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는 단순하게 보면 '화려한' 사랑과 전쟁, 예쁘게 포장한 불륜 이야기 정도?
아무 생각 없이 보면 '데이지 나쁜x' 정도에서 끝날 가능성이 크다.
- 하지만 개츠비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감정이입하여 보면 144분이란 런닝타임이 결코 지루하지 않다.
가난과 무능력으로 떠나보내야만 했던 사랑하는 여자를 잊지 못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력가가 되는 개츠비의 모습, 그녀를 위한 순정의 상징인 호수 맞은편 저택, 파티의 화려함 속에 숨겨진 외로움, 기약없는 그녀와의 재회에 대한 남모를 염원, 애틋한 재회, 무서운 집념, 뼈아픈 배신에 이르기까지... 한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며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이 잘 버무려져 있다. 너무나 무서울정도로 강렬한 사랑이었기에, 그 에너지가 좌중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한편 그의 인간적인 모습.. 속은 곪을 데로 곪아 터졌는데도 마지막까지 그녀를 믿어보려 애쓰는 그의 순애보가 애잔했고, 자아부정과 자기파괴에 이르기까지 그녀와의 사랑을 이루고자 모든 것을 바치는 개츠비의 마음은 충분히 공감이 갔다. 사랑의 절대성이 모든 것을 상대화시키고, 수단화시키고, 결국 자기 자신까지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전락하여 무너져버리는 과정...
자신을 내놓지 않은 채 사랑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의 진심, 에너지, 삶을 내놓는 고단하고도 헌신적인 감정이 사랑이 아닌가. 결코 등가적 거래의 형식으로 성립될 수 있는 감정이 아니기에 항상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아프고 힘겹고 무너지고는 한다. 하지만 '그러지 아니할 수 없기에' '그게 아니면 살수가 없어서' '자신이 그걸 가지지 못하면 정말 전존재를 부정당하는 기분이니까' 어쩔 수 없이 알면서도 파멸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리라.
형태와 결말은 어찌되었던 간에, '불륜'이라는 단어로 정의되기에는 개츠비의 감정이 너무나 '진실한 사랑'으로 보여 혼란스러웠다. '지고지순한 사랑의 감정을 빙자하여 유부남의 여자를 빼앗'는 다는 문장으로 요약하기에는 흔들리는 개츠비의 눈빛이 너무나 진실되다.
그렇기에 타인에 손에 의해 죽는 그의 최후를 보며 오히려 안도가 될 정도였다. 모든 것을 잃은 채 사는 것보다는 사랑했던 기억만 가지고 죽는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개츠비의 장례식은 외로웠지만 파티에 모인 군중이 개츠비를 행복하게 하지 않았듯, 거기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어도 어차피 개츠비는 외로웠을 것이다. 데이지가 오지 않았기에.
이러한 사랑 이야기를 그리는 와중에 배경이 되는 시대상과 사회 문제도 불편하지 않게 녹아있고, 전체적으로 원작의 분위기와 사소한 심리 변화를 최대한 재현하고자 신경쓴 부분이 칭찬할 만 하다.
- 영상미랑 OST가 훌륭하다. 영화 초반의 대부분을 파티씬이 차지하는데, 한편의 뮤지컬을 보는 기분이었음.
요까지는 영화 감상. 13. 05. 16 ===========================================
감명깊게 봤던 위대한 개츠비를 책으로 다시 봤다.
보통 영화를 보고 원작 도서를 접하면 영화 각색 과정에서 떨궈져 나간 은유, 부실한 스토리 등으로 분개하기 마련인데, '위대한 개츠비'의 경우에는 영화화가 훌륭하게 된 편인 것 같다. 책으로 오는 감동도 컸지만 영화를 보고 그 이미지가 머리 속에 있었기 때문에 더 재미있게 읽힌 것 같다.
초반에 개츠비가 등장하기까지 인물들이 다소 산만하게 등장하고 몰입도가 떨어지는 면이 있는데, 영화의 기억을 통해서 이를 보충/상상해가며 보니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ㅎㅎ
p.139
작별 인사를 하러 개츠비에게 갔을 때 그의 얼굴에는 다시 당혹스러운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지금 그가 누리고 있는 행복이 얼마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어렴풋이 의심이 생긴 듯한 표정이었다. 5년이 가까운 세월! 심지어 그날 오후에도 데이지가 그의 꿈에 미치지 못하는 순간이 있었을지 모른다. 물론 그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그가 품어온 환상의 거대한 힘 때문에 말이다. 그 환상의 힘은 그녀를 초월하였으며 모든 것을 뛰어넘었다. 그는 창조적인 열정으로 직접 그 환상에 뛰어들어 그 환상을 끊임없이 부풀어 오르게 했으며, 자신의 길 앞에 떠도는 온갖 빛나는 깃털로 그 환상을 장식했던 것이다.
- one-side한 감정이 지속되다 보면, 그리고 그 감정에 너무 몰입되고 무조건적으로 이를 키워나가다 보면, 실체를 기반으로 한 그 감정은 결국 실체와는 완전히 무관한 어떤 환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드물게 환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해도 그 대상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경우가 있지.
p.159
"나 같으면 그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는 않을 겁니다. 과거는 반복할 수 없지 않습니까."
"과거를 반복할 수 없다고요? 아뇨, 반복할 수 있고 말고요!"
(중략) "난 모든 것을 옛날과 똑같이 돌려놓을 생각입니다. 그녀도 알게 될 겁니다." (후략)
그는 그 과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가 되돌리고 싶은 것이 데이지를 사랑하는데 들어간, 그 자신에 대한 어떤 관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그의 삶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했지만, 만약 다시 한 번 출발점으로 돌아가 천천히 모든 것을 다시 음미할 수만 있다면,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낼 수 있었으리라...
p.193
인간의 공감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라 우리는 그들의 비극적인 말다툼이 도시의 불빛을 뒤로 한 채 스러져 가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서른 살 - 고독의 10년을 기약하는 나이, 독신자의 수가 점점 줄어드는 나이, 야심이라는 서류 가방도 점점 얄팍해지는 나이, 머리카락도 점점 줄어드는 나이가 아닌가. 그러나 내 옆에는 데이지와는 달리 깨끗이 잊힌 꿈을 해를 묵혀 가며 간직하기에는 너무 똑똑한 여자인 조던이 앉아 있었다. (중략)
그래서 우리는 점차 서늘해지기 시작하는 황혼을 뚫고 죽음을 향해 계속 차를 몰았다.
p.253
덧없이 흘러가 버리는 매혹적인 한순간에 인간은 이 대륙을 바라보며 틀림없이 숨을 죽이고 잇었을 것이다. 이해할 수도, 감히 바랄 수도 없는 심미적 관조에 어쩔 수 없이 빠져 버린 채 인류 역사에서 마지막으로 놀라움을 느낄 수 있는 재능과 맞먹는 그 무엇과 직면하면서 말이다.
나는 그곳에 앉아 그 오랜 미지의 세계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개츠비가 데이지의 부두 끝에서 초록색 불빛을 처음 찾아냈을 때 느꼈을 경이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는 이 푸른 잔디밭을 향해 머나먼 길을 달려왔고, 그의 꿈은 너무 가까이 있어 금방이라도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았을 것이다. 그 꿈이 이미 자신의 뒤쪽에, 공화국의 어두운 벌판이 밤 아래 두루마리처럼 펼쳐져 있는 도시 너머 광막하고 어두운 어떤 곳에 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를 믿었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 갔지만 별로 문제될 것은 없다 - 내일 우리는 좀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좀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맑게 갠 아침에....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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