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지영의 법의 재발견

from 도서 2013. 2. 9. 11:45


1. 책 자체는 매우 흥미롭다. 

2. 주제가 되는 공간인 '집'에 대해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서술한다.




 '현대적 집(home)이란 공과 사의 공간을 구분하는 문자 그대로의 경계선을 표시한다. 또한 집은 공과 사의 영역 사이에 놓여 있는 비유적 경계선(metaphorical boundary)을 대표하기도 한다. 문자 그대로 공간과 비유적 영역에 있어 집(home)이란 개개인과 정부 권력 사이의 관계에 관한 기본적인 문제들이 일어나는 장소이다. 미국 법에서는 집(home)에 대한 생각을 통해 범죄, 폭력, 섹스, 가족, 사생활, 자유 그리고 재산이라는 법적 개념들이 중요하게 형성되어다. 집이란 전통적으로 주거침입관련죄, 정당방위 및 가정폭력 관련 형법을 규정하는 역할을 했다. 비합리적인 수색과 압수(unreasonable search and seizure)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정당한 법적 절차(due process)를 보장받을 권리 및 무기를 소지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 헌법 권리들을 표현하는 중심에 집이 위치한다.'



 

 '집'을 법적으로 어떻게 볼지에 대해서 간단하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장이 되시겠다.


3 . 이러한 집에 대해서는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하는데

 1) 전통적 관념으로서,
    타인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최종적 장소로서의 집. 
    정부 침입, 통제로부터 개인적 자유를 누리는 장소
    (Lawrence V. Texas : 전통적으로 정부는 집 안 어디에나 존재하지 않는다.)
    경찰의 역할은 침입자로부터 '집'을 보호하는데 있고,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는다.

 2) 현대적 관념으로서,  
    가정 내 구타, 성폭행, 위협을 공공의 중재, 개입(public intervention)으로부터 숨겨주는 역할.
    무서운 사랑(terrifying love)이 일어나는 범죄가 있는 곳(home-as-violence)
    이에 대해 경찰이 개입하는 과정에서 사생활 침해가 가능. 
    사생활의 보장이 폭력의 연장선에 놓일 수는 있으나, 사생활 보장 자체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로서
    가치 충돌이 발생.


 4. 종래 'Castle doctrine'에 따라 외부로부터 침입이 불가능한 '요새'였던 집이
     Legal Feminism 등의 주장에 따라 가정 폭력이 형법화되고, '사적 문제'가 '공적 문제'로 재해석됨에 따라서
     형법의 전적인 확장이 이루어지게 된다.
     즉, 가정폭력에 관하여 상당한 근거(probable cause)가 존재하면,
     경찰이 바로 체포하는 검거 의무화 법률(mandatory arrest laws)가 제정된 것.
     no-drop 기소정책에 따라서 피해자가 기소를 원치 않아도 검사가 의무적으로 기소하게 되었다.


 5. 특히 접근금지명령(Protection order)는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이에 의하면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가해자(주로 남편)이 접근을 못하게 되어
    남편이 집 주인이더라도 가정에 머무르지 못하게 된다.
    즉 가정 내에 피고인이 머무르는 것만으로 유죄가 되며, 가정은 형법적 통제구역이 된다.
    '질서 유지' '공공 삶의 질'과 같은 criminal justice policy의 중짐 주제들이 
     공공 장소의 범죄뿐 아니라 가정까지 외연이 확대되게 되는 것. 

    종래 폭력피해여성운동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생활 터전 공유'라는 상황을 막기 위해
    보호시설(shelter)을 최대한 이용했으나,
    피해자가 퇴거하기보다는 피의자가 그 집에서 배제당하고 
    피해자가 자신의 공간에서 안정, 자율성을 되찾아 '두려움 없는 집'을 만드는 것이 더 옳은 방향이라고 봄.

    이 과정에서 '집 안에 있는 상태(presence at home)'라는 비범죄적 행동이
    범죄가 되면서 구성요건의 대용물(the proxy)이 된다.

    또한 집 안 폭력이 범죄화되면서 가정폭력자로 추정되는 사람은 '최고 낯선 사람(superstranger)'이 된다.


6. 한편 가정폭력경범죄(misdemeanor domestic violence) 기소 과정에서 접근명령금지가 사용되면,
   이는 정부가 친밀한 관계(initimate relationship)를 종결하는 것으로
   결국 '정부 주도의 실질적 이혼(state-imposed de facto divorce)'가 이루어지게 된다.

   즉 해당기간동안 대상자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관련 배우자의 동의도 없이도 정부 주도 하에 실질적인 이혼 상태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기본권(the fundamental right to marry)이 침해되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가능하지만,(State V. Ross)
   연락금지명령이 수반되지 않는 가정폭력 대안으로는 같은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하여
   이를 정당화하게 된다.

   그리하여 home privacy, public interest, criminal law control간에 긴장이 발생하게 된다.

   가정 폭력 피해자의 보호도 물론 중요하지만,
   개인, 가정 공간에 대한 개인적 자주성이 공공의 이익이라는 이름 하에
   정부 통제력에 종속화되고 있는 상황은 비판적으로 심사숙고해볼 만한 상황이라 하겠다.


7. 나는 요약 과정에서 많이 빠뜨렸지만
   'Castle doctrine'과 'true man' 'the subordinated(종속된) woman' 과 관련된
   '학대받는 여성과 그녀의 권리 신장(?)'이라는 측면도 이 책에서의 주된 시점 중 하나이다.

   (페미니즘 쪽에 관한 관심과 지식이 얕은 편이라서
   주로 기본권과 프라이버시에 관한 내용으로 요약의 중점을 둠..)
 
   저자가 인용한 문구를 재인용하자면,
   '아내를 때리는 것을 특별히 폭력적인 개인 또는 관계의 단순한 현상으로서가 아니라
   사회 문제로 정의한 점은 페미니즘이 성취한 위대한 점 중 하나' 이며

   '법 안에서 사생활을 이론화시키는 것은 여성을 상징하는 것이고, (중략) 법 안의 가정에서
   정조를 가진 부인이기도, 가정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한 그녀가
   사생활의 의미를 놓고 벌이는 양면 가치를 지닌 논점을 상징하는 주체인 것이다.


 8. 우리 나라에서도
    부부강간의 인정 여부, 부부간 접근금지가처분 등이 논란이 되고 있는 현실임을 생각하면
    비록 적용 법리 및 판례는 미국의 것을 기준으로 하여 많이 다르긴 해도 
    '가정(폭력)' 'privacy' 등의 키워드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긴 하다.


 

but, 이제부터 쓴소리.

1. 

이 책은 정말 학술적인 책이다. 'At home in the law'라는 무미건조한 영문 제목이 말해주듯
'가정'과 '법'의 관계를 다룬 법률 관련 전문 서적이다.
헌법의 기본권 파트, 검찰의 수사와 기소, 가정법 등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으면
한두페이지 넘기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임이 틀림없다.

또한 이 책이 발간 후 호평을 얻었다지만
'대중적인 법률 안내 서적'으로서가 아닌,
전문적인 학술 서적으로 인정받고 평가받은 것이다.


그런데 'At home in the law'라는 제목이 어떻게
'법의 재발견'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될 수 있으며,
어딜 봐서 법에 대한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책인지는 모르겠다.

법과 제도의 제정에 따른 가정과 법률 사이의 관계의 변천, 가정 개념의 변화 정도면 적당하지 않겠나.


이 책이 왜

카데고리에 들어있는지 매우 알 수 없다.



2. 그리고 미국 법사회협회 선정 '올해의 최고의 법률서적'으로 허버트 제이콥 상을 수상했다는데

허버트 제이콥 상은 이런거다. (http://www.lawandsociety.org/awards.html#Jacob)




herb jacobHerbert Jacob Book Prize
Established in 1996 as the LSA Book Award, and re-named in memory of Herbert Jacob, past President of LSA, the competition is open to books from all fields of, and approaches to, law and society scholarship—excluding only works of socio-legal history, which are considered for the Hurst award—published in the prior year, and self-nominations are accepted.

Herbert Jacob was the founder of the first internet book review in the field, Law and Politics Book Review, a creative, energetic scholar who took on a wide variety of questions and issues, and a warm human being whose own work has been a major contribution to the field of law and society. The award is intended to recognize new, outstanding work in law and society scholarship.

Nominations are accepted from all aspects of the field and any country of origin and may include first books of young scholars to books that are capstones of long careers in law and society research and publication. 

The award is a cash award of $500, (which is shared in circumstances of multiple awardees).



동급의 상으로만


이렇게 많은데, '올해 최고의 법률서적'이라는 표현은 좀 낯간지럽지 않은가.
상금이 권위를 대신하지는 않지만 500달러짜리 상이다.
그리고 법사회학 자체가 그렇게 큰 분야도 아니고,
학부 수준에서는 법철학과 더불어 4학년때 전공선택으로 학년당 1/20 정도의 학생이나 수강할까 말까 한데.

(법사회학을 비하할 목적은 없다. 미국 법사회학회 우수 도서중 하나가 '올해 최고의 법률서적'으로 둔갑된 데에 대한 어이없음을 표현하고자 한 것.)


3.

그리고 가장 나를 분노케 했던 것은

발번역

정말 문장을 발로 번역했다.


물론 문학 전공자인 석지영씨의 커리어가 말해주듯, 문학적 메타포와 어려운 법률 개념이 뒤범벅되어
번역이 쉽지 않은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한다.

하지만 주술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애매한 용어는 혼용된 것이 많아서 엄밀한 개념을 잡기가 매우 혼란스럽다.

어느 정도냐면 번역된 문장에서 원 문장을 유추할 수 있고,
그 유추된 원 문장을 다시 자연스럽게 번역할 수 있는 여지가 읽는 과정에서 떠오를 정도이다.

번역자도 문제지만, 
이렇게 번역이 엉망으로 되었는데도 출판을 묵인한 저자 본인의 저의도 의심스럽다.


4. 

이건 사견이지만.

4학년때 우리과에 석지영씨가 강연을 온 적이 있다. 
늦게 가서 맨 뒤에서 졸면서 들었지만..

하여튼 강연은 전부 영어로 이루어졌다. 
최근에 새로운 책을 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책 관련 인터뷰도 전부 영어로 했다고 한다.

그런 '영어' 위주의 본인의 아이덴티티와 별개로,

동양인 최초의 하버드 로스쿨 종신교수임을 너무 강조하고,
'하버드'라면 사족을 못쓰는 한국 분위기 답게 '한국인 하버드 교수'임에 도취되어서
오히려 반감이 들 정도로 그녀를 띄워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솔직히 든다. 


 

종합하자면, 

가정 폭력으로부터 가정을 보호하고자 이루어진 제도, 법률의 신설이
아예 '가정'이라는 개념 자체를 변화시키고, 
단순한 폭력의 방지 및 격리 목적의 조항들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결국 정부 주도의 실질적 이혼(state-imposed de facto divorce)으로까지 연결되는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꿰뚫는 저자의 시각이 사뭇 날카로운 흥미로운 책이지만

내용 외부적인 측면, 특히 마케팅/번역 등에 관련해서는 굉장히 불만히 많은 책이기도 하며
일반인이 가벼운 마음으로 펼칠 만한 책은 절대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다.



'낚여서' 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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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든 과시적 소비이든 지적 호기심이 되었던 간에,
최근 몇년간 우리 나라에서 미술이나 음악 분야의 전시회 및 공연이 활발하게 열렸던 것이 사실이다.
평범한 대학생도 한번쯤은 고흐전 루브르전 오르셰전에 발길을 옮겨본 경험이 있을 것이고,
클림트의 '키스'니 모네의 '수련'이니 하는 작품도 다들 어느 정도는 눈에 익을 것.


하지만 이러한 단편적 지식 및 경험은 증가하는데 반해
이를 체계적으로 엮어줄 통사적인 관점은 대체로 갖추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일 것이다.
나또한 미술관이나 공연장을 즐겨 찾는 사람 중에 하나였지만,
하나의 작가로, 하나의 작품으로, 한 시대를 뚝 떼어낸 기획전으로 접한 경험은 많았어도
이게 어떠한 배경, 어떠한 상황에서 쓰였는지에 대한 통찰은 거의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어느 정도 예술 작품에 친숙한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볼만한 것이 '예술사' '미학사' 등이 될 것이다.
머리 속 흩어져있던 점들 사이에 선을 그어주는 역할을 하며, 
작품과 작가의 맥락, 시대적 요구 및 배경 등의 지식 축적을 통해
문화 생활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자양분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책 또한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있어 손색이 없는 책이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예술이 어떠한 사회적 경제적 배경에 따라 변화 발전되어왔는지
짧은 테마별로 끊어서 나름대로 이해하기 쉽게 잘 서술된 책이다.
물론 작가가 말했듯 '여전히 서양 위주의 역사 기술이라는 단점을 벗어나지 못했고'
다루는 범위가 너무 포괄적이라 - 미술, 음악, 문학 등을 두루 다루다 보니 -
디테일한 부분은 떨어지는 감도 있지만,
지금까지 축적된 자신의 예술적 경험 등을 잘 대입하여 꼬치 꿰듯
하나의 맥락으로 예술사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나름대로 의미있는 독서 과정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두껍고 쉽지 않은 책이지만, 재미나게 읽은 책. 칼라 삽화도 군데군데 삽입되어 있어 시각적 즐거움도 준다.


이미혜, 열린 책들, 2012. 01. 25, 533p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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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관계이며, 소통이며,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며,
탈출이며, 존재의 증명이며, 해방이자 자유이며,
한편으로는 어둠이며, 죄악이며, 자해이며, 허무이며, 절망이며, 폭력이며,
파괴이자 자살행위인 것이다.'

'Mea Culpa
, Mea Culpa, Mea Maxima Culpa..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제 큰 탓이옵니다.)'

'K 스스로 판결을 내려도, 경범죄가 아닌 인륜의 금기를 깨는 중죄임에 분명하였다.
그런 중죄가 3,4분의 짧은 고백만으로,
'주의 기도'를 세 번 외우고 성경의 한 구절을 읽는 것으로 무죄가 될 수 있는가.
못은 빼도 못자리는 남는 것이 아닐까.
사제에게 한 고백만으로 죄가 용서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빠른 시간 안에 밀수품을 사고 파는 불법 거래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연상시키는 소설의 제목은, '낯익은 타인'을 주제로 하고 있다.
'낯섬'을 본질로 하는 타인에게서 '낯익음'이라는 단어를 수식시켜 일견 모순되는 듯한 제목이 암시하듯,
자아와 피아, 낯익음과 낯섬, 익숙함과 생소함을 넘나들며
요동치는 기억과 현실 속에 복잡한 전개 양상을 보인다.


하여튼 뭔가 작가의 의도가 잡힐듯 말듯 하면서,
나에게는 다소 읽기가 벅찬 소설이었다.
격한 비유와 섹스에 대한 묘사도 소화하기 꺼림칙했고,
극도의 혼란을 일으키는 전개 양상은 마지막에 당황스럽게 수습되는데, 
편한 말로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아직 문학적 수양과 성찰의 깊이가 얕아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대충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꼭 이렇게 써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불편한 책.


이 책이 최인호 작가에게는
등단 이후 처녀작 위주의 1기와, 역사/종교소설 위주의 2기를 넘은,
3기로 구분되는 현대소설 집필의 서막을 알리는 책이라는데,
나는 최인호씨의 역사소설을 감명깊게 봤던 사람으로써 다소 불편한 변화이긴 하다...


이 책에 대한 부족한 이해로 인해, 검색한 서평을 붙여넣으면서 의미를 부여해보며 마무리짓도록 하겠다.


 
뒤틀리고 붕괴된 현실의 틈새에서 발견한 진실 
;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조금 깊이 들여다보기


이 작품은 특이한 구조와 그로테스크한 작중인물의 설정, 환상주의와 사실주의를 넘나드는 이야기 전개만큼이나 다층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때문에 빠르게 읽히면서도 한편으로는 강한 여운을 남긴다.

1. ‘역할’로 점철된 현대인의 우울한 초상을 그리다
단란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모범적인 가장으로서, 의사 친구와 가깝게 지내며 번듯한 직업을 가진 사회인으로서, 스스로의 도덕적 결함을 견디지 못하는 제도적 인간으로서, 그리고 주일마다 미사에 반드시 참석하는 견실한 신앙인으로서 K는 생의 의무에 충실한 사람이다. 하지만 일상이 조작되고 현실에 균열이 생기며, 그로 인해 환상과 실재의 공간을 오가면서 K는 사실 조작된 것은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주변 세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는다. 그리고 급기야 처음에는 자신의 행세를 했을 것이라 믿었던 또 다른 ‘K’에게 순순히 ‘참 자아’의 자리를 내주고 만다. 자신이 쌓아온 견고한 삶이 생의 진짜 모습은 아니라는 깨달음 때문이다. 생은 때때로 허물어지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입기도 하는 것. 자신이 만든 견고한 삶은 하나의 무대에 지나지 않았으며, 거기에 ‘진짜 삶’은 없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K는 자신의 배역과 역할에 충실한 동안 정작 자신의 시간을 누리지 못하는 현대인의 ?습을 상징한다. 도덕적이고 합법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세상에 떳떳하다는 것은 인간 본연의 임무가 아니라 제도에 순응함으로써 갖게 된 스스로의 착각일 뿐이다. 그 단단할 것 같은 일상에 금이 가면서 K는 자신을 의심한다. 그리고 그 균열 속에서 그는 자신의 계획과는 다르게 진행된 또 다른 삶을 목격하는 것이다.

2. 일상과의 이별을 통해 본래의 자신을 회복하다
이 책의 발문을 쓴 소설가 김연수는 이 작품을 이해하는 독법의 열쇠를, 작가가 1972년에 발표한 단편 「타인의 방」에서 찾고 있다. 김연수는 「타인의 방」을 두고 쓴 문학평론가 남진우의 “그는 타자가 기획한 무대에 등장한 어릿광대이며 속임수에 빠진 가련한 희생자에 불과하다”라는 글을 인용하면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 K가 처한 상황 역시 왜곡되고 뒤틀리면서 일상의 공간이 비일상의 공간, 연극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본래의 우리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이 일상의 틈을 통해서다. K가 또 다른 자신을 만나는 순간은 지진의 균열이 일어날 때와 일치한다. 디디고 선 땅이 물렁해지는 이 의심의 순간은 진실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의심을 통해 만나게 되는 진실은 무엇일까? 그건 일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견고하지 않다는 사실이리라. (…) 현실은 언제든 그처럼 붕괴될 수 있다는 점, 그게 바로 진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거대한 별사(別辭)인 동시에 어떤 붕괴에 대한 보고서랄 수 있다.
_「발문」, 김연수(소설가)

그리고 이 작품 후반부에서 K는 월요일 아침 출근을 위해 지하철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면서 지난 이틀 동안의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인물들과 인사를 한다. 이 ‘거대한 작별의 장면’을 두고 김연수는 현실이 붕괴된 뒤 K 자신과 함께 사라질 현실의 꼭두각시들과 작별하는 의식이라고 말하면서, 이 모든 것과 작별한 뒤에야 우리는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밝힌다.

3. 현실의 균열 속에서 진실과 구원의 희망을 발견하다
이 책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작가가 성경 「탈출기」의 내용을 장치해놓은 것 역시 이 작품을 해석하는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이 모세에게 이르는 “나는 곧 나다”라는 말은 이 작품의 끄트머리에서 K가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K1’과 합체되는 장면과 연결되고 있다. K는 주말 이틀 동안의 카오스와 붕괴를 겪은 뒤 맞는 월요일 아침에 자신이 맡아온 배역의 캐릭터를 완전히 변화시키면서 ‘온전한 나’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것은 구체적인 세상과 현실과 일상에 오염되기 전, 창조주의 계획으로만 존재하던 ‘나’의 신성을 회복하는 순간이다. 작가는 수없이 많은 ‘나’들이 만든 세계를 무너뜨림으로써 ‘나’를 구원하는 희망의 전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을 어떤 시각과 관점으로 바라보든,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최근 작가에게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의 의도와는 별개로 논해야 할 화학적 반응의 결과물이다. 소설 속 주인공 K는 사흘 동안에 일어난 비현실적인 사건을 통해 변신한다. 세상의 잣대로는 비극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K의 결말은, 결말인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다. 작가 역시 어떤 이별을 통해 원점으로 회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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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매니지먼트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장점을 살리는 일이다.
사람은 약하다. 가련하리만치 약하다. 그래서 문제를 일으킨다.
조직의 측면에서 보면 사람이란 비용이자 위협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부러 비용을 부담하거나 위험을 감당하려고 사람을 쓰지는 않는다.

누군가를 고용하는 까닭은 그 사람이 지닌 장점이나 능력 때문이다.
조직의 목적은 사람의 장점을 생산으로 연결하고,
그 사람의 약점을 중화시키는 것이다.'



보면서 큰 감흥 없이, 무가지 넘기듯 쓱쓱 한시간만에 읽은 책.
전입대기하면서 행정반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가벼워보이는 표지 때문에 골랐는데 상황에 아주 잘 맞는 책이었음.


하여튼 '쉽게 읽힌다'는 것은 책이든 문장이든 글이든 큰 미덕이 아닐 수 없으나,
한편으로 음미할 대목이 없다는 점이기도 하다.


예상되는 전개, 큰 굴곡 없는 스토리, 착한 결말 등 그냥 쉽고 편하게 읽기 좋은 책.
경영/매니지먼트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마저 없는 사람이
뭔가 관련 서적을 읽어보고는 싶은데 전공서적에 도저히 손이 안 갈때
슥슥 읽어볼만한 책. 
커피 체인점 점장이나... 하여튼 경영학 이론을 접할 기회가 없던 사람이
조직을 꾸려나갈 때 참고하면 좋을 것 같기는 한데,
대학에서 경영/경제 관련 수업을 들었거나 관련 서적을 접한 사람은 아무런 감흥이 없을듯.


하여튼 나름 일본 생각도 많이 나고, 책 내용보다는 잡다한 생각이 더 많이 난다.
그리고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라는 책을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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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나 유감스러운 것은, 폐하께서 조물주가 만드신 인간을 당신의 손으로 다시 만드시고
이 새로운 인간 위에 신으로 군림하면서 그만 조그마하나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가 아직 인간임을,
조물주의 손에서 태어난 인간임을 잊고 계신 것입니다.
폐하 또한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이 괴로움도 욕망도 느끼실 것이고, 남의 동정도 필요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폐하께서는 이제 신이 되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재물을 바치거나, 두려움에 떨거나, 아니면 기도하는 것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신과 인간의 모습이 뒤바뀐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울 따름입니다.
불운하게도 자연의 비뚤어진 모습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폐하께서 인간을 비하시켜서 당신의 단순한 악기로 삼으신다면,
그 누가 폐하와 더불어 선율을 연주할 수 있겠습니까?'


'유감스러운 것은 피투성이가 된 희생자는
사형을 지시한 사람의 정신을 결코 찬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계사를 기술하는 것은 인간입니다. 
인간은 그 이상 고귀한 존재는 아닙니다.'


'아름다운 멜로디가 악기 속에서 잠자고 있다고 해도,
그리고 설혹 누군가가 그 악기를 사서 보관하고 있다고 해도,
그가 음악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악기는 그자의 소유라고 말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가 사들인 것은 그 악기를 산산조각 낼 수 있는 권리뿐입니다.
은방울의 울림을 일깨우는 영묘한 노래의 가락에 녹아드는 기술을 사들인 것은 아닌 것입니다.

진리는 현자를 위해서만 존재하고,
미는 마음으로 느끼는 자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


마찬가지로 훈련소에서 읽은 책.
훈련소에서 읽은 두 책이 공교롭게도 서양고전 + 연애물이라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데에는 아주 제격이었다.


독서를 즐기는 편이지만, 희곡 류는 접해본 적이 없었는데
문어체로 장황하게 서술된 소설류만 읽다가 구어체로 생생하게 오고 가는 대화 속에 마음을 맡기니
특유의 박력과 활동감 속에서 책장이 매우 빨리 넘어갔던 기억이 난다..

제법 두꺼운 책이지만 어렵지 않고, 술술 넘어간다.
재미있게 읽었던 책.
'돈 카를로스 - 스페인의 왕자'와 '오를레앙의 처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의 것이 훨씬 재미있다. 비극적인 결말도 뭔가 감동적이고 장대하고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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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과 나 자신에게 존경받으려면,
남들의 부유함과 거래하는 것은 내 가난뿐이고
내 영혼은 그들의 불손으로부터 수천 리외 떨어진 곳,
그들의 사소한 경멸이나 호의의 표시가 당도하기에는
너무 높은 창공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이 세상의 헛된 화려함의 결과란 바로 그런 것일세.
자네는 분명 웃는 낯에만 익숙할 거야.
그야말로 거짓투성이 연극이지.
이보게, 진실은 엄격한 것이라네.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사명 또한 엄격하지 않을까?
자네의 양심이 '외면의 헛된 우아함을 향한 지나친 감수성'이라는 약점을 경계하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라네'


'우리가 시도하는 순간에 극단적이지 않은 위대한 행동이 어디 있겠어?
상식적인 사람들에게 가능해 보이는 것은 그것이 완성된 때인거야.'



'신분과 재산 등 모든 혜택을 누리니, 틀림없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리라고
사람들은 그녀에게 말하곤 했다.
이것이 바로 귀공자들의 권태와 그들의 모든 광기의 원천이기도 했다.'


'사람이 어떤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을 때에는 언제나 자기 마음에 호소한다는 것을 잊지 말게'



훈련소에서 한참 땀을 쏟아내며 흙 위를 뒹굴고 있을때,
인터넷, 전화 등 사회와의 모든 소통수단이 끊기고
읽을거리도 먹을거리도 허용되지 않던 고독하고 힘들던 시기에,

우연히 알게 된 학교 후배이자 분대장이었던 분께서 특별히 책을 보게해줘서
너무 감사하고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다.

소렐과 레날 부인, 마틸드라는 삼각관계와 사랑과 권력 사이에서 벌어지는 오묘한 심리전이 일품이었고
특히 인물/심리/배경 묘사는 200년전 고전이자 번역물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탁월하고 생생했던 기억이 난다.

총을 들고 수류탄을 던지면서도 상상 속 어딘가에서는 프랑스 궁정을 노니며
잠시나마 팍팍한 일상을 잊게 해주었던, 단순한 연애소설 한권 이상의 의미가 담긴 잊지 못할 한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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