요.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바꿀 수 없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요.
언니는 엽서 끝자락에 그렇게 적었죠? 세월은 가도 옛날은 남는 거 같다고. 

조만간 다시 옛날이 될 오늘이, 이렇게 지금 제 앞에 우두커니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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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여 안녕

from 도서 2015. 7. 14. 21:06



슬픔이여 안녕

저자
사강 지음
출판사
범우사 | 2015-04-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우리는 이따금씩 아무의 간섭도 받고 싶지 않고, 완벽하고 빈틈없...
가격비교


1. 하루에 한 챕터씩, 드라마 보는 기분으로 보고 있다. 솔직한 심정으로 예전처럼 소설에 몰입이 안된다. 어릴 때는 소설 속으로 도피해서 육체는 지상에 있되 정신은 소설 너머 세계로 넘어가는게 내 일과의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요샌 그게 잘 안된다. 


2. 그래도 이 책은 주옥같은 명대사도 많고 전개도 적당히 빨라서 좋다. 세실 요것이 드디어 일을 저질렀는데....... 앞으로 흥미진진.... 그리고 나는 흥미진진함을 느끼는 내 자신의 욕구를 조절하는 데서 보람을 느낀다.


3. 세실 이 깜찍하고 망측한 것이 해논 짓을 생각하건대 일본 소설이라면 세실은 장문의 편지를 쓰고 자살을 택하는게 합당한 전개인데..?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이나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같은 책을 너무 열심히 보면 뭔가 불가항력적인 상황 / 집안 배경 + 주인공의 심리적 고뇌 + 약간의 일탈행동 + 쾌감 및 자기혐오 = 자살 이런 공식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세실이 언제 죽을지 나는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다. 하지만 우아한 프랑스에서는 풋풋한 여주인공을 안죽이지 않을까? 국적과 국민성에 따른 인물묘사 내지는 상황전개를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다 ㅠㅠ


4. 안느는 내가 생각하는 시크한 파리지엔의 표본같은 인물이다. 외관상 이미지만으로는 제인 버킨 같은 느낌?


5. 여튼 여주 심리 따라가는게 꿀잼이다. 1초 단위로 사를르를 사랑하다가도 싫어하고, 행복해하다가도 불행해하고, 쾌락과 질투와 혐오 사이를 오가는 세실 심리 묘사가 진짜 탁월하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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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카타노 마사루, 스가이 노리코
역자 박덕영 
출판 신인문사 
발매 2015.02.27



유럽에 관한 책이라면 보통은 여행서를 떠올린다. 
여행 스팟이나 음식점에 관한 단편적인 정보로 가득한
천편일률적인 이런 부류의 책들은
대개 여행 직후 버려지기 십상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특정 주제에 관한 책을 접할 수 있다.
유럽 영화, 유럽 음식,유럽어 등.
내지는 어떤 개인의 특정 경험을 기반으로 한 1인칭 여행기 정도?
이 정도가 우리가 책으로 접할 수 있는 유럽의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이 글의 역자이신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덕영 교수님께서는
캠브리지 / 에든버러 등지에서 10여년을 수학하신 유럽 전문가(?)이시다.
교수님께서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개괄적으로나마' 유럽을, 유럽 사람을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싶으셨는지 모르겠다.


따라서 이
 책은 기존 유럽에 관한 책들과는 조금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한다.

물론 이 글 또한 물론 필자 / 역자의 개인적 주관적 경험을 기반으로 한 것이지만,
제3자의 관점에서 건조하고 담담하게 유럽 각 국 '사람'들의 특징을 잡아내어 서술하였다.


1) 유럽'인' 및 그들의 기질을 특징으로 잡아낸 점
2) 비교적 객관적인 시점에서 서술된 점을 이 책의 특징이자 미덕으로 꼽을 수 있겠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룩셈부르크, 마케도니아 등의 유럽 소국에 대한 정보까지 망라되어 있는 점이 신선하고
비슷하지만 다른 나라(ex. 잉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아일랜드)에 대해서도
차이점에 대해서 비교적 알기 쉽게 서술된 점이 매력적이다.

또한 나라당 5~15p 정도의 분량을 할애하여 
칼럼이나 신문 기사 한두꼭지를 읽는 정도의 적은 부담으로 틈틈이 시간날때 읽기 좋다.

단점이라면 이 책의 태생(작가가 일본)적 한계를 들 수 있겠다.
서술 주체가 일본이이었고 독자도 일본인을 예정하고 쓰인 책이라서
면적, 국민성, 역사적 관계 등 모든 것이 일본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최소한 객관적 수치나 데이터와 관련한 부분은
한국 버전으로 일부 수정해서 작성할 수는 없었을까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하여튼 유럽 사람과 만날 일이 잦은 사람
(ex. 유럽과 빈번하게 거래하시는 분,
유럽에 교환학생이나 유학을 가게 되는 분,
학교에서 외국인 관련 동아리를 하는 사람)부터
'유럽 여행 중 만난 xx나라 사람은 왜 그랬지?'
'유럽 xx나라에서의 이러한 경험은 왜 그런거지?' 등의 의문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책이 완전하지는 않으나마 방향을 잡아주는 좋은 지침이 되줄 것이라 생각한다.


가볍게 일독하기 좋은 책으로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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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자기계발서나 청춘 도서(?) 류의 '인생에 대해서 훈계하는 책'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특히 멘토라 자임하는 자들의 자격에 대한 불신이 강함. 니가 몬데?)

이 책은 '70세 이상 인생을 살아온 현자'들의 이야기를 모아놨다는 데서 그 공신력(?)이 있다.
수업에 관해 선배에게 조언을 듣고, 
군생활에 관해 선임에게 가르침을 받고, 
사람으로서의 기본적 자질에 대해 선생님께 교육을 받으며
'앞선 사람'들로부터 배워나가는 우리들로서는
인생에 관해선 우리보다 앞선(先) 어르신들께 배울 점이 분명히 있을 터...

미사여구로 가득찬 자기계발서와 다르게 '경험에서 우러나온' 솔직하고 담백한 조언들이 꽤나 새겨들음 직 하다.

그래서 나름 교양수업 듣듯(?) 정리까지 해 놓았는데 공유해 보려 한다.



Chapter 1. 아름다운 동행 - 결혼과 배우자에 관한 이야기

1) 끌림보다는 공유

 - 가족 위주의 삶 + 감동(주기/받기 both) + 독립적인 생활의 가치 존중

 - 결혼에 있어 고려할 것 :
   1) 안정성(얼마나 오래 지속되느냐?)
   2) 결혼의 질(배우자를 통한 만족감, 행복감을 얻을 수 있는지?)

그러기 위해선,

 -  Homogamy(동형배우자생식) > Hetrogamous(이형배우자생식)
    '가치관' '삶에 대한 견해'의 공유가 중요.

 - I love you, you're perfect, Now CHANGE! : 불가능
  상대를 변화시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관계를 시작한다면, 이미 잘못된 길에 들어선 것


 2) 평생의 친구를 찾아라 

 - 낭만과 사랑은 다른 것

 - 육체적으로 비슷한 관심사, 활동 공유

 3) 상대의 신발을 신어보아야

 - 50%를 주고 50%를 받아야 한다고 계산하는 관계는 No

 - 자유롭게 줄 수 있어야

 - 많이 주고받는 것, 특히 많이 베푸는 것.
   "좋아, 베푸는 거야. 그리고 베풀었으면 됐어"

 - 누가 더 이익인지 계산 X. 
   돈을 넣은 만큼 물건을 주는 계산기, 자판기가 아니다.

 - '저 사람을 위해 뭘 해주지? 어떻게 하면 아내, 남편의 하루를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아침에 눈을 뜨면 드는 생각.

 4) 현명하게 싸우는 법

 - 논쟁을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집 밖으로!

 - 한 걸음 물러서 자신의 방법으로 화를 삭이고 대화하라

 - 위험요소는 사전에 제거

 - 상대방의 말에 귀기울이기. 

 - 상대방의 말 반복. '맞아?' -> 의도 파악
  
 - 침묵 시에는 일단 그냥 두고, 더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이 나서서 해결.

 5) 기쁠때나 슬플때나

 - 순간의 열정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보라. 삶은 헌신적인 노력으로 일구어가야 하는 것.

 - 좋은 날도, 힘든 날도 함께.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다 삶의 조각들이고, 그 조각들이 맞춰져 온전한 삶이 만들어지는 것.

 - 인연을 끊는다 = 미래의 모든 가능성을 포기하겠다는 의미

 - 견디고 무던히 애써라.

 - 화난 채 잠자리에 들지 마라.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거나 독선적인 자기합리화로 가슴에 응어리를 품은 채 하루를 마감하기 보다는,
   상대의 존재 의미를 다시금 확인하고 관계 회복을 우선에 두어야 한다.


Chap 2. 행복하게 맞는 아침 - 평생 하고픈 일을 찾아가는 법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 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창 3:19)

 1) 즐거움의 최고의 보상이다

- 휴가, 주말만 목을 빼고 기다리는 삶보다, 돈을 조금 덜 받아도 좋으니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바람직.

- Eudaimonia = '행하는 것 자체로 보상을 받는 행위'

- 금전적 이익만으로는 지루하고 싫증나는 일을 하느라 잃어버린 세월을 보상받을 수 없다.

- 아침에 기쁘게 출근할 수 있는 직업. 일출을 보려 어두울 때 일어나듯..

2) 고통 없는 달콤함은 없다

- 싫어하는 일을 하며 타성에 젖지 마라

3) 싫어하는 일에서도 배운다

-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가치를 찾아라.

- 별 볼일 없는 일에 종사하더라고 맡은 일을 훌륭하게 잘 해내라.
지루하고 권태로운 일이라 하여 무관심한 태도로 일을 하면 그런 생각만 강해진다.
주인의식 + 일을 발전시키려는 태도.

- '반드시' 무언가 배울 수 있다.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해라

4) 거울이 아니라 창밖을 보라

-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 없고, 모두 나의 생각과 같을 수 없다.
하지만 나를 믿게 하려면
다른 사람들의 의지를 거스르면서까지 그들을 설득하기 보다는, 그들과 잘 지내려 노력 .

- 자기 입장과 반대 입장에서 토론해 볼 것

- 타인의 지식을 존중해야 한다. 늘 배우려는 자세를 가진 리더가 될 것.

- 자존심을 세우려 타인과 비교하여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 보지 말고, 
거울 앞에서 벗어나 창밖을 내다보라.

5) 소매를 걷어붙이는 건 내 손이다.

- 일의 목표와 자율성을 추구하라


Chap 3. 등을 보고 자라는 아이

1) 바로 그 순간, 바로 그 자리

-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

- 함께 하는 것은 어떤 행위가 아닌 '시간'

- 특별한 사건보다 '바로 그 순간, 바로 그 자리'에 있어야.
아이들은 조개같은 존재. 껍데기 닫고 있지만 여는 순간 포착해야.

- 1.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시간' 
  2. 가장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하는 것'
  3.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희생도 감수하라.

2) 깨물면 유독 아픈 손가락, 드러내지는 마라

- '가족 간 분화 현상'은 당연

- 편애가 있어도 모든 아이들을 평등하게 사랑한다는 전제를 가져라

- 이중성을 잘 관리해라. 뚜렷한 편애는 상처가 되고 형제가 멀어질 수 있음. 즉 편애는 정상이나, 절제 필요

3) 매를 아끼면 친구가 된다. 처벌 no!

4) 쪼개진 바위는 다시 붙지 않는다

- 관계의 분열을 방지하는 법
1. 균열의 조짐을 조기에 파악하고 진정시켜야 한다.
2. 균열이 발생하면 즉각 조치를 취하라
3. 불화가 생겼을 때 화해가 필요한 쪽은 부모다

5) 쉽게 키워라

- 완벽함을 포기하고 '만족스러운 정도'로 대체하라

- 완벽한 아이로 키우겠다는 생각, 완벽한 부모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가능한 쉽게 키워라.


Chap 4. 하강의 미학 - 지는 해를 즐기는 법

1) 고개마다 다른 기쁨이 있다.

- 나이듬에 대한 걱정으로 시간 낭비 말 것. 나이 먹는 것은 탐험

2) 젊을 때 100년 쓸 몸을 만들어라.

- 병은 쾌락의 이자

-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노후는 금물

3) 살아 있는 동안 죽음은 없다

- 걱정, 두려움 보다 정리 / 새로운 여정을 준비할 것

4) 배우고 다가가라

- 사회적 역할과 인간관계가 더 많을수록 노후의 건강과 행복이 더욱 커진다.

- 고립되고 싶지 않다면 다가가라

- 배울 기회를 이용하라

- 관계의 끈을 유지하고 새로 엮기 위해 노력하라

5) 미루다 늦는다

- 나이와 싸우지 마라!

* selective optimization with compensation :
'가치 있는 일을 선택하고' '상황별로 최적화시켜' '능력을 극대화하여 보상을 받아라'

- 다 못오르게 되면 오를 수 있는 데 까지만.

- 천천히라도 달리고, 한계의 끝을 늘려라.


Chap 5. 후회 없는 삶

- '그랬어야 되는데' 에서 벗어나는 법 :
무슨 일을 시작할 때면 그 일이 앞으로 후회할 일은 아닌지 늘 생각해보기

1) 정직하면 당당하다

- 항상적이고 무조건적인 정직

- 초지일관. 늘.

- 약간의 이득을 위해 영혼이 파괴된다

2) 기회가 묻거든 '네'라고 대답하라

- 직장생활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보상은 일을 더 할 수 있는 기회

3) 여행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

4) 일단 멈추고, 보고 들어가라

- 배우자 선택 과정에서 특히 유념

- 로맨틱한 상황에 잠재된 위험

- 자신의 결정에 질문을 던지고 또 던져라

- 가능한 가장 먼 미래를 바라보라

5) 너무 늦기 전에 꽃을 보내라

- 하지 못한 말은 깊은 후회로 남는다

- '산 사람에게 꽃을 보내라. 죽은 사람에겐 보내도 보지 못한다.'

6)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 후회는 극복할 때 의미가 생긴다. 내려놓아라.


Chap 6. 행복은 선택일 뿐 - 나머지 인생을 헤아리는 법

-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가지지 않은 것,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아야 한다.

- 행복은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에 달린 것이 아님.

내가 성취한 것, 예술적 취향, 유머 감각, 지식 습득, 인격이 성숙하는 과정, 감사함의 표현들, 타인을 돕는 만족감, 친구가 주는 기쁨, 가족의 편안함, 사랑의 즐거움 등에 달렸다.

1) 주어진 날을 헤아려라

- '우리에게 우리의 날을 세도록 가르치시어, 우리의 마음이 지혜에 이르게 하소서'

- '우리는 즐기지 못한 모든 주어진 기쁨들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서 행복을 찾아라.

2) 행복, 내가 고른 선물

- 행복이란 조건이 아닌 선택! 

- 행복을 향한 우리의 의식을 통제하라.

- 내 삶에서 일어나는 내 행복에는 내가 책임지라.

-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책임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떤 태도를 취할지, 어떻게 반응할지는 스스로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
짜증, 두려움, 실망 같은 감정은 자신이 유발한 것.
감정이 어디에서 연유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수용한 다음에는 흘러가게 두어야.
외부로부터 온 압박이 내 감정과 행동을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자.

- 부정을 넘어 긍정을, 환멸을 넘어 희망을, 권태와 무관심을 넘어 기쁨과 새로운 경험을 향한 열린 자세를 선택하는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 불쾌한 일이 일어났을 때 우울하고 부루퉁한 모습으로 신세한탄만 할 것인지,
용감한 얼굴로 삶과 잘 지낼 것인지.
남은 삶을 생각하기에 앞서 자기연민에 빠지지 말고, 문제를 빨리 조율할 것.

- '감사'

-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야.
~라면 식의 마음가짐(~을 먹으면, ~를 얻으면) : 일시적인 행복.
행복하게 만들어 줄 사건을 기다리는 것은 엄청난 실수
위협적인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도 행복하기로 선택할 수 있다.

가만히 앉아서 걱정만 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어려움과 곤경이 없는 삶은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권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긍정적인 태도로 매일 매일 삶을 포용하기 위한 결정을 의식적으로 할 수 있다.
그러려면 아침에 일어나서 긍정적인 감정에 집중하며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 상실을 수용하고, 지속적으로 삶의 기쁨을 느끼면서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3) 다 괜찮다.

- 걱정은 소중한 삶을 무의미하게 낭비하는 것.
더 큰 행복에 다가가는 긍정적인 방법은 걱정을 줄이거나 없애는 것

- 앞으로 일어날 일도, 일어난 일들도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다.

걱정 = 시간 낭비 = 제일 소중한 것을 잃는 것.

* 걱정을 버리는 법?

1. 하루에 한 가지만 걱정하라

2. 비가 올 때 필요한 것은 걱정이 아니라 우산이다. 계획을 세워서 미리 대비하라.

걱정의 이유 - 상황 파악 - 대비

3.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어라.

4) 지구만한 행복도 순간 속에 담겨있다

- 삶의 변화를 기다리는 바로 그 때 일상생활의 즐거움을 더욱 증폭시키기

- 행복 추구랑 성취해야 할 목적, 미래의 계획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소소한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즐거움을 느겨라

- 필요, 욕망은 거대해지는 중.. 작은 기쁨을 음미하라

- 아무것도 '당연하게' 여기지 마라.

- 하고 싶은 일 10가지 정도 정해보기.

- 순간을 음미하고 삶이 주는 작은 선물에 감사하라.

5) 늘 기도하라

6) 대접받고자 하는 만큼 대접하라.

- 'compassion= com(함께) passion(괴로워하다)' 타인과의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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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르고 벼르던 오만과 편견을 이제야 읽었다...

1. 초반부 넘어가기가 힘들다. 인물 관계가 제법 복잡하고, 주인공집 딸만 다섯에... 사교/무도회 등의 익숙치 않은 배경 안에서 인물을 파악해 나가야 하는데, 진도가 잘 안나간다. 특히 다소 시덥지 않은 girl's talk적인 면이 많아서 다소 지루할 수 있다. 

2. 그런데 중반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하면서 완전 빠져들어 거의 밤 새가며 읽었다. 일체의 성적 묘사 없이도 이렇게나 설레는 연애 소설이 있었다니!! 과연 고전이라 부를 만 하다. 특히 인물 / 인물의 심리 묘사가 정말 탁월한데, 괜히 엘리자베스한테 감정이입해서 두근두근.........

3. 엘리자베스 베넷은 단연코 최고의 캐릭터.... 지혜롭고 생기발랄하고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제인&엘리자베스 자매는 여태 본 모든 문학 작품의 자매를 통틀어 제일 매력적이다.

4. 여러 차례 개작을 거쳐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세월의 힘인지 탄탄한 스토리 전개와 적당한 반전의 묘미, 섬세하고 아름다운 묘사가 모두 훌륭하며 잠시나마 19세기 영국에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다...... !

5. 이 책은 서점에서도 연애/사랑소설에 분류되어 있고, 여류작가가 지극히 한정적인 주제밖에 다루지 못할 것이라는 세간의 편견에 부합하며, 결국 돈많고 잘생긴 다이시에게 엘리자베스가 시집가는 결말을 통해 '결국 남성에게 의존적인 수동적인 여성상' '결혼에 좌지우지되는 여성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눈에 보이는 결점에 연연하는 것은 이 소설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아니라고 본다. 특히 복잡한 이 소설의 인물/연인 관계에 주목하여 이러한 비판을 뛰어넘을 수 있다. 

제인 오스틴은 이 소설에서 '상정 가능한 여러 형태의 결혼상'을 주욱 제시하고 있다. 현실적인 타협으로 이루어진 샬럿의 결혼, 욕망과 쾌락만을 추구한 리디아의 결정 등이 먼저 나열되고, 최종적으로 제시되는 것이 엘리자베스와 다이시의 결혼이다. 엘리자베스의 '결말'이 '부자/훈남'과의 결혼이라고, 그녀가 그를 '돈'과 '외모'의 기준으로 선택하지 않은 것은 자명하다.

오히려 극단적인 혐오에 가까웠던 감정이 점차 사랑의 감정으로 바뀌는 '과정'에서의 엘리자베스의 심경 변화 및 변화 이유, 판단 기준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엘리자베스를 움직인 것은 다이시의 진심이고, 편지에 담겨있는 절절한 마음과 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우러나온 그의 인간성이고, 우여곡절 끝에도 변하지 않은 그의 애정에 대한 신념에 있다. 물론 그가 '돈이 많아서' 리디아를 구할 수 있었고, 엘리자베스가 그의 드넓은 영지에 혹한 것도 사실이다. 엘리자베스 본인이 말하듯, '결혼에 있어서 돈만 밝히는 것과 신중한 것 사이의 차이'는 불명확하고 '신중함이 끝나는 지점과 탐욕이 시작되는 지점'의 구분은 애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엘리자베스의 판단 과정에서 이성 아래서 이루어진 성찰, 고뇌의 흔적을 엿볼 수 있고 이는 엘리자베스를 1차원적인 수동적 여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결과론적이고 단순한 오판임을 알 수 있다.

6. 여튼 엘리자베스 사랑스러움....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그녀가 버릇없어보일 수도 있지만 깊은 생각에서 우러나온 정당한 반박은 언제나 환영. 무지에서 비롯된 순종보다는, 이성과 양식에서 나오는 재기발랄함이 몇배는 사랑스럽다!


p.31

"오만은, 내가 보기에는 가장 흔한 결함이야. 내가 지금까지 읽은 바로 미루어 볼 때, 오만이란 실제로 아주 일반적이라는 것. 인간 본성은 오만에 기울어지기 쉽다는 것. 실재건 상상이건 자신이 지닌 이런저런 자질에 대해 자만심을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은 우리들 가운데 거의 없다는 것이 확실해. 허영과 오만은 종종 동의어로 쓰이긴 하지만 그 뜻이 달라. 허영심이 강하지 않더라도 오만할 수 있지.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더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달느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과 더 관계되거든."

p.71

"겸손한 척 하는 것 보다 더 기만적인 것도 없죠. 겉보기엔 겸손해 보이는 것도 때론 단지 무성의일 뿐이거나, 혹은 간접적인 자기 과시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자네는 조금 전 내 겸손을 둘 중 어느 쪽이라고 하겠나?"

"간접적인 자기 과시지. 실은 자네는 글을 아무렇게나 쓰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거든. 자네는 그게 생각을 빨리 하는 데다 표현은 대충대충 하는 데서 나오는 결함이라고 여기고 있고, 그것이 멋있는게 아니라면 적어도 대단히 흥미로운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어떤 일이든 신속히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그런 능력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실행 과정의 불완전함에는 신경을 쓰지 않게 마련이지."

p.76

"자, 이제 절 경멸해 보세요. 그럴 수 있으시다면."

p.219

"근데, 외숙모. 결혼에 있어서 돈만 밝히는 것과 신중한 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거죠? 신중함이 끝나는 지점은 어디고 탐욕이 시작되는 지점은 어디인가요?"

p.315

선함과 선함의 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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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단순하게 보면 '화려한' 사랑과 전쟁, 예쁘게 포장한 불륜 이야기 정도?

아무 생각 없이 보면 '데이지 나쁜x' 정도에서 끝날 가능성이 크다.

- 하지만 개츠비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감정이입하여 보면 144분이란 런닝타임이 결코 지루하지 않다. 

가난과 무능력으로 떠나보내야만 했던 사랑하는 여자를 잊지 못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력가가 되는 개츠비의 모습, 그녀를 위한 순정의 상징인 호수 맞은편 저택, 파티의 화려함 속에 숨겨진 외로움, 기약없는 그녀와의 재회에 대한 남모를 염원, 애틋한 재회, 무서운 집념, 뼈아픈 배신에 이르기까지... 한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며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이 잘 버무려져 있다. 너무나 무서울정도로 강렬한 사랑이었기에, 그 에너지가 좌중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한편 그의 인간적인 모습.. 속은 곪을 데로 곪아 터졌는데도 마지막까지 그녀를 믿어보려 애쓰는 그의 순애보가 애잔했고, 자아부정과 자기파괴에 이르기까지 그녀와의 사랑을 이루고자 모든 것을 바치는 개츠비의 마음은 충분히 공감이 갔다. 사랑의 절대성이 모든 것을 상대화시키고, 수단화시키고, 결국 자기 자신까지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전락하여 무너져버리는 과정... 

자신을 내놓지 않은 채 사랑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의 진심, 에너지, 삶을 내놓는 고단하고도 헌신적인 감정이 사랑이 아닌가. 결코 등가적 거래의 형식으로 성립될 수 있는 감정이 아니기에 항상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아프고 힘겹고 무너지고는 한다. 하지만 '그러지 아니할 수 없기에' '그게 아니면 살수가 없어서' '자신이 그걸 가지지 못하면 정말 전존재를 부정당하는 기분이니까' 어쩔 수 없이 알면서도 파멸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리라.

형태와 결말은 어찌되었던 간에, '불륜'이라는 단어로 정의되기에는 개츠비의 감정이 너무나 '진실한 사랑'으로 보여 혼란스러웠다. '지고지순한 사랑의 감정을 빙자하여 유부남의 여자를 빼앗'는 다는 문장으로 요약하기에는 흔들리는 개츠비의 눈빛이 너무나 진실되다.

그렇기에 타인에 손에 의해 죽는 그의 최후를 보며 오히려 안도가 될 정도였다. 모든 것을 잃은 채 사는 것보다는 사랑했던 기억만 가지고 죽는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개츠비의 장례식은 외로웠지만 파티에 모인 군중이 개츠비를 행복하게 하지 않았듯, 거기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어도 어차피 개츠비는 외로웠을 것이다. 데이지가 오지 않았기에.

이러한 사랑 이야기를 그리는 와중에 배경이 되는 시대상과 사회 문제도 불편하지 않게 녹아있고, 전체적으로 원작의 분위기와 사소한 심리 변화를 최대한 재현하고자 신경쓴 부분이 칭찬할 만 하다.

- 영상미랑 OST가 훌륭하다. 영화 초반의 대부분을 파티씬이 차지하는데, 한편의 뮤지컬을 보는 기분이었음.


요까지는 영화 감상. 13. 05. 16  ===========================================


감명깊게 봤던 위대한 개츠비를 책으로 다시 봤다. 

보통 영화를 보고 원작 도서를 접하면 영화 각색 과정에서 떨궈져 나간 은유, 부실한 스토리 등으로 분개하기 마련인데, '위대한 개츠비'의 경우에는 영화화가 훌륭하게 된 편인 것 같다. 책으로 오는 감동도 컸지만 영화를 보고 그 이미지가 머리 속에 있었기 때문에 더 재미있게 읽힌 것 같다. 

초반에 개츠비가 등장하기까지 인물들이 다소 산만하게 등장하고 몰입도가 떨어지는 면이 있는데, 영화의 기억을 통해서 이를 보충/상상해가며 보니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ㅎㅎ


p.139

 작별 인사를 하러 개츠비에게 갔을 때 그의 얼굴에는 다시 당혹스러운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지금 그가 누리고 있는 행복이 얼마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어렴풋이 의심이 생긴 듯한 표정이었다. 5년이 가까운 세월! 심지어 그날 오후에도 데이지가 그의 꿈에 미치지 못하는 순간이 있었을지 모른다. 물론 그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그가 품어온 환상의 거대한 힘 때문에 말이다. 그 환상의 힘은 그녀를 초월하였으며 모든 것을 뛰어넘었다. 그는 창조적인 열정으로 직접 그 환상에 뛰어들어 그 환상을 끊임없이 부풀어 오르게 했으며, 자신의 길 앞에 떠도는 온갖 빛나는 깃털로 그 환상을 장식했던 것이다. 


- one-side한 감정이 지속되다 보면, 그리고 그 감정에 너무 몰입되고 무조건적으로 이를 키워나가다 보면, 실체를 기반으로 한 그 감정은 결국 실체와는 완전히 무관한 어떤 환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드물게 환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해도 그 대상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경우가 있지.


p.159

 "나 같으면 그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는 않을 겁니다. 과거는 반복할 수 없지 않습니까."

 "과거를 반복할 수 없다고요? 아뇨, 반복할 수 있고 말고요!"

(중략) "난 모든 것을 옛날과 똑같이 돌려놓을 생각입니다. 그녀도 알게 될 겁니다." (후략)

 그는 그 과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가 되돌리고 싶은 것이 데이지를 사랑하는데 들어간, 그 자신에 대한 어떤 관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그의 삶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했지만, 만약 다시 한 번 출발점으로 돌아가 천천히 모든 것을 다시 음미할 수만 있다면,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낼 수 있었으리라...


p.193

 인간의 공감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라 우리는 그들의 비극적인 말다툼이 도시의 불빛을 뒤로 한 채 스러져 가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서른 살 - 고독의 10년을 기약하는 나이, 독신자의 수가 점점 줄어드는 나이, 야심이라는 서류 가방도 점점 얄팍해지는 나이, 머리카락도 점점 줄어드는 나이가 아닌가. 그러나 내 옆에는 데이지와는 달리 깨끗이 잊힌 꿈을 해를 묵혀 가며 간직하기에는 너무 똑똑한 여자인 조던이 앉아 있었다. (중략)
 그래서 우리는 점차 서늘해지기 시작하는 황혼을 뚫고 죽음을 향해 계속 차를 몰았다.


p.253

 덧없이 흘러가 버리는 매혹적인 한순간에 인간은 이 대륙을 바라보며 틀림없이 숨을 죽이고 잇었을 것이다. 이해할 수도, 감히 바랄 수도 없는 심미적 관조에 어쩔 수 없이 빠져 버린 채 인류 역사에서 마지막으로 놀라움을 느낄 수 있는 재능과 맞먹는 그 무엇과 직면하면서 말이다.
 나는 그곳에 앉아 그 오랜 미지의 세계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개츠비가 데이지의 부두 끝에서 초록색 불빛을 처음 찾아냈을 때 느꼈을 경이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는 이 푸른 잔디밭을 향해 머나먼 길을 달려왔고, 그의 꿈은 너무 가까이 있어 금방이라도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았을 것이다. 그 꿈이 이미 자신의 뒤쪽에, 공화국의 어두운 벌판이 밤 아래 두루마리처럼 펼쳐져 있는 도시 너머 광막하고 어두운 어떤 곳에 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를 믿었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 갔지만 별로 문제될 것은 없다 - 내일 우리는 좀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좀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맑게 갠 아침에....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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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츠지 히토나리의 책 '사랑 후에 오는 것들' '냉정과 열정 사이 Blue'를 연달아 읽게 되었다. 남녀 작가가 주고받으며 쓴 책의 '남자' 입장만 주구장창 읽은 셈이다.


두 권 다 낯이 익다. 하지만 스물한두살 때, '현재'를 살아가며 아오이를 사랑하던 준세이와 서른 즈음이 되어 '과거'에 사로잡힌 준세이가 같을 수 없듯,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8년이란 세월의 계곡은 얼마나 깊고도 험한가.


하여튼 두 책을 읽고 느낀 점은...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냉정과 열정 사이 blue'의 아류작에 가깝다는 것이다. '한일 우호의 해'를 기념하기 위한 의뢰 때문에 쓴 작위적인(?) 작품이라 그런지, 소재가 고갈된 건지. 유사한 부분을 꼽자면 다음과 같다. 거의 자기표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듯.


1) 남녀가 각각 1인칭 시점에서 자기 이야기를 풀어가는 서술 방식

 동일한 주제로 시점을 달리해서 남/녀 작가가 소설을 내는 것은 '지금은' 흔해진 상황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 출간 당시에는 이러한 방식이 실험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작품의 성공 이후에는 여러 작가게 의해 차용되어 흔해진 방법이다.

 단순히 남/녀 작가가 연인 관계에 대입되어 다른 책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작품 내에서 두 주인공이 같은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시점만 달리해서 서술하는 방법(무라카미 하루키 - IQ84), 주제와 문제의식만 공유하되 서로 아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정이현, 알랭 드 보통 - 연인들)까지 해서, 점점 다양한 방식이 모색되고 있는 것 같다. 여튼 주고 받는 서술 방식이 처음엔 참 신선했는데 이제는 흐음.. 하는 느낌


 2) 과거를 품고 살아가는 남자주인공

 둘 다 20대 초반에 겪은 뜨거운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사랑을 유일무이한, 절대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상정하고 이별 후에도 지속적으로 마음을 키워 간다는 점도 동일하다. 답답하고 바보같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사랑도 있는 거니까.


 3) 매력적이지만 온전히 사랑 할 수 없는 여자친구

  주인공이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벗어날 의지도 없기에(오히려 지나간 사랑에 몰입하여 절대적 가치와 신화를 부여하는 과정을 겪고, 이로 인해 그 감정과 대상은 대체가능성 없는, 공략불가능한 존재가 된다) 필연적으로 현 여자친구는 불행해 질 수 밖에 없다. 둘 다 매력적인 이성으로 묘사되면서도 과거를 뛰어넘기는 불충분하고, 그녀를 바라보는 주인공의 시선도 '과거'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다. '현 여자친구는 ~지만 내가 그리워하는 ~ 는 이랬다' 는 독백이 이어진다. 

 그러한 흔들리는 시선 속에서 비참해져가는 여자의 모습도 공통적으로 엿볼 수 있다. 언어와 신체를 총동원하여 애원해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여자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한없이 작은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나쁜 주인공.. 하지만 이런 나쁜 남자의 속을 들여다보면 찌질한 집착남이 보인다는 아이러니. 지고지순한 사랑은 '유일성'을 본질로 하기 때문에 그 이외의 모든 관계는 거짓과 위선의 속성을 지니게 된다. 관계의 파멸은 예고된 수순이라.


 4) 모성애의 결핍, 무능력/부도덕한 아버지

 주인공이 헤어날 수 없는 '과거'를 사는 것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외로움이 깊어질수록 지난 감정에 대한 회한과 감상은 짙어지게 되어 있다. 두 작품에서 모두 주인공은 부모의 부재 / 없느니만 못한 부모의 존재로 인하여 한층 더 고독 속에 휩싸이게 된다. 조연급 인물로 주인공이 의지할 수 있는 인물이 나오기는 하나, '부모'의 존재와 대비되어 오히려 주인공의 딱한 처지를 부각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5) 막연한 약속 또는 우연한 재회까지..

 10년 뒤 피렌체 두오모에서 만나요.
 내가 너와의 사랑을 담은 이야기를 책으로 내면 언젠가 너도 그 책읽고 내 맘을 알아주겠지.

 막연하다. 우연함이 개입되지 않고서는 성립될 수 없는 명제이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의지'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자신의 '성'을 쌓는 과정이라 보는게 맞지 않을까. 각자 자기만의 방법이 있는 거니까.


6) 주인공을 그리워하는 상대방과 어중간한 결말

 두 작품 다 결말이 어중간하다. 매력적인 남자에게 청혼을 받은 베니, 새로운 남자친구와의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한 아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다 주인공과의 재회를 피하지 않고, 흔들리는 눈빛으로 주인공을 희망고문시킨다. 먼 두오모까지 발을 옮기거나, 생일선물을 주며 재회한 그들은 몸과 마음을 나누며 잠시나마 과거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 수년의 세월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구체적인 대답은 회피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현실감각 있는 독자라면 열정이 냉정을 이기기 쉽지 않겠다, 는 결말 또한 예상할 수 있으르 것이다.


7) 시간적 거리와 '기억'의 힘

 주인공이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사랑의 끈을 확인하게 되는 지점은, '수년이 경과한 후'에도 약속 또는 생일을 잊지 않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상대방의 '기억'에 있다.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거을 추정 가능하게 해준다. 그 세월을, 추억들을 잊지 않았으며, (형태와 강도는 변했을지망정) 나에 대한 호감을 여전히 가지고 있고, 나에게 그랬듯 너에게도 내가 소중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그 재회. 시간적 거리를 뛰어넘는 감정들의 향연에 재회 후 주인공은 당황하고, 혼란에 빠지고, 기쁘되 버거워한다.


+) 냉정과 열정사이 여주인공 이름은 '아오이=blue'. 사랑 후에 오는 것을 여주인공 이름은 '홍=베니=red'
   아.. 너무 작위적인 대비 아닌지. 
   또 왜 '인수'는 여자입니까. 작가님 작명센스좀!

+) 배경이 되는 국가의 예술적 요소가 개입된다. 이탈리아에서는 보티첼리 등 미술이, 한국에서는 윤동주의 시가 부각된다. 이탈리아에서는 보티첼리 등의 미술이, 한국에서는 윤동주의 시가 부각된다. 이탈리아 미술에 대한 지식은 나부터가 얕아서 이렇다 저렇다 평을 못내리겠지만, 자주 인용되는 윤동주의 시는 어딘가 어색해!! 완전히 이해하고 소화해서 녹여냈다기 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끼워맞쳤다는 인상을 주는 어색한 인용이 몇군데 있다.

+) 이노가시라 공원, 키치죠지, 우메가오카, 오기쿠보, 미타카.. 이런 지명이 너무 나쯔까시이!!
JR 노란거 타고 덜컹거리면서 기차여행 떠나면 너무 좋겠다... 내년에 가능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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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다소 기대 이하였고, '냉정과 열정 사이'는 언제 읽어도 좋다.
스물 여섯 지금 여기의 나에게 울림을 주었던 문구들을 추려 봅니다.


# 잊을 수 없는 여자가 있다고 해서 지금이 불행하다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매일 매일 이 거리의 푸르고 투명한 하늘처럼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다. (중략) 아오이와는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예감도 들고, 실제로 만난다 해도 아무 소용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건 분명 기억의 심술이다. 여기가 마침 시간이 정지해 버린 거리여서 그런지, 나는 어딘지 모르게 과거에 흔들리는 나 자신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 아오이를 일상에서 쫓아 내지 못하는 한, 매미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들고양이같은 그녀에게 화도 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을 나는, 상대를 옭아매고 싶지 않으니까, 하고 얼버무린다.
 결국 아오이가 내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이상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난 아직 아오이를 가슴 속에서 내몰아버릴 정도의 연애를 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나는 과거를 쫓아가도 좋은 건지, 또한 미래를 믿어도 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만이 기억하고 있는 약속, 그 주술적인 올가미에 묶여 있는 내 자신. 그것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 줄 알면서도, 과거에 발이 묶인 채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미래에도 과거가 기다리고 있다. 서른 살 생일, 5월 25일..

# 메미의 요구로 그녀를 품에 안았고, 마음은 이미 거기에 없었다. 남자라는 동물은 이렇게 허망하다. 마음에도 없는 여자를 안을 수도 있기에. 그것은 반쯤은 동정에 의하나 것이기도 하고, 그래서 메미를 모욕하는 일이기도 하였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어서는 안된다고, 관계를 마칠 때 마다 후회하지만, 오늘이라는 날을 어떻게든 지내고 보자는 게으르고 자포자기적인 성격 탓에 나는 일순의 쾌락에 몸을 맡겨 버리고 마는 것이다.
 마음에 없는 사무적인 행위라는 것을 메미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그 때문에 메미는 집요하게 하루에도 몇 번이나 나를 갈구하는 것이다. 그녀로서는 나에게 안긱는 것 외에는 나의 존재를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서로를 안는 것이 두 사람을 하나로 이어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라도 한 것 처럼.

# 메미는 울먹이며 그러너 말을 남기고 나가 버렸다. 다시 문이 닫히고 방 안은 어두워졌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복원사로서 무엇을 어떻게 복원시켜야 좋을지 생각해 보았다. 이렇게 찢어진 그림을 어떻게 복원시켜야 할까. 바니스를 칠해야 할까, 판화의 뒷면을 조사해야 할까, 아니면 벌레 구멍을 막아야 할까. 먼저 액자를 바꿔야 할까, 아니면 접착을 다시 해야 할까.. 길이 보이지 않았다. 격심한 피로가 파도처럼 밀려올 뿐이었다.

# (전략) 이상하게도 오히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아오이와의 추억을 평생 가슴에 간직한 채 살아가자는 결의가 생기는 것이었다. 아오이의 기억을 가슴에 품고 그 기억과 함께 살아간다... 며칠 전, 인수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건 불행한 일이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생은 한 번 뿐이지만, 몇 번이라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라 수 있다. 자신의 새로운 짝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 너무도 길게 느껴지는 기다리는 시간. 그것은 깨달음의 시간이기도 하다. 기다림의 저 앞에 기다림을 받아들이는 현실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사람은 기다림의 시간에 몸을 담근다. 그리고 나의 경우, 그것은 8년이라는 긴 시간이었다.

# 눈 앞에 꿈에도 잊지 못한 아오이의 검고 아름다운 눈이 있었다. 감정의 둑이 터지면서 한숨이 밀려 나왔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과거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내가 비로소 지금이라는 현실을 보려 하고 있다. 눈 앞에 있는 아오이는 더 이상 과거가 아니다. 눈앞의 아오이는 미래다. 그런 생각과 함께 행복과 불안이 내 몸 안에서 격렬하게 부딪치기 시작했다.

# 아오이의 생각이 지금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오이가 그 허망한 약속을 잊지 않고 있었다는 것도 경이로웠지만, 내가 8년이나 기다려 온 사람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 또한 경이였다. 이런 기적이 일어났기에, 우리 두 사람은 보다 강렬한 재회를 이룰 수 있었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할 수 만은 없었다. 나를 바라보는 아오이의 눈이 아름답게 느껴지면 질수록, 내 마음은 갈 곳 몰라 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도대체 무어을 끌어안고 있는 것일까. 내가 안고 있는 것은 8년 전의 아오이였다. 아오이도 필시 8년 전의 나를 안고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과거와 잔 것이다. 1초라도 빨리, 현재를 과거로 물들이고 싶었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거대한 계곡을 메우고 싶었다. 임시로라도 다리 하나 놓고 싶었다. 그러나 계곡은 생각보다 깊고 험했다.

# 눈앞에 있는 아오이가 8년 전의 아오이와는 다른 사람임을 깨닫는데 고작 사흘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얼굴도 목소리도 몸도 옛날과 다름없었지만, 거기에는 뭔가가 빠져 있었다. 어딘가 구멍이 뚫리고 틈이 생긴 것 같았다. 바로 그것을, 복원사인 내가 찾아내어 어떻게 복원시킬 것인가를 신중하고 냉정하게 판단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했다.

# 약속만을 유일한 삶의 의미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과거만을 짊어지고 살아온 나 자신에게, 이제 와서 신은 무엇을 새로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 이 순간, 과거도 현재로 미래도 퇴색하고 현재만이 빛을 발한다. 과거도 미래도 현재를 이길 수 없다.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지금이라는 일순간이며, 그것은 열정이 부딪쳐 일으키는 스파크 그 자체이다.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고,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 현재는 점이 아니라, 영원히 계속되어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내 가슴을 때렸다... 나는 과거를 되살리지 않고, 미래를 기대하지 않고, 현재를 울러펴지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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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 연인들

from 도서 2013. 4. 25. 19:24

- 애초에 여자를 소개해주겠다는 뜬금없는 제안을 수락하는게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바보같은 일을 하려 들고 있는지에 대해 화가 났다. 오늘 만나게 될 여자는 그 보다 두 살 어리다고 했다. 서울 경기 지역에 거주하는 그보다 두 살 어린 미혼 여성은 몇 명이나 될까. 수십만 명에 이를 터였다. 수십만의 여자 중에서 무작위로 고른 한 명이라니. 세상에. 그 단 한 명의 여자와 사랑에 빠지기를 기대하다니! 아아, 어리석은 희망이여. 그는 자책했다.


- 타인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는 않아도 늘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띄고 있어 어렵지 않게 친해질 수 있는 인상이라는 것이 박민아를 아는 여러 벗들의 공통적인 견해였다. 어색한 순간이면 먼저 웃어버리는 그녀의 버릇은 그러나 부단한 노력의 결과였다. 그녀의 성장 과정은 인간관계에서 선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워가는 과정이었다. 먼저 짓는 미소는 이를테면 먼저 쏘는 총알이었다. '나는 당신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품고 있으니 경계심을 갖지 말아달라'는 제스처 속에는 상대를 안심시키고 시작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했으며, 이는 상대가 안심의 차원을 넘어 방심하거나 방만해졌을 때 내 쪽에서 뒤통수칠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둔 주도면밀한 포석이었다. 선제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잠언은 전쟁터에서만 쓸모 있는 게 아니었다. 

 

- 언젠가 홀로여야 한다면 그 타이밍을 선택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여야 한다고 무의식이 말하고 있었다. 


- 두 개의 다른 포물선이 공중에서 조우해 마침내 하나의 점으로 겹쳐진 순간에 대하여, 그 경이로운 기적에 대하여 어떻게 탄성을 터뜨리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세계에서 기적은 종종 태연한 일상의 방식으로 구현되곤 했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젊은 연인에게 한없이 평범해 보이는 매일의 일상, 그 틈새에 숨겨져 있는 치명적인 운명의 조각을 찾아내는 일은 경이로운 놀이었다. 그 신비롭고 아름다운 우연의 세목들을 하나하나 헤아려보다가 자신들이 마침내 지금 여기 함께 있다는 사실은 진실로 기적이 아닐 수 없다고 그들은 감격했다.


- 연애의 종착역이 결혼이어야 할까? 통념상으로야 그럴 것이다. 하지만 질문을 조금 비틀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 연애'의 종착역이 결혼인가, 라고 한다면 말이다. 여자친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준호에게 연애란 비현실적인 어떤 것, 구차한 현실의 저 너머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 모든 것은 그녀가 그에게 '떠난다'는 표현을 입 밖에 내면서부터 비로소 시작되었는지도 몰랐다. 투명한 유리그릇에 담긴 한 덩이 밀가루 반죽처럼 막연하던 상상이, 스스로에게도 느닷없던 충동적인 발화를 통해 세상에 던져진 뒤 빠르게 구체적인 형상을 갖추어가는 못브을 민아는 얼마간의 두려움과 얼마간의 안도감으로 지켜봤다. 다행이다. 민아는 그렇게 생각하려고 애썼다. 말이 먼저 튀어나와주지 않았다면 어떤 것으로부터도 결코 벗어나지 못했을 테니까.


- 이별과 맞닥뜨릴 때마다 '죽고 싶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하는 이는 드물었다. 물론 비련의 사랑을 애꿎은 생명으로 되찾으려 드는 무모한 젊은이도 없지는 않았지만 목적을 이룬 숫자는 매우 미미해다. 눈물은 오래지 않아 마를 것이고, 그들은 머지않아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것이다. 다시 사소하게 꿈꾸고 사소하게 절망하고 사소하게 후회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청춘은 저물어갔다. 세상은 그것을 보편적인 연애라고 불렀다. 대개의 보편적 서사가 그러하듯이 단순하고 질서정연해서 누군가에겐 아름답게, 누군가에겐 참을 수 없이 지루하게 여겨졌다.


- ..(중략) 자신이 더 늦은 시간을 택했다는 것을 그 순간 준호는 민감하게 의식했다. 그들은 각자 저녁 여덟시에 대해 생각했다. 여덟시, 자정까지 네 시간 남은 시각. 저녁이라기엔 늦고 밤이라기엔 이르다. 경탄 속에서 서로의 몸을 껴안고 보낸 여덟시들이 있었다. 창밖이 얼마나 깊고 푸른 어둠 속에 잠겨가는지 따위는 염두에 둘 겨를이 없던 그때. 몰입만이 전부였던 때. 이제는 아득하기만 했다.


- 그들은 일부일처제의 혼인제도에 소속되지 않은 관계였다. 물론 일부일처제를 기반으로 한 사회에서 연인 관계가 된다는 건 상대방과 일부일처를 모방한 배타적 관계를 맺겠다는 무언의 약속에 동의한 결과임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흉내일 뿐이다. 서로의 사랑을 보증금처럼 걸었지만, 어떤 공식 서류에도 자필서명하지 않았고 어떤 사유재산도 공유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결국 타인에 불과했다. 달리 말하자면, 자유인이었다. 개인적 책임감과 상호신뢰 따위의 보험신탁회사의 경영이념 비슷한 소리를 들먹이는 것 말고는 상대의 배신을 추궁할 어떤 권리도 없었다.


- 아무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 않은 것 처럼 행동했다. 그들은 사랑을 지속하는 데에 실패했으나, 어쨌거나 이별을 위한 연착륙에는 실패하지 않았음을 알아야 했다. 비행기 동체도 부서지지 않았고 크게 다친 사람도 없다고, 그렇게 믿어야 했다. 그렇다면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했대도 충분히 의미 있는 비행이었다는 것도, 한 때 뜨거웠던 열정이 느린 속도로 사그라져 가는 것을 함께 지켜보았다는 측면에서 그들은 고장난 조종간을 끝까지 지킨 기장과 부기장처럼 서로에게 동지애 비슷한 감정을 느기고 있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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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14세기 아프리카의 두 왕국 사이에 벌어진 전쟁 와중에 30만 흑인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하게 죽어 갔어도
세상 면모가 변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잔혹함이나 아름다움 따위는 전혀 염두에 둘 필요가 없는 셈이다.


- 그는 한없이 자책하다가
결국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 번 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도 없으며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중략) 도무지 비교할 길이 없으니 어느 쪽 결저이 좋을지 확인할 길도 없다.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 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마치 한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그런데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기에 삶은 항상 밑그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밑그림'이라는 용어도 정확하지 않은 것이,
밑그림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초안, 한 작품의 준비작업인데 비해
우리 인생이라는 밑그림은 완성작 없는 초안, 무용한 밑그림이다.

(중략) eni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 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 우리 생각에는 인간을 위대하게 하는 것은,
아틀라스가 어깨에 하늘을 지고 있듯
인간도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 (중략) 그녀가 자기와 사랑에 빠진 것은 철저히 우연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달은 것이다.
가능성의 왕국에는 이루어진 사랑 외에도 실현되지 않은 다른 남자와의 무수한 사랑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상상한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더 이상 삶이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덥수룩한 머리가 끔찍한, 침울한 베토벤도
몸소 그의 'Es muss sein!'을 우리의 위대한 사랑을 위해 연주했다고 확신한다.
(중략) 그들의 사랑의 역사는 'Es muss sein!'이라기 보다는
'Es konnte auch anders sein(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었는데..)에 근거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 인간의 삶은 마치 악보처럼 구성된다. 미적 감각에 의해 인도된 인간은
우연한 사건을 인생의 악보에 각인될 하나의 테마로 변형한다. 
그리고 작곡가가 소나타의 테마를 다루듯 그것을 반복하고,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것이다.
(중략) 인간은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서조차
무심결에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작곡한다.


- 끊임없이 '신분 상승'을 원하는 자는 어느 날엔가 느낄 현기증을 감수해야만 한다.
현기증이란 무엇인가? 추락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튼튼한 난간을 갖춘 전망대에서 우리는 왜 현기증을 느끼는 것일까?
현기증. 그것은 추락에 대한 두려움과는 다른 그 무엇이다.
현기증은 우리 발밑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홀리는 공허의 목소리,
나중에는 공포에 질린 나머지 아무리 자제해도 어쩔 수 없이 끌리는 추락에 대한 욕망이다.


- 젊은 시절 삶의 악보는 첫 소절에 불과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함께 작곡하고 모티프를 교환할 수도 있었지만
보다 원숙한 나이에 만난 사람들의 악보는 어느 정도 완성되어서
하나하나의 단어나 물건은 각자의 악보에서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기 마련이다.

- B를 위해 A를 배신했는데,
다시 B를 배신한다 해서 이 배신이 A와의 화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략) 첫 번재 배신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첫 번째 배신은 연쇄작용으로 인해 또 다른 배신들을 야기하며,
그 하나하나의 배신은 최초의 배신으로부터 우리를 점점 먼 곳으로 이끌게 마련이다.

- 그는 책 속에 파묻힌 그의 삶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현실적인 삶, 다른 남자들 혹은 여자들과 나란히 걸으며 느끼는 접촉, 그들의 환호 소리를 희구했다.
그가 비현실적이라고 판단했던 것(도서관에 고립된 연구 생활)이 그의 현실이며,
그가 현실이라고 간주했던 시위 행렬은 하나의 볼거리, 춤, 축제,
달리 말하면 하나의 꿈에 불과하다는데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이다.


-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또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비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아무 일도 없었다.
그녀는 한 남자로부터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떠났다.
그 후 그 남자가 그녀를 따라왔던가?
그가 복수를 꾀했던가?
아니다.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 '자아'의 유일성은 다름 아닌 인간 존재가 상상하지 못하는 부분에 숨어 있다.
인간은 모든 존재에 있어서 동일한 것,
자신에게 공통적인 것만 상상할 수 있을 따름이다.
개별적 '자아'란 보편적인 것으로부터 구별되고 따라서 미리 짐작도 계산도 할 수 없으며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베일을 벗기고 발견하고 타인으로부터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 (중략) 그것이 종교적 믿음이건 정치적 믿음이건 간에 모든 유럽인들의 믿음 이면에는
창세기의 첫 번째 장이 존재하며, 이 세계는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 모양으로 창조되었고,
존재는 선한 것이며 따라서 아이를 가지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거기에서 유래했다.
이러한 근본적 믿음을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라고 부르도록 하자.

(중략) 똥과의 불화는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똥을 누는 행위는 창조의 받아들이기 여려운 성질을 일상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
똥은 수락할 만한 것이거나 (그렇다면 화장실 문을 잠그고 들어앉지 말아야 한다!)
또는 우리가 창조된 방식은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 중에서.

그러므로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가 미학적 이상으로 삼는 세계는,
똥이 부정되고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각자가 처신하는 세계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러한 미학적 이상은 키치라고 불린다.
(중략) 키치는 자신의 시야에서 인간 존재가 지닌 것 중 본질적으로 수락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배제한다.


- 가슴이 말할 때 이성이 반박의 목청을 높히는 것은 예의에 벗어난 짓이다.
키치의 왕국에서는 가슴이 독재를 행사한다.


- 여러 사조가 공존하고 그들의 영향력이 서로를 제한하고 무화하는 사회에서는
키치의 독재로부터 어느 정도 빠져나올 수 있다.
개인은 자신의 독창성을 보호할 수 있으며,
예술가는 예기치 않는 작품을 창조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 흐름 하나가 모든 권력을 쥐는 곳에서
사람들은 대번에 전체주의의 키치 왕국에 빠지게 된다.

(중략) 전체주의적인 키치 왕국에서 대답은 미리 주어져 있으며,
모든 새로운 질문은 배제된다.
따라서 전체주의 키치의 진정한 적대자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인 셈이다.
질문이란 이면의 숨은 것을 볼 수 있도록 무대장치의 화폭을 찢는 칼과 같은 것이다.
(중략) 앞은 이해 가능한 거짓말이고, 그 뒤로 가야 이해 불가능한 진실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소위 전체주의 체제에 대항하는 사람은 질문과 의심을 가지고 투쟁할 수 없다.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되어야만 하고 집단적인 눈물샘을 자극해야만 하는 확신과 단순한 진리가
그들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 (중략) 그녀는 격분해서 대답했다. "나의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키치에요!"


- 그녀는 이 노래에 감동하지만 자신의 감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는 이 노래가 아름다운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키치는 거짓말로 인식되는 순간, 비키치의 맥락에 자리잡는다.
권위를 상실한 키치는 모든 인간의 약점처럼 감동적인 것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 중 그 누구도 초인이 아니며 키치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키치를 경멸해도 키치는 인간 조건의 한 부분이다.


- "자신이 한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벌주는 것은 야만적인 짓이다"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합니다."


- 오랜 방황 끝의 귀환. 그리고 그 다음도 도 계속될 것이다.
잊히기 전에 우리는 키치로 변할 것이다.
키치란 존재와 망각 사이에 있는 환승역이다.


- 창세기 첫머리에 신은 인간을 창조하여 새와 물고기와 짐승을 다스리게 했다고 써있다.
물론 창세기는 말(馬)이 아니라 인간이 쓴 것이다.
신이 정말로 인간이 다른 피조물 위에 군림하기를 바랬는지는 결코 확실하지 않다.
인간이 암소와 말로부터 탈취한 권력을 신성화하기 위해 신을 발명했다고 하는 것이 더 개연성 있다.
그렇다. 염소를 죽일 권리. 그것은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쟁 와중에도
전 인류가 동지인 양 뜻을 같이 하는 유일한 권리다.
이 권리가 당연하게 보이는 것은 우리가 서열의 정점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3자가 이 게임에 끼어들기만 하면 끝장이다.
신이 "너는 다른 모든 별의 피조물 위에 군림하거라." 라고 말한 다른 행성에서 온 방문자가 있다면,
창세기의 자명함은 금세 의문시된다.
화성인에 의해 마차를 끌게 된 인간.
혹은 은하수에 사는 한 주민에 의해 꼬치구이로 구워지는 인간은 
그때 가서야 평소 접시에서 잘라 먹었던 소갈비를 회상하며 송아지에게 사죄를 표할 것이다.


- 슬픔은 우리가 종착역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행복은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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